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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임줌마 May 01. 2024

내가 직장인이란 걸 어머니만
모르는 사실

오늘 아침 출근길 나의 컨디션은 너무 좋다.

우리 집 앞은 6년 넘게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어서 거리도 혼잡하고 차들도 늘 복잡하게 뒤 엉켜 있다.

도로도 울퉁불퉁해서 어떨 땐 구두굽이 푹푹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기분 좋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아침 공기 냄새도 개운해서 한 껏 미소를 머금고 하루를 시작한다.

걸어가는 길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무심코 10년 전 오늘 같은 출근길.. 그때가 떠올랐다!




시간 :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

장소 : 출근길(아침 미팅이 있어서 부리나케 가는 중)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들 밥 먹이고 가방 챙겨서 큰아이 유치원으로,

작은 아이 어린이 집으로 보내고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은 아침 일찍 미팅이 있어서 조금 더 마음이 조급하다.

걸으면서 내 상태를 체크한다.


신발은 구두 잘 신었고 오케이! (슬리퍼 신고 간 경력 있음.)

가방, 핸드폰 들었고 오케이! (장바구니, 리모컨 아니다 다행)

문 잠갔나? 삐리리 도어 잠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오케이!

자~ 가자 가자 전날 미리 출력을 해놓았지만 그래도 뭔가 불안하다.


앞만 보고 파워워킹을 하다가 어머니께 전화가 한 통 울린다. 솔직히 안 받았다! 받기 싫어 피한 건 아니고

내 마음이 급해서 오전 일만 보고 전화드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연이어 계~ 속 울린다. 사실 우리 어머니는

전화를 받을 때까지 하신다. 전화가 계속 연결이 안 되면 집으로 오신다!(우리 집과 길 하나 건너 거리다.)

다시 전화가 울린다. 그래! 받자 급한 일이 있으실 거야! 최면을 건다.

그리고 어차피 전화를 피할 수 있는 위인이 못된다 나란 사람.. 답답이..


"여보세요, 네.. 어머니.."


"어! 바쁘니?"


"네 오늘 미팅이 있어서 정신없이 가고 있어요."


"어! 다른 게 아니고, 오늘 우리 집 에어컨 설치 한다고 했잖아. 기사님들 지금 오셨어"

(늘~ 궁금하다! 바쁘다고 말씀드려도 본인 말씀 하실 건데 왜 항상 바쁘냐고 물어보실까..

 그리고! 에어컨 설치 하는 건 누구한테 말씀하셨을까? 난 처음 듣는다. 

 그렇다! 어머니 기억에 그런 거면 그런 거다!)


"아.. 에어컨 사셨어요? 좋으시겠네요~"
(영혼이 없다!)


"어! 젊은 기사님들이 두 분이나 오셨네, 우리 집에 믹스커피 밖에 없는데

 젊은 분들은 아메리카노 좋아하잖아.

 커피 두 잔만 사 오라고! 난 괜찮아 아침에 먹었어!" 


"............"

(너무 당황하면 난 말을 잇지 못한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 머리가 멍~하다")

그래! 말을 똑 부러지게 해! 이 답답아 말을 하라고!!


"어머니... 저 지금 출근 중인데... 커피를 저한테 사 오라고 하시면..."


"어머나 하하하하하 내 정신 좀 봐 난 항상 잊어버리네. 그럼 어떡하지? 방법이 없을까"

(그 방법~ 왜 항상 저에게 찾으시나요오~~~~~~~~~~)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하지만 난 이내 마음이 쓰여 동네 샌드위치 가게에 전화를 건다.

만원 이하는 배달을 안 해주시기 때문에 아메리카노 2잔과 샌드위치를 아무거나 부탁드려서 어머니댁 주소를 불러드렸다... 

멍청이.. 답답이.. 결국 그 방법 내가 해결한다.

그래 오늘날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든 건 결국 나다! 

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번생은 텄다!




결혼 15년째 어머니와 우린 마트를 항상 함께 간다. 배송을 이용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 역시 눈으로 보고 사야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성격.. 어머니 몰래 가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맘이 편치 않아서 늘 함께!


얼마 전 마트에서 커피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집엔 커피머신이 있지만 청소하고 예열시키고

기다리고.. 귀찮다! 난 성격이 엄청 급하다! 스틱커피가 젤 빠르고 좋다.

(에휴... 커피 맛과 감성도 모르며 사는 사람..)

마트 메이트인 어머니가 오늘도 훈수를 두신다. 


"알커피(병에 담긴 티스푼으로 하나 둘 하는 그 커피) 마셔 이게 얼마나 오래 먹는데"

라며 그 커피 한통을 집어 우리 카트에 담으신다. 


난 그 통을 바로 집어 제자리에 놓는다!

"저흰 이거 안 먹어요"

난 이제 조금은 내 말을 한다! 속 시원하진 않지만 이제 저 정도의 말은 한다.

어머니도 뒤끝이 있으신 분은 아니다. '아니면 말고~' 하고 쿨 하시다.


그래~ 내가 고민하니까 그 고민 덜어주려 행동하신 걸 거야 하하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하하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메리카노 저도 좋아해요 어머니~^^

(커피 2, 프림 2, 설탕 2 이것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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