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른 Sep 19. 2022

매듭 없는 불완전한 사랑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니까

영화 <타락천사> (墮落天使: Fallen Angels, 1995)

영화 <타락천사>는 전작이었던 <중경삼림>과 비슷한 결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특질을 띠면서 <타락천사>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네 명의 주인공, 그리고 불완전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똑같지만, 두 에피소드가 강하게 분리되어 따로 진행되었던 <중경삼림>과 달리 캐릭터가 서로 느슨한 연결을 유지하며 대화하며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왕가위의 작품답게 영화 전반에 핸드헬드 기법과 스텝 프린팅 기법이 짙게 깔려있다. 카메라는 불규칙적으로 어지러이 움직이며 배우를 비춘다. 의도적으로 프레임 수를 낮추어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고 뚝뚝 끊기게 만든다. 먼지가 낀 듯 화면은 전체적으로 탁하고 뿌옇고, 광각 렌즈를 사용해 과하게 배우를 줌인하기도 한다. 초록색과 붉은색의 조명을 번갈아 사용하거나 혼재시켜 비춤으로써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홍콩 특유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러한 왕가위 스타일의 기법들은 작품 속 세계를 관객이 있는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한 느낌을 주는 데에는 음악도 한몫하는데, 복잡함 없이 일정하고 반복된 선율을 작품 중간중간에 늘어두어 관객이 작품을 좀 더 환상적으로 대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끝까지 그러한 조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고, 끝에 이르러선 각자 원했던 사랑의 결말을 얻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절망하며 현실로 복귀한다. 에이전트와 베이비는 황지명을 사랑했고, 하지무는 찰리를 사랑했지만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사랑을 매듭짓지 못한다. 영화는 접점이 없던 하지무와 에이전트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내 새벽인지 낮인지 모를, 밝음이 도사리는 곳으로 멀리 사라진다. <타락천사>가 비추는 홍콩은 주로 어둡고 네온사인만이 이리저리 거리를 비추는 밤 혹은 저녁이지만 하지무와 에이전트만이 빛나는 아침으로 간다. 에이전트와 하지무는 두 에피소드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에이전트는 누구보다 오래 황지명을 사랑했지만, 기억도 하지 못하는 베이비에게 하룻밤을 뺏겼다. 온전하지 않은 사랑에서 오는 불안을 손가락과 눈꺼풀로 연기하는 에이전트, 이가흔의 연기는 가히 탁월했다. 물론 농인으로서 말없이 몸짓과 표정으로만 연기를 이어 나가는 하지무, 금성무의 표현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어쨌든 하지무도 갑작스레 다가온 찰리에게 마음을 내줬고, 아버지에게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둘 다 그와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완전한 사랑에서 탈출해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은 하지무와 에이전트만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타락천사>는 결핍된 자들의 어두운 이야기이며 좀 더 날 것의 <중경삼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중겸삼림> 보다 덜 정돈되어 있고, 훨씬 더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솔직함을 조금 보태보자면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모든 미장센과 연출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왕가위 또한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을 관객이 모두 이해하고 주워 담으리라고 생각하며 만들진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관객이 열과 성을 다해 모든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론 그저 카메라에 담긴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3자로서 조용히 관음하고 캐릭터가 느낄 감정을 가늠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Written by 나른

매거진의 이전글 고요하되 강렬하게, 눈빛으로 외쳤던 애틋한 사랑 한 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