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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May 22. 2021

마법에 홀린 욱스말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24

새들이 먼저 반겨준 욱스말


욱스말 유적도 이전에 본 유적들처럼 수많은 석조건물들과 널따란 광장들로 구성된 거대한 도시 유적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도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이 신을 위한 것이거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위해 건축된 것들이어서 신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야 사람들의 신에 대한 마음은 다른 대륙에서의 고대 문명에서 볼 수 있는 신성성을 바탕으로 한 외경심이랄까 하는 그런 것보다도 훨씬 더 본능적인 차원에서의 두려움으로 인해 만들어졌음을 느꼈다. 하기사 처음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이란 것이 두려움의 소산 아니겠는가?


긴 꼬리 검은 찌르레기 사촌(Boat-tailed grackle)과 파리잡이 새(Social Flycatcher)


마야인들이 남겨 놓은 많은 도시 유적들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면서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욱스말도 예외가 아니다. 뜨거운 땡볕 아래 유적 안으로 들어가면 옛 건물 속이 아니면 볕을 피할 곳이 없다. 한 건물에서 또 한 건물로 옮기려면 그늘 한 뼘 없는 넓은 마당을 한참이나 가로질러야 한다. 워낙 늦게 입장해서 느릿느릿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느라 들리지 못한 공간도 여럿 있다. 그래서 여기서 내가 소개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로 제한될 수밖에 없으나 그것만 해도 나에게는 벅찰 정도이다.

   

유적지에 입장하기 전 입구에서 만난 새들이 뜨거운 햇볕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멕시코의 새들은 검거나 파랗거나 노랗거나 모두가 예쁘기 짝이 없다.


독수리의 집이 된 마법사의 피라미드


유적을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마법사의 피라미드의 웅장한 모습과 피라미드에서 나온 독수리


유적을 들어가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거대한 피라미드는 욱스말 유적을 들어가는 사람을 기죽게 하는데 충분하다. 피라미드의 밑 변을 삼등분한 가운데에 거의 수직에 가깝게 보이는 계단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끝에 신전 건물이 아득하다. 수많은 돌들이 계단 양쪽으로 나뉜 삼각형의 반쪽을 채우고 있고 중앙부의 계단석이 끝도 없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한없이 왜소하게 만든다.


계단의 윗 쪽에는 피라미드 안으로 통하는 시커먼 입구가 동굴의 아가리처럼 뚫려 있는데 갑자기 독수리 한 마리가 그 속에서 나와 두 날개를 퍼덕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알에서 나온 난쟁이 왕


피라미드의 정면. 이 피라미드는 처음에는 작은 신전 건물에서 출발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증축이 되고 결국에는 모두 5개의 신전을 포함한 거대한 신전이 되었다.


마법사의 피라미드로 알려진 이 피라미드는 알에서 태어나서 욱스말의 왕이 된 난쟁이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어느 마술에 도통한 노파가 길에서 알을 주워 집으로 왔는데 알에서 아이 하나가 나왔다. 이 아이는 매우 영리했으나 키가 자라지 않았다. 노파는 이 아이가 나라의 왕이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욱스말의 왕에게 보내 왕과 재주 겨루기를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하룻밤 사이에 지은 피라미드가 바로 이 마법사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를 지은 것은 난쟁이 아이가 아니라 마술을 부리는 노파였기에 마법사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난쟁이 아이는 왕과 겨루어 승리를 하고 욱스말의 왕이 되었다. 아이와 겨룬 왕은 마지막 야자열매로 상대방 머리 내려치기에서 패하여 죽고 말았다. 이때 노파는 아이의 머리에 옥수수 가루를 발라 머리를 단단하게 하여 야자열매로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시아 문화권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난생 설화와 비슷하지만 아이의 능력보다도 마법을 쓰는 노파의 능력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이야기로 아시아 권의 설화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만 해도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왕은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 가야의 수로왕 등이 있다.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모두 왕이 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왕이 되어 한 나라의 시조가 되는 국조 설화 형태로서 존재한다.  


욱스말의 난생 설화 역시 욱스말의 왕이 되는 이야기니 왕이 된다는 것은 알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과 같이 험난한 일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마법사의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이름으로 난쟁이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이 있는 것은 이 난쟁이 왕의 이야기로 인한 것이다.


