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는 게 있다. "나도 왕년엔 날씬했어~" 그렇다.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꽃다운 나이가 있었고, 머리만 질끈 묶어도 예쁜 그런 시절이 누구나 있다. 그 말을 과거형으로 한다는 게 참 서글프지만 나 역시 있었다. 오늘도 남편 바지와 내 바지를 크기 구분 못하며 빨래를 개고 있지만 찬란하고 꽃 같던 그 시절! 아~ 옛날이여.. 중력의 힘을 한껏 받아 늘어지는 것도 서러운데 청바지를 보고 있자니..
그때가 떠올라 욱 한다...
시간 :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
장소 : 시댁 거실(두 아이 출산 후, 4살 2살 되던 해)
평일엔 아이들 어린이집 등원시키랴 출근 준비하랴 정신없이 지내다가
주말은 당연하거니와, 주중에도 저녁은 시부모님과 함께인 일상이 많다.
아니 매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기를 잘 해와서 기분 좋아 다 같이 저녁.. (선생님 지분이 90% 이상인 것을...)
새로 가구를 들이면 구경한다고 저녁..
비가 오면 이런 날은 다 같이 지짐이를 먹어야 한다고 저녁..
눈이 오면 다 같이 아이들과 눈사람 만들고 저녁..
.....
모든 걸 나열하다가 밤샐 수 있기 때문에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생각하니까 갑자기 혈압이 오른다.
간단히 말해 잠자는 공간만 따로 있고 모든 걸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말이었는데 그날도 시댁으로 호출을 하신다. 남편은 출근했고(늘 없다. 난 분명 남편이 있는데 늘 없다.)
둘째는 아기띠에 메고, 첫째 손 잡고 시댁으로 갔다. 원래 우리 어머니 스타일이 무언가 행동을 하실 때 설명이 딱히 없으시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는 분이다. 그날도 내가 시댁에 도착해서 아기띠를 풀고 둘째를 바닥에 내려놓는 동시에 안방에서 무언가를 한가득 들고 나오신다.
"이거 입어봐"
"이게 다 뭐예요 어머니"
그 어떤 설명도 없다. 늘 그렇듯 그 궁금증은 내가 풀어가야 한다. 딱 봐도 장롱 깊숙이 잠자고 있던 옷가지들이다. 누구의 옷인지, 아니 옷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오래된 옷이다. 이걸 왜.. 나에게..
뒤 엉켜 있는 옷을 영혼 없이 보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마치 나를 생각해서 백화점에서 옷이라도 사 오신 것처럼..
"어! 너한테 맞을 거 같아서"
어머니의 옷장은 늘 문이 열려있다. 그 안에 있는 옷가지들은 마치 '나 좀 꺼내주쇼~'라고 말하는 것 같이 삐져나와있다. 정리 좀 하라고 아버님이 늘 잔소리를 하신다. 옷장뿐이 아니고 냉장고도 아무도 열 수 없다. 판도라의 상자다! 여는 순간 안에 있던 음식들이 '야~ 나부터 나가자~' 하는 듯하다. 그 뒷감당은 할 수 없다.
이런 냉장고가 3대다! 두 아들을 출가시키고 두 분만 계시는데 3대의 냉장고가 왜 필요한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머니가 주신 옷 보따리에 다시 집중해 본다. 뱀 그 이상의 무엇이 나올까 두렵다. 옷가게처럼 옷이 접혀있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뒤엉켜있는 옷을 풀고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
뭔가 얼룩진 티셔츠, 연식은 돼 보이지만 택 안 땐 속옷, 색색별 양말, 여러 벌의 청바지...
티셔츠는 뭔가 모임에서 하나씩 받아오셨던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속옷은 우리 할머니 사드렸던 거 같은 디자인이다. 심지어 사이즈도 안 맞는다.
양말은... 유니크하다. 어린이집 다니는 우리 딸도 저거 신기면 울지도 모른다.
대망의 청바지... 서방님 거다. 결혼하기 전 서방님이 입던 청바지란다. 체격도 성별도 다른 청바지를 왜.. 나에게 주시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어! 집에 있을 때 막 입으라고~ 입어보고 안 맞으면 버려!"
라고 말씀 하시며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도 같이 주신다.
이건... 나에게 버리신 거 아닌가? 차라리 헌 옷 수거업체를 불러달라고 하시지..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있을까.. 내 모습이 너무 후줄근 한가?
'집에서 입을 옷 없었는데 감사해요~' 라며 받기를 바라신 건가?
심지어 청바지... 집에서 홈웨어로 청바지를 입으라고.. 서방님도 안 챙겨간 옷을..
서방님은 본인이 두고 간 그 청바지가 형수에게 전달되고 있는 걸 알기나 할까?
그냥 말씀이라도 '오래되긴 했지만 혹시 입을 만한 게 있니?'라고 하셨어도 이렇게 서럽진 않았을 거 같다.
양파를 까고 있었으면 그 핑계로 울기라도 하지...
재채기를 신명 나게 하고 온 하루였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발육상태를 자랑하던 큰아이는 작으면 작은 대로 불평 없이 입다가
6학년쯤 되니 불편한 옷은 옷장에 그대로 둔다. 그 옷은 버리기 아까워 내가 꾸역꾸역 입는다.
이미 스타일 잊고 산지 오래다..
그래~ 미처 꿰매지 못한 구멍 난 옷을 입은 나를 어머니는 보셨을 거야.. 하하
덤으로 받은 양말을 보고 활짝 웃는 내 모습을 보셨을 거야.. 하하
내가 키가 크니 서방님 옷이 기장도 안 줄이고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주셨을 거야.. 하하
그렇게 당신 방식으로 날 생각하신 거야~~ 하하하하하
어머니 사랑합니다!!
다들 집에 서방님 청바지 하나씩은 있고 그르잖아요~ 그렇다고 해줘요~
(사실 가끔은 입고 있는 청바지 훅만 풀고 집안일하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