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안은 캄캄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고 벽을 따라서 줄을 지어 이동해야 했다. 너무 어두워 발 밑을 잘 살펴야 했다. 가이드의 말에 따라 카메라를 백에 넣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영혼을 빼앗긴다고 믿는다고 했다. 아니 지금 21세기에 들어온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판에, 그것도 G 20에 속한다는 멕시코에 사진 찍으면 영혼을 뺏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니.
성당 안에는 의자가 없고 마룻바닥이었다. 바닥의 여기저기에는 솔잎이 수북이 깔려 있었고 수많은 촛불이 있었다. 촛불 가운데 나이 많은 여성들이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데 촛불이 타면서 나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티베트의 사원에 들어갔을 때 맡았던 야크 기름 냄새가 떠올랐다. 기도하는 사람 옆에는 닭도 보였다. 산 크리스토발의 과달루페 성당에서 닭털 뽑는 사람이 생각 났다. 이들에게 닭은 신에게 바치는 중요한 제물이다.
산 후안 성당과 성당 앞의 소나무 십자가. 양털 망토의 남자는 자치 경찰이라고 한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걷는 벽 옆으로 가톨릭 성자들의 동상들도 보였다. 성자들은 거울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악령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나는 중국의 후이저우에서 집집마다 대문에 거울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거울들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 거울이 가지고 있는 벽사적 의미가 태평양을 건너 지구의 반대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처음 경험하는 나로서는 괴기스러운 한편 신비스럽기도 하고 또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의식들이 치러지고 있는 곳은 산 후안 성당이다. 산 후안은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했다는 바로 그 성 요한이다. 성당 안의 모든 일들이 세례 요한과 대체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가? 아니 기도를 올리는 저 사람들은 성 요한이 누구인지나 알고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성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성당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이 보였다. 원주민들에게는 이 성당이 요한을 위한 것인지 예수를 위한 것인지는 관심 없을 것이다. 다만 신성한 공간이라고 하니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신앙 의식을 이 공간에서 행하고 있는 것아니겠는가?
푸른색 꽃 무늬가 장식된 성당 외벽(왼쪽)과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요한의 그림이 붙은 창문
법 위에 전통이 있다
산 후안 차물라, 산 후안 성당이 있는 마을이다. 산 후안 성당 때문에 마을 이름에 산 후안이 붙었는지 아니면 마을 이름 때문에 성당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아치형 창문이 있고 창문에는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그림이 기념사진처럼 붙어 있었다.
성당 앞 광장에서 풍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빨강과 초록 술이 덮인 고깔이 인상적이다.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에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친절한 가이드는 카메라를 축제 행렬 쪽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세상에! 사진 못찍는 축제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긴장감이 햇볕 가득한 광장에 서려 있었다. 행렬이 지나는 여기저기에 검은 양털 망토를 입은 남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곳의 자치 경찰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멕시코의 대표적 반정부 세력인 사파티스타 반군의 중심지이다. 사파티스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치아파스 주 중에서도 토착 쵸칠 족의 비중이 가장 큰 곳이다. 전통문화와 전통적 관습에 의거한 법이 멕시코 정부의 법에 우선한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도 멕시코 경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치 경찰이 마을의 질서를 통제하고 있었다.
성당 앞에서 풍물을 준비중인 풍물패 단원
어린 풍물단원을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며 풍물을 연주하는 풍물패
소나무에 안긴 십자가
성당 앞 광장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좌대 위에 올라 선 부처처럼 타일로 만든 삼단 좌대 위에 심겨 있었고 그 나무줄기에 성당을 향해서 십자가가 묶여 있었다. 소나무는 십자가의 광배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십자가가 소나무에 안겨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소나무가 신성한 존재라는 것이 실감 났다. 십자가가 토착인의 신앙의 대상인 소나무에 의지해 있다니.