타원형으로 돌아가는 부드러운 곡선이 마치 플라멩코를 추는 스페인 무희의 치맛자락을 보는 듯하다.


마법사의 피라미드는 전체 높이가 3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큰 것은 아니었다. 본래는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 신전이 있었는데 이 위에 새로운 신전을 추가하기를 몇 차례 거듭하면서 현재와 같은 크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에는 모두 다섯 개의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들은 피라미드가 여러 차례 증축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다른 유적에서도 큰 규모의 피라미드들을 보았지만 피라미드 위의 신전 문의 화려한 장식을 멀리서나마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은 욱스말이 처음이었다. 수도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의 높은 기단 위에서 바라보는 피라미드의 신전문은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만했다.


우거진 숲 위로 우뚝 솟은 마법사의 피라미드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특이하게 보이는 것의 하나는 밑면이 사각형이 아니라 각을 둥글게 죽인 타원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모서리 부분을 보면 마치 플라멩고를 추는 스페인 무희의 치맛자락을 연상케 한다. 이것도 마법을 부리는 노파의 안목에서 나온 것인가?


유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  피라미드 위에서 유적 전체를 내려다보면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고대 마야의 기운이 가득 찬 숲 위로 우뚝 솟아 신비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마법사 노파와 알에서 깨어난 아기 왕의 이야기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마법으로 홀리듯 사람들을 유적 안으로 빨아들인다.


신성한 나무 세이바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잎이 다 떨어진 큰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초록색의 열매들을 볼 수 있다. 열매들은 마치 추상화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다. 오래전에 인도네시아의 자바를 여행하면서 본 적이 있는 이 나무는 열매 속에 목화처럼 흰색의 솜이 들어 있어서 면화 나무로 기억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카폭 나무로 알려져 있으나 스페인어권에서는 세이바로 부른다고 한다. 이번 욱스말 유적 안에서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이 나무의 열매를 본 경험은 쟈바에서 별생각 없이 보았던 기억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세이바 나무의 열매들이 아름답게 매달려 있다.


세이바는 대부분의 열대 지방에 분포되어 있으나 멕시코와 카리브해 지역이 원산지라고 한다. 건기에 잎이 다 떨어지고 난 후 열매가 커져서 마치 하늘에 열매들만 가득 매달린 모습을 볼 수 있다. 다 익은 열매껍질이 마르면 속에 들어있던 하얀 섬유에 싸인 씨들이 공기 중에 흩어져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씨를 퍼뜨리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마야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세이바는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인들에게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열매 뒤에 배경으로 서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이바를 신성하게 보이도록 도와준다.


세이바는 한국에서도 카폭 나무로 알려져 있고 열매 속에서 추출된 솜으로 만든 베개나 이불이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네모꼴의 수도원


수도원으로 불리는 건물군 중 중심이 되는 신전으로 보이는 북쪽 신전의 정면


사각형의 넓은 광장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기다란 건물들을 본 스페인 사람들은 이 건물들의 조합이 자기들이 유럽에서 보았던 수도원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건물군을 네모꼴의 수도원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건물군은 본래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수도원이 되어 버렸다.


건물들은 커다란 광장을 둘러싸고 있고 서로 다른 높이의 평면에 세워진 네 개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각 건축물의 정면에는 비의 신 차크 신상과 머리가 양쪽에 붙은 뱀의 신 쿠쿨칸 등이 투각 장식처럼 붙어 있다. 이 건물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은 남쪽에 있으며 긴 건물의 한가운데에 문이 나 있다. 문 양쪽으로는 작은 방들이 있어서 마치 조선시대 건축의 행낭채 같은 느낌이 든다. 윗부분을 삼각형으로 한 아치문에 서면 높은 계단 위에 우뚝 선 북쪽의 신전과 마주하게 된다.


수도원 공간의 입구인 남문과 남문에서 바라보는 북쪽 신전의 모습          

계단의 양쪽으로는 위의 신전에 부속된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 광장 바닥에서 계단을 감싸면서 마치 신전을 호위하듯 서 있다. 이 두 건물의 지붕 슬라브는 북쪽 신전의 밑면과 같은 평면을 이룬다. 마당과 계단이 만나는 중심부에는 비석 하나가 서 있어 이 북쪽 신전에 특별한 권위를 주고 있다.  


