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등>(2016) 리뷰
* 이 글에는 영화 <4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영에 소질도 있고, 흥미도 있지만 대회만 나가면 늘 4등을 면치 못하는 초등학생 '준호'는 엄마의 희망이자 걱정거리다. 그나마 수영이 아니면 대한민국의 입시지옥에서 살아날 방도가 없다고 여기는 준호의 엄마는, 4등을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묘책으로 수영하는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난 코치 '광수'를 찾아간다. 한때는 잘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였지만, 현재는 동네 수영강사로 변변찮게 살아가는 광수는 학생의 기록을 위해서 폭언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광수를 개인 코치로 맞아들이게 된 준호는 과연 엄마의 바람대로 수영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을까?
영화 <4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영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한 준호가 ‘물의 맛’을 잊지 못하고 새벽녘에 홀로 수영장을 찾는 장면이다. 고요한 새벽의 수영장에는 경쟁을 강요하는 일렬의 레인도 없고, 기록을 위해 소리치는 코치의 구령도, 메달을 향한 부모의 탄식도 없다. 준호는 홀로 물에 비치는 빛을 따라 영법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헤엄친다. 어떤 어른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물놀이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회복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또한, 앞서 ‘서열의 공간’으로 철저하게 구획이 나뉘어 있던 수영장이 이때만큼은 레인이 무질서하게 헝클어지고 똬리를 튼 채 ‘자유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레인이 엉킨 수영장의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 경쟁이 만들어 낸 위계질서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우리의 사고방식을 뒤흔들면서 말이다.
<4등>은 경쟁사회가 잉태한 폭력을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학습하고, 이에 길들여지는 지를 보여준다. 경쟁이 만들어 낸 서열과 그로부터 파생된 권력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제각각의 이유로 폭력을 긍정한다. '너 하나 메달 받게 해주겠다고 애쓰는' 마음으로 광수에게 폭력을 가하는 코치, 예전 같지 않은 처지에 대한 불만을 자신을 체벌하지 않았던 이들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광수, 광수의 폭력 고발 전화에 맞을 짓 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 영훈, 아들이 맞는 것보다 4등에 머무르는 것이 더 두려운 정애, 자신이 당한 폭력을 자기보다 약한 동생에게 고스란히 재현하는 준호, 심지어 불성실하고 오만한 태도의 광수가 두들겨 맞는 것을 보며 일종의 통쾌함을 느낀 관객까지. 영화를 관통하는 촘촘한 폭력의 얼개에서 어느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우리 모두가 폭력이 나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도덕적 관념을 내려놓고 일상을 한 꺼풀 벗겨보면, 폭력에 은근히 동조하고 있는 우리의 민낯이 드러난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이들이 있을까? 이들을 위한 '사랑의 매'는 유효한 것일까? '맞을 짓'이란 무엇일까? 교육과 계몽을 위해 폭력이 용인될 수 있는지, 타자를 위한 폭력은 정당한 것인지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 일상에 스며있는 폭력성을 들추어낸다. 폭력의 주체가 어느 특정한 악의 세력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영화는 묻는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나'와 '당신'도 과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말이다.
영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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