십자가 앞 광장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악대의 중심에는 아코디언과 기타가 있었고 나머지는 장고처럼 생긴 북을 맨 사람들이었다. 무리 중에는 아이들도 여럿 섞여 있었는데 이들은 원형으로 돌아가면서 악기를 연주했다.
소나무에 안기듯이 묶여있는 십자가
풍물패는 모두 검은색 웃옷과 주황색 바지 그리고 흰색 각반을 착용했다. 그리고 머리에는 검은색 양털 모자와 그 위로 빨간색과 초록색의 기다란 띠 천으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있었다. 그들이 빙빙 돌며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보면 마치 우리 풍물패가 상모를 돌리고 꽹과리를 치면서 노는 것과 흡사했다. 이곳의 풍물패나 우리의 그것이나 신에게 안녕과 풍요를 비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백년의 식민지배도 뺏지 못한 원주민의 마음
이곳이 사파티스타 반군의 중심지이고 멕시코 원주민들의 민족주의적 색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가장 내 머릿속에 강하게 들어온 것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과 종교 그리고 토착문화와의 관계였다. 그것들은 이곳 차물라 마을에서 기묘한 앙상블로 조합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와 토착민들에게서 땅을 빼앗고 그들의 신을 모시는 성당을 지었다. 이 땅에는 난데없이 생판 알지도 못하는 성 요한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또띠야와 차를 준비하는 여성
길가에서 환담하는 남성들의 옷에서 강렬한 전통의 색깔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수천 년 대를 이어 살아오던 사람들은 새로 지어진 성당에서 그들의 먼 조상부터 지켜오던 종교의식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성 요한이라는 이름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대서양 건너온 침략자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그들은 아랑곳없이 그들의 조상부터 내려온 역사와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다. 어찌 존경심이 우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라색 가디건과 댕기를 함께 땋은 갈래머리로 단장한 차물라의 여성
예수도 마리아도 피하지 못한 차물라의 색깔
마을 사람들의 입은 옷을 보면 멕시코의 다른 곳에서와 같은 요란한 원색의 향연은 찾아볼 수 없다. 원색조를 벗어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옷에서 보는 색은 파란색과 초록색, 붉은색과 보라색, 그리고 검은색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차물라 마을에 오기 전 잠깐 들린 시나간탄 마을에서 또띠야를 굽는 여성의 파란색과 보라색이 어울린 복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라를 주조로 한 꽃무늬 망토와 푸른색 긴 치마가 인상적인 여성들
시나간탄에서는 길가 그늘에서 쉬는 남성들의 옷에서도 붉은색과 보라색의 화려한 꽃무늬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의상은 산 크리스토발에서도 보았으나 차물라와 시나간탄에서는 특별히 강렬하였다. 이러한 파란색과 보라색의 꽃무늬는 풍물패들의 붉은색과 주황색 바지 그리고 여성들의 양털 치마와 남성들의 양털 망토의 검은색과 함께 초칠족의 상징적 색깔로 머릿속에 들어왔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 검은색 양털 치마와 보라색과 파란색의 상의가 이들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
마을 안의 직물 짜는 집에 들어갔을 때 인상적인 것은 베틀 위에서 직물을 짜는 사람보다 그 뒤에 있는 종교적 성물들이었다. 한쪽에는 장미와 국화 등의 꽃 장식 앞에 양으로 보이는 세 마리 동물과 함께 옥수수가 놓여 있었다. 옥수수는 흰색, 보라색, 노란색, 검은색의 네 가지 색으로 십자형으로 놓였는데 그들의 옷 색깔과 예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차물라 마을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예수상과 마리아상
토착민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솔잎 위의 옥수수
그 옆에는 조그만 예수상과 성모상이 서있고 그 앞에도 조그만 예수상과 성모상의 액자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의상이었다. 예수와 마리아 모두 분홍과 보라색의 꽃 무늬와 푸른색 잎으로 꾸며진 옷을 입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예수도 마리아도 쵸칠의 전통문화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