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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임줌마 May 06. 2024

나에겐 필터 없는 어머니와, 거침없는 동서가 있다.

나는 15년 차 맏며느리다.

두 아이의 엄마고 워킹맘이다.

우리 신랑은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이듬해 서방님이 결혼을 했다.

도련님에서 서방님이 됐고. 동서가 한 명 생겼다.

어머니와 동서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자면 월드컵 못지않은 긴장감이 맴돈다.




시간 : 때는 바야흐로 동서가 생긴 그때부터 최근까지 

장소 : 시댁 거실




동서는 결혼 초부터 아버님 발톱을 깎아 드리고 발마사지를 해드리며 집으로 돌아갈 땐 허그로 마무리한다.

동서는 2주에 한번 도장 깨기 하듯이 시댁에 방문한다. 다 같이 식사한 후에 서방님에게 설거지하라고 말하며 아버님께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아버님 사랑하는 둘째 아들 설거지 시켜서 속상하세요?"


아주.. 불편하다. 동서의 특기는 확인사살이다. 저 친구 머릿속에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까..

(아버님 표정이 밝지 않으시다)




서방님과 동서 사이에 아들이 한 명 있다.

어느 주말인가 서방님과 동서는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가 울자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어! 얘네가 영화 보러 갔는데 애가 우네."


아이가 울면 엄마한테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심지어 주말에도 재택근무 할 때가 부지기수다.

어쩌라는 말인가...




평소 동서와 어머니의 대화는 대충 이렇다.

"어머니, 저희한테 딸 기대하지 마세요. 한 명으로 결정했으니까 아이 낳으라고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얘는 학원 다니나? 면전에 대고 저런 말을..)


지지 않는 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딸은 아무나  낳니? 복이 있어야 딸이 생기는 거야"

(역시 어머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


동서가 잠시에 머뭇거림도 없이 이어 말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만 둘이신가 봐요 호호"


불편한 건 나만 느끼는 건가..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식의 만남이 수~년이 흘러간다.

(에피소드를 적으면 대하장편소설이 탄생할지도)

지금까지는 애교에 불가하다.


2년 전 인가..  폭탄은 그때 터졌다.

집안엔 서방님네와 어머니 사이에서 복잡한 사건이 하나 터졌고 평소에도 또박또박 말 잘하던 동서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시부모님 앞에서 속사포 랩을 늘어놓는다.

아버님이 호통 치시자 동서는 아이를 데리고 문을 박차고 나갔고, 서방님도 뒤따라 나간다.


평소 필터링 없는 어머니 말투에 내 속이 타들어 간 날이 많지만 그래도 그날은 시부모님이 안쓰러웠다..

난 자식을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다짐도 해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아버님 칠순이었다.

요즘은 안 챙긴다는 환갑도 양가친척 모두 모여 성대하게 치르게 하시던 어머닌데... 이번 생신은 서방님네도 없고 세상 조용하다. 난 서둘러 퇴근하면서 미리 주문해 놓은 온갖 음식을 찾아다가 아버님댁 거실 긴~ 테이블에 빈틈없이 다 채웠다. 테이블은 화려했지만 아버님 얼굴엔 그늘이 있다.

이 와중에 어머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한마디를 하신다.


"이거 누가 다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육회는 신선도를 잘 봐야 하는데 "

(하.. 말씀을 꼭.. 그래 고맙다는 말씀이실 거야.. 또다시 최면을 건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서방님네는 다시 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동서도 무표정이더니 머지않아 예전 모습으로 행동한다. 뻔뻔하고 무서운 애들이다.




부모는 자식을 저버릴 수 없음을 아이 키워보니 알 것 같다. 그러나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했으면 따끔히 한마디 하셔야 맞는 것이 아닌가. 동서는 미워도 작은아들은 안쓰러우신 거다.


이번 일에 우리도 관련이 없지 않다.

나는 다만 내용이야 어쨌든 부모님께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 서방님 내외가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란다.

(너희도 자식 키우고 있음을 잊지 마라.)


그리고 얼렁뚱땅 이번일을 넘기시려 하시는 어머니가

이번일이 얼마나 큰일이고, 자식을 공평히 대하지 않음으로 인해 큰 원망을 살 일인지를 인지하셨으면 한다.


맞다. 내가 아무리 열 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그들 모두 잘못을 알 리가 만무하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웃는 그 모습이 소름 끼친다.

이게 진정 어른들의 모습인가?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 더 악랄하고 더 사납게 발톱을 세우고 경계하며 살아가면서 가족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 건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서방님 내외에 당한 일을 나한테 화풀이하듯 어머니의 필터링 없는 말과 행동은 나날이 진화한다.


'인과응보'는 없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는데 허무하다..

진상 떠는 이에게 떡이 떨어지는걸 눈앞에서 보았다. 더군다나 그걸 꾸짖지 않고 오히려 감싸는 걸 보니 원통하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 졌다.

(재미없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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