동서로 길게 놓인 북쪽 신전의 아래층에는 한가운데 있는 넓은 석실의 문을 중심으로 좌우 다섯 개씩의 문이 한 줄로 벌려 있어 건물을 더 길게 보이게 한다. 건물 상부에 올려진 프리즈는 아래층 높이보다 두 배 이상 높으며 모두 다섯 개의 챠크 신상이 세워져 있어 건물 전체를 장엄하게 꾸미고 있다. 챠크 신상이라고 하지만 챠크 신의 얼굴을 네 개씩 중첩하여 쌓은 형태이다.


북쪽 신전의 우측 프리즈와 모서리의 챠크 신상. 네 개의 신상 얼굴이 상하로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건물의 형태는 얼핏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또 복잡한 장식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광장의 동서 쪽에 마주 선 건물들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형태지만 차크 신 얼굴 세 개를 중첩시킨 신상은 중앙에만 있고 그 좌우에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 쿠쿨칸들이 역사다리 꼴을 이루고 그를 배경으로 작은 신상의 머리가 붙어 있다.


북쪽 신전에 서서 계단 아래 펼쳐진 광장 아래 맞은편에는 남쪽에서 신전으로 들어오는 문이 보인다. 문이 있는 건물도 광장 전체를 막고 서 있는 성벽처럼 보이는데 성벽이 서 있는 지면은 광장과 같은 평면이다. 광장의 동쪽과 서쪽으로는 광장에서 지면을 높여 신전을 지었다. 이러한 건물들의 배치는 엄격하게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광장에 서있는 사람에게 경건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오른쪽은 동쪽 건물의 정면 왼쪽은 광장 동남쪽 모서리에서 본 서쪽 건물과 북쪽 신전

남문에서 광장으로 올라서면 양쪽에 광장보다 높은 지면 위에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건물이 양쪽으로 서 있고 다시 그보다 지면을 높여 중심 신전인 북쪽 신전을 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한국의 서원이나 사찰에서 남쪽의 대문을 들어가면 나지막한 기단 위에 동재와 서재 또는 요사체가 있고 문의 맞은편에 높은 기단을 조성하여 강당이나 금당을 두는 것과 유사하게 보여서 흥미로웠다. 한국 서원의 동재와 서재, 또 사찰의 요사체 등은 학생이나 승려들의 거주공간인데 여기서도 동서로 마주 보는 두 건물은 거주민들이 생활하기 위한 공간인지 모르겠다.


동쪽 건물의 정면 프리즈 벽면에 장식된 신상들. 가로로 역 사다리꼴을 한 장대석들은 양쪽에 머리가 있는 뱀의 신 쿠쿨칸이다.

단순한 절제의 아름다움을 가진 작은 신전


수도원 공간의 남쪽으로 내려오면 작은 신전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욱스말에서 내가 가장 아름답게 본 건물이다. 지붕과 기둥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프리즈 부분에는 세 개의 작은 기둥이 한 조가 되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 기둥들은 중간 부분을 마치 끈으로 묶은 것처럼 조각을 하였는데 아래층의 기둥과 함께 건물 전체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래층의 계단식 기단부 위에 프리즈 부분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주춧돌 없이 기단부 위에 서 있는데 기둥 하나하나는 길고 짧은 세 개의 돌을 겹쳐 세웠다. 프리즈 부분도 챠크 신상 같은 복잡한 꾸밈없이 단순한 구조를 보여주는데 욱스말 유적 안에서 가장 단순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책자에는 신전으로 소개된 것도 있으나 신전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고 단순하다고 생각된다.


내게 가장 아름답게 다가온 작은 신전의 단아한 모습


또 기둥 위에는 사각형의 기둥머리가 얹혀있고 그 위에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이 있는데 이는 석재가 아닌 목재로 되어 있다. 수직으로 선 기둥과 안쪽의 벽체 위를 구성하는 천장은 역 'V'자 형을 이룬다. 천장의 아래쪽에 기둥의 위치에 목재 들보를 가로질러 천장의 무게를 받쳐준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우리나라 고대 사찰 건축의 회랑을 연상하게 하여 특별히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수도원 공간의 북쪽 신전이 중앙의 큰 석실과 좌우로 다섯 개의 석실 등 모두 11개의 석실이 있었는데 이 건물은 중앙의 기동을 중심으로 양쪽에 다섯 개씩 11개의 기둥으로 프리즈를 받치고 있어 공통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마야 문화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희게 빛나는 기둥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프리즈 부분을 받치고 있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멕시코에서 본 건물 중 이 건물처럼 내게 긴장감과 짜릿한 맛을 준 건물은 없었다.


