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산’과 ‘붉은 섬’이 전해주는 말

흑산도 편 - 1

by 민영인

2021년 3월 개봉된 영화 ‘자산어보’는 관객들의 좋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입소문을 통한 영향력만큼은 상당하여, 나에게도 막연한 여행지에서 꼭 다녀와야 할 곳으로 버킷리스트에 올랐다. 올해 산청문화원 임원 연수지로 결정하여 출발을 기다렸으나 예상치 못한 초가을 태풍의 영향으로 출발이 두 번이나 미루어졌다. 마침내 삼 시 세 판으로 날을 받은 11월 8일 새벽 4시 30분 산청문화원 앞에서 24명이 장도에 올랐다. 서쪽 하늘에는 음력 10월 보름달이 고요한 새벽을 훤히 비추고 있다. 버스가 출발하고 의자에 몸을 반쯤 누이고 눈을 감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221년 전인 1801년(순조 1년) 손암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령을 받았다. 11월 5일 한양을 떠난 두 형제는 11월 21일 나주 밤남정(현재 나주시 대호동 450-9)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했다. 이제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에 처했다. 잠이 올 리가 있었을까. 이리저리 뒤척이다 끝내 일어나 마주 보고 앉은 형제는 헤어질 생각에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이에 동생인 정약용이 “흑산초초해연공(黑山超超海連空), 군호위호입차중(君胡爲乎入此中). 경예치여산(鯨鯢齒如山), 탄주환복손(呑舟還復噀).” 흑산도는 멀고도 멀어 하늘에 붙어 있다는데, 형은 어찌 이 가운데로 들어간단 말이오. 고래 이빨은 산과 같고, 배를 삼켰다가 도로 뱉는다는데. (‘율정별리(栗亭別離)’에서)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형에게 전했다.

이렇듯 흑산도는 제주도, 추자도, 신지도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해고도의 유배지였다. 목포에서 뱃길로 97.2km에 오늘날 쾌속선으로도 2시간이나 걸리는 곳이다. 비몽사몽간에 형제의 이별을 떠올리다 아침 7시경 목포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정박된 배들 사이로 아침 해가 막 솟아오르고 있다. 다행히 일기예보로는 맑은 날씨에 바람마저 없다니 가을 섬 여행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7시 50분 출항이다. 1시간 지나니 경유지인 도초도/비금도에 잠시 정박했다가 또 1시간이 지나자 첫 목적지인 흑산도에 닿았다. 상록수림과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했다는데, 19.7평방 킬로미터(약 600만 평)의 면적에 기록상으로는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래잡이 기지였으며, 1960년대까지 홍어를 비롯하여 조기, 고래, 고등어 파시(波市)가 번성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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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관광 - 버스, 승합차, 택시... 인원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흑산도에 내려 예리항 좌측에 서 있는 홍어 모양의 흑산도 연혁비를 읽으면서 흑산도 관광이 시작되었다. 흑산도 여행은 크게 3가지 방법으로 버스, 택시, 도보가 있다. 섬의 속살을 구석구석 샅샅이 보고 싶다면 당연히 도보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체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버스와 택시를 이용한다. 당연히 소수의 인원이라면 택시를 이용하겠지만 단체는 버스투어를 한다. 흑산항에 내려 먼저 점심을 예약한 식당에 가방을 맡기고 버스를 탔다. 2시간 동안 섬 일주도로를 따라 25.4km를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둘러본다. 선착장인 예리항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버스기사가 가이드 역할을 하며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이다.

흑산도 해안일주도로를 따라가며 나오는 주요 볼거리는 내 의지가 아닌 우리가 탑승한 버스 기사와 단체의 의사대로 정차를 한다. 상라산 전망대와 ‘한다령’ 정상의 흑산도 일주도로 준공 기념비가 있는 두 곳만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준비한 자료는 그냥 자료로만 남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다시 이곳을 방문하여 도보 답사를 해야만 될 것 같은 사명감이 생긴다.

흑산항인 예리를 출발하여 진리당, 읍동마을은 정차하지 않고 흑산도에서 가장 높은 5층 건물의 흑산문화관광호텔, 흑산성당 그리고 진리당이 차례로 지나간다. 초령목과 당숲은 혼을 부른다는 초령목의 군락지이다. 초령목은 제주도와 흑산도 권역에서 자생하는 멸종위기 보호수로 수령 300년 된 초령목은 1994년에 고사했고, 대신 어린 초령목 4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한다.

흑산도에서 가장 성대하게 당제가 열렸던 ‘진리당’을 ‘신들의 정원’이라 부른다. 진리당은 매년 정월 초부터 3일간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뱃길의 무사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던 곳이었다. 풍수적으로 서낭당은 숭어의 꼬리 부분, 용왕당은 숭어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명당 터에다 세웠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라 한다. 숲 속에 있는 서낭당은 각시당으로 고기잡이 나갔다 죽은 남편을 따라 목숨을 던졌다는 설화 속의 각시를 기린다. 이곳에서 150m 정도 떨어진 해변의 용왕당은 작고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다는데, 진리당에서 당제나 풍어제를 지내지 않은 게 20년이 넘었다니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

팽나무와 석탑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무심사지, ‘무심사’는 근래의 학술조사에서 신라 말인 9세기경 창건되어 14세기까지 있었던 사찰이나 세월이 흐르며 폐사되었다. 이곳 읍동마을 사람들은 석탑을 ‘수탑’, 석등을 ‘암탑’이라 부르며 매년 정월 초하루 당제를 지냈다는데, 지금은 전승되지 않고 있지만, 석탑 옆 오래된 팽나무가 당산나무로 이곳이 마을 주민들의 신앙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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