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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임줌마 May 02. 2024

대출보다 더 서러운 어머니 한마디!

지금 사는 세상은 대출 대란도 심각하고 '내 집 마련 희망'이라는 기사 올라오는 게 어색하지 않은 대 혼란의 시대다. 초 안전형 성향을 가진 나란 사람이 어느 날 지름신이 강령하사 두 번의 부동산 방문으로 지금의 우리 집을 만나게 되었지...(은행느님의 지분은 밝히지 않는 걸로!)

그때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부동산을 뭐에 이끌리듯 걸음 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시간 : 때는 바야흐로 11년, 8년 전! 두번의 부동산 방문.

장소 : 동네 부동산(아이 둘과 함께!)




우리는 신혼생활을 23평형의 아파트 전세에서 출발을 하였다.

15년 전 그때도 30대 초반인 우리 둘에겐 부모님 도움 없이 집을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매는 꿈도 못 꾸고 대출을 끼고 전세를 알아보았는데 점점 내가 희망하는 지역에서 멀어지면서

시댁과 가까운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무조건 시댁에서 멀리 떨어져라!'


연애 6년 동안 자주 왕래도 했고, 그러는 동안 예비시부모님의 까다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댁과 거리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정신 차려! 바보야.)

출퇴근이 용이 한 곳, 쾌적한 환경! 이 두 가지를 볼뿐..

그때는 나이만 30대가 되었지 부모 그늘아래 살던 시절이라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아파트를 고집했었다. 그러나 예상 금액대에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곳은 생각만큼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몇 번의 발품을 팔아도 좌절만 따라올 뿐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있는 그때! 어머니 동네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마지막 희망을 갖고 간 곳이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고, 시댁이 가깝든 옆집이던 앞집이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신혼생활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후 큰 아이를 갖게 되었고 이 작은 아이의 짐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무렵 둘째가 생겼고 점점 개월이 지나면서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하니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굳어졌다!

갑자기 어느 날 모에 홀린 듯 만삭의 몸으로 낑낑 거리며 외출복을 입고, 아이와 함께 동네 부동산에 방문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기도 해서 조금 더 넓은 전셋집을 알아보려 간 것이다. 처음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께서 매매 물건도 보여주신다. 매매까지는 너무 무리라고 입으로는 말을 하고 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사장님을 따라서 매매로 내놓은 집을 보고 있었다.


좋다~ 넓다~ 심지어 인테리어도 되어있다.

내가 설계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인테리어는 계획도 안하고 있었다. 아이가 나왔을 때 오히려 새집보다는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는 기준이었다.

이런 물건은 인기가 많아서 계약금을 걸지 않으면 금방 다른 사람이 계약한다고 말씀하신다..

옷이나 가방 사는 문제가 아니기에 더 신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너무 이곳으로 이사 가고 싶었다.

부모님과 살 때는 내가 집을 산다거나 하는 서류적인 문제를 알 필요가 없었으니 계약금의 개념도 나에겐 없었으므로 당차게 이야기한다.

"사장님 10만 원 우선 걸어놓으면 될까요?"

(잠시의 정적은 나만 이해 못 했다..)


10%의 계약금은 당장 경조사비도 빠듯했던 우리에게는 너무 큰돈이었기에 남편과 고민 끝에 어머니께 빌리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왜 이런 어려운 말도 내가 했지?.. 남편.. 뭐 하고 있었니?~)


"어머니.. (내용 설명).. 계약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집 살라고? 돈도 없으면서 무슨 매매야"


상황 설명을 모두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정신이 바짝 들면서 앗.. 전화를 내가 왜 했을까.. 후회하고 있을 때 이어서 말씀하신다.


"아빠 다음 달에 만기 되는 적금이 있는데 그거 깨서 줘야지 어쩌겠니 아빠는 이자 재미도 못 보는 거지"


새로운 공간에 가는 행복도 잠시 어머니께 빌린 돈은 첫 번째로 갚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었다!


그렇게 3년 살고 있던 어느 날 3년 전 그날처럼 뭔가에 홀린 듯

외출복을 입고 작은 아이는 애기띠에 메고 큰 아이 손을 잡고 동네 부동산에 방문했다.

부동산 사장님과 조금 더 큰 평수의 매물을 이야기 나눈 후 집 구경에 나섰다.

그래 이곳이다. 선 결정! 후 통보!

그때보다 전체 금액이 올랐으니 당연히 계약금도 클 터..

난 또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 엄마는 세상 쫄보다.. 아마 집 산다고 이야기하면 한숨부터 쉬면서 '너 못 갚으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하셨을게 분명하다. 차라리 어머니께 빌리는 게 낫다)


"어머니.. (내용 설명).. 계약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집 살라고? 너넨 돈도 없으면서 집도 잘 산다"


그때와 비슷한 말을 또 들었다. 이후에 하시는 말씀도 그때와 같다. 데자뷔인가?


"아빠 다음 달에 만기 되는 적금이 있는데 그거 깨서 줘야지 어쩌겠니 아빠는 이자 재미도 못 보는 거지"


그렇게 우리는 2번의 이사를 했고, 2번의 서러움을 겪으며 계약금을 빌려 지금의 우리 집에서 살고 있다.




지금 우리 큰아이는 중1, 작은아이는 초5학년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마지막 정착지라 생각했는데 다시 또 움찔움찔 거린다. 애들 손 잡지 않고 나 혼자 가볍게 부동산 한번 다녀올까? 하하

지금 생각해 보니 무모한 나의 행동을 보시고 어머니는 표현 방식이 서툴러서 그렇지

걱정이 되셨던 거다. 부모로서 집하나 턱~ 사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아이 둘 키우니 이제 조금 알 거 같다.

그래서 그렇게 뼈아픈 말씀으로 마음을 다잡으셨었나보다

어머니 이해합니다!!



독설을 날리시던 어머니가 며칠 후 '우리 집도 알아봐 이사하게'라며 우리 집 길거너로 이사 오셨다...

(부동산 사장님과 007 작전 방불케 하는 일명 '우리 집과 최대한 먼 곳으로 매물 제시하기' 이야기를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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