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산’과 ‘붉은 섬’이 전해주는 말

흑산도 편 - 2

by 민영인

12 굽이길을 힘들게 오르면, 버스 기사가 그토록 강조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망 좋은 화장실과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는 상라산(229.8m) 전망대다. 대장도, 소장도, 쥐머리섬, 망덕도, 그 뒤로 홍도가 보이며, 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구불구불 12 굽이와 함께 예리항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라봉 정상의 봉화대 아래에는 반달 모양의 ‘상라산성’이 있는데, 해상왕 장보고가 해상무역을 왕성하게 벌일 때 전진기지로 삼았다는 증거물이다. 역사적으로 흑산도는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바닷길의 중간 거점으로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후 왜구를 막기 위한 전초기지로 쌓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흑산도는 산성과 관청, 사찰이 들어서는 등 중요한 해양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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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흑산도를 다녀왔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흑산도에서는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들었다고 말하는데 지금은 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관광객이야 한두 번 듣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흑산도 사람들은 이 노래가 지겹고 심지어는 가만히 있어도 귓가에 환청이 들리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흑산도 관광 명소인 상라산 전망대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에서도 지금은 이 노래를 들을 수가 없다.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의 흑산도 아가씨는 1966년 이미자가 불러 히트 친 대중가요다. 노래는 떴으나 이미자는 노래가 나오고 46년이 지난 2012년 9월 15일에 처음 흑산도에 왔다. 상라산 노래비 앞의 핸드프린팅 조형물도 그때 찍은 것이다. 이외에도 ‘흑산도 아가씨’를 기념하는 곳은 흑산도 여객선터미널 북쪽 방파제 끝의 흑산도 아가씨 동상과 지푸미 마을의 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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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라산 전망대에서 내려가다 우측으로 유명한 지도바위가 보인다. 바위 사이에 뚫린 구멍의 모습이 한반도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지도바위라고 부른다. 여기가 비리 마을로 해안가엔 간첩 동굴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는데 차가 정차하지 않아 못 보고 지나쳤다. 1969년 7월 흑산도에 침투한 북한 무장간첩 3명이 은신했던 동굴이다. 이어지는 하늘 도로는 일주도로 구간 중 자연 훼손을 줄이기 위해 교각이 없는 다리 형태로 하늘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는 도로다.

심리(深里)는 우리말로 ‘지푸미’이며 도로가 벽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의 유래를 그린 벽화가 있어, 벽화마을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1965년 당시 이 동네 심리국민학교 학생들을 해군 함정에 태워 서울 구경을 시켜줬다. ‘흑산도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소원, 서울 수학여행 이루어지다’라는 신문 기사를 보고 정두수 작사가와 박춘석 작곡가가 의기투합해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따라서 흑산도 아가씨는 사실 어린이였으며 지금은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으니 어쩐지 통속적인 노랫말과는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버스 기사의 안전벨트 확인과 손잡이를 꽉 잡으라는 안내방송이 이어지며 가파른 급커브길을 휙휙 돌아오른다. 열다섯 굽이 이 고개는 얼마나 한(恨)이 많아 ‘한다령(恨多嶺)’이라 했을까? 정상에는 흑산도 일주도로 준공 기념비가 서 있다. 흑산도 일주도로는 1984년 착공해서 27년 만인 2010년 완공됐으며 총길이는 25.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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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려가면 신유박해(1801) 당시 15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손암 정약전(1758~1816)의 유배지인 사리마을로 섬마을 담장의 원형이 잘 간직되어 담장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호박돌과 길고 평평한 돌을 교차시켜 쌓아 올려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이 있다. 정약전이 거처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사촌서당(沙邨書堂, 복성재(復性齋))에서 섬 주민 장창대의 도움을 받으면서 물고기와 해양생태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1998년 복성재를 복원하고, 2009년에는 주변을 유배문화공원으로 만들어 유배문화체험장(유배인 안치 가옥), 유배인 안내 비문 등이 조성돼 있다. 흑산도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하는 일이지만 영화 ‘자산어보’의 세트장은 흑산도가 아니라 목포에서 오는 길에 잠시 정박했던 도초도에 있다. 사리마을 해안가는 아름다우면서도 한국적인 어촌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의 소렌토(Sorrento, 이탈리아 남부의 유명한 해양 관광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해변 칠형제 바위 앞에는 보리싹이 나오는 무렵이면 숭어 무리가 뛰노는 풍경을 볼 수가 있다. 사리마을을 둘러보지 못해 묵령고개를 올라가며 저만치 멀어지는 마을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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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1833~1906)의 유배지인 천촌마을 입구에는 조선 고종 때 문신이자 항일의병장인 면암의 글씨가 새겨진 지장암과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또한 버스에서 스치고 지나가버렸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된 최익현은 선유령 고개에 올라 산행을 하다가 경치 좋은 골짜기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곳이 바로 천촌마을이었다. 최익현은 흑산도를 거쳐 간 명사들이 많은데 후세에 기억할 만한 유적이 하나도 없음을 한탄하고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 새기고는 바위를 ‘지장암’이라 이름 붙였다.

기봉강산(箕封江山)은 중국 은나라의 기자(箕子)가 봉(封)한 땅(江山), 홍무일월(洪武日月)에서 홍무(洪武)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연호이므로 명나라와 함께한 역사이란 뜻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뿌리 깊은 나라인데, 어찌 감히 왜구들이 넘볼 수 있느냐인데,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사상이야 높이 평가하지만 조선 성리학자의 사대주의 한계는 쉽게 극복하지를 못했다. 차라리 글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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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촌리와 청촌리 사이 해안을 바라보면 구멍이 뚫린 바위섬에 그 위로 몇 그루의 소나무 숲이 있다. 구문여라는 바위로 태풍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거센 파도가 구멍 사이로 분수처럼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장관을 연출한다. 바닷물이 넘치는데도 나무가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며, 버스기사의 경계(?)를 넘지 않으려는 설명 또한 간당간당 위험하다.

다시 원점인 예리항으로 돌아왔다. 점심식사를 하고 2시 30분 배로 흑산도를 떠나므로 흑산도 등대와 인근의 흑산도 아가씨 동상, 고래공원(고래마당), 자산문화관, 파시골목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홍도는 흑산도에서 22km 떨어져 뱃길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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