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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Aug 04. 2022

저물어가는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

영화 <안녕, 시네마 천국>(2011) 리뷰

* 이 글에는 영화 <안녕, 시네마 천국>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예술부산>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제17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안녕, 시네마 천국>은 디지털에 밀려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부르는 영화다. 인도 출신의 판 날린 감독은 주인공 '사마이'의 성장담을 통해 필름 영화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영화는 기찻길을 따라 걷는 9살 소년 사마이의 맨발을 비추며 시작한다. 사마이는 레일 위에 못을 가지런히 올려둔 뒤, 못 위로 기차바퀴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기차가 지나가자마자 사마이는 선로로 뛰어 들어와 바퀴에 납작하게 눌러진 못으로 화살촉을 만든다. 위험을 계산하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모습은 영화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사마이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사마이의 일상은 마을의 여느 또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향하고, 수업이 끝나면 기차역에서 차(茶)를 파는 아버지 일을 돕는다. 종종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도 빠질 수 없다. 사마이가 친구들과 달리 유별난 점이 있다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아버지의 돈을 슬쩍 훔치기도 하고, 학교 수업을 빼먹기도 하며, 티켓을 사지 않고 몰래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사마이의 아빠는 영화계는 더러운 세계라 브라만 계층에 맞지 않다며 사마이의 꿈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단호한 훈계에도 사마이는 영화에 대한 고집을 쉽게 꺾지 않지만 말이다.    

 


시내에 있는 ‘갤럭시 극장’에 또다시 무전입장(?)하다 쫓겨난 사마이는 우연히 극장 영사기사 파잘을 만난다. 파잘은 사마이와 재미있는 거래를 시작한다. 사마이의 엄마가 만들어 준 도시락을 받는 조건으로, 영사실에서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도시락과 영화를 매개로 한 사마이와 파잘의 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깊어져 간다.      


영화 속에서 도시락은 꽤 재미있는 역할을 한다. 어린 사마이와 영사기사 파잘을 이어준 매개체이자, 사마이가 영화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마이의 엄마가 도시락을 만드는 과정을 정성껏 담는다.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음식과 재료 본연의 생생한 색감은 필름 영화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 같기도 하다. 파잘이 사마이의 도시락을 좋아한 것도 어쩌면 손수 만든 음식이 주는 따뜻함에서 필름 영화가 주는 아늑함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빛을 공부하고 싶다는 사마이의 마음을 아름답고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줄기와 극장의 영사기가 쏜 빛의 입자를 가만히 어루만지는 모습이나, 친구들과 기찻길에서 주운 플라스틱 조각을 눈에 대어 비추어 보는 모습은 영화에 대한 사마이와 친구들의 순수한 애정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편, 버려진 박스로 프레임을 만들어 영화적 시선으로 일상을 담아보려는 시도부터 고장난 자전거 바퀴로 영사기의 릴을 만들고, 미싱의 페달과 고물상에서 찾은 각종 부품들로 구동모터를 구현해내는 장면은 아이들 특유의 기발함으로 관객을 웃음 짓게 한다.      


손수 영화관을 만들어 관객을 초대하고 영화를 상영하기까지 한 사마이는 아버지의 반대와 어른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꿋꿋한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도전은 산업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다. 디지털 영화의 등장으로 영사기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 파잘은 직장을 잃고, 사마이 역시 더이상 영화를 감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때 보여주는 사마이의 행동과 태도가 사뭇 인상적이다. 사마이는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갤럭시 극장에서 고물상으로 실려 가는 영사기를 집요하게 쫓아간다. 사마이는 영사기가 해체되고 용해로 안에서 녹아내려 끝내 숟가락으로 재탄생할 때까지, 쓰레기더미로 가득 쏟아진 필름이 인도 여인의 손목을 채우는 뱅글이 될 때까지 결코 고개를 돌리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저물어가는 필름 영화의 숙명을 회피하거나 부인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기도 하고, 사라지는 필름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음으로써 아날로그 영화의 유산을 기억하겠다는 고백 같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의 이행을 무작정 거부할 수 없다. <안녕, 시네마천국> 역시 디지털에 대한 반감을 말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흘러가는 시간과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감정 같은 것일 테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느낀 감격, 엄마가 만든 도시락에서 맛볼 수 있는 정성, 사랑하는 이들과의 포옹, 진심을 나누었을 때 흐르는 눈물 같은 것들 말이다.     


사마이에게는 그것이 영화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데서 나아가, 영화가 되고 싶다던 사마이가 끝내 필름 영화의 종말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한다. 사마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영화’가 있을 것이다. 엔딩 무렵, 영화계 거장들의 이름을 읊조리는 사마이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마음 속 잃지 않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 지킬 거냐고,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기억할 거냐고. 영화가 주는 여운만큼이나 오래 곱씹게 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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