작은 신전의 내부와 기둥 사이로 내다본 바깥 풍경



생과 사의 갈림길, 구기 경기장


구기장은 어느 유적에서나 볼 수 있다. 구기장이 있다는 것은 피라미드 신전에서 희생제의가 치러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 구기장은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나 공을 넣는 골대가 갖추어진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고무공을 튀겨서 벽 윗부분에 달린 둥근 골대에 넣는 것인데 어깨나 팔꿈치 허벅지 등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막거나 밀쳐 냈다고 한다. 경기에서 진 팀은 자신의 몸을 신에게 바치게 되며 제사장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신전에서 이들의 몸에서 심장을 추출하여 신에게 바친다고 하니 그야말로 구기 경기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러지는 것이다.  


수도원 아래 있는 구기 경기장. 규모는 크지 않으나 본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구기장은 높이 4미터 길이 34미터의 높은 벽이 폭 10미터쯤 되는 공터 양쪽으로 늘어서 있으며 벽 위쪽에는 돌로 만든 고리가 있다. 마야인들은 이곳에서 고무공을 튀겨 공을 통과시키는 놀이를 했다. 손을 쓰지 않고 어깨와 팔꿈치 허벅지 등만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둥근 고리의 골문이 완전한 형태로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경기장은 처음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멕시코에서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많이 자생하는 파나마 고무나무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에도 마야인들은 고무나무에서 추출된 천연고무를 다른 식물과 혼합하여 여러 가지 고무제품을 만들어 쓰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구기장들이 멕시코의 여러 유적에서 두루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반드시 희생제의와 관련된 경기가 아니라도 고무공을 이용한 경기들이 다양하게 있었을 것이다.




통치자의 궁전과 두 머리의 재규어, 그리고 거북이


주지사 궁전의 후면과 측면. 단일 건물로는 기단부가 매우 높은 편이다. 건물의 좌측과 우측은 삼각형으로 낸 문을 가진 석실이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건물은 세 구역으로 나뉜다.

4단의 석축을 쌓아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수도원의 신전과 같은 모양의 건물을 세웠다. 스페인 침략 이전의 마야 건물 중 가장 긴 건물로 꼽힌다. 이처럼 길이가 길면서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욱스말의 모든 건물들에서 보이는 특징인 듯하다.


수도원 신전들에서와 같이 비의 신 차크신과 깃털 달린 뱀신 쿠쿨칸 등으로 상층의 프리즈 벽면을 장식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한 외관을 보인다.  건물의 외형은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장식 없는 민짜 벽의 아래층과 차크 신상과 쿠쿨칸의 기하학적 디자인의 화려한 조각 장식의 위층 프리즈로 구성되었다.


건물의 정면 프리즈 중심에는 얼굴 주위에 새의 깃털 같은 장식이 달린 신상이 있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이를 통치자의 얼굴로 이해하여 통치자의 궁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두 머리를 가진 재규어 상과 얼굴 주위에 깃털 모양의 장식이 된 신상. 이 신상을 통치자의 얼굴로 이해하여 통치자의 궁전이라 불렀다.


외부에서 보면 건물 좌우가 잘린 것처럼 보여 세 개의 건물 같은데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된 하나의 건물이다. 위의 프리즈 부분은 아래 위로 긴 띠 장식으로 묶여 있는데 이는 뱀의 신 쿠쿨칸이다. 쿠쿨칸의 기다란 몸체는 건물의 벽면 전체를 사각형 형태의 회전 무늬를 기하학적으로 연결하면서 아름다운 추상화를 만들고 있다.


건물의 정면 계단 아래에는 넓은 마당이 있는데 그 중심에 인신공양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재규어의 왕좌'라는 석상이 있다. 몸체의 양쪽에 머리가 달렸는데 한쪽은 웅크린 듯 자세를 낮추고 있다. 이 두 머리의 재규어와 두 머리의 뱀 쿠쿨칸처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동물들이 흥미롭다. 이 재규어상을 발굴할 때 구슬이나 옥제품, 토기류, 흑요석제의 반짝이는 돌칼 등 900개가 넘는 장신구들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 유물들은 모두 제사 지낼 때 신에게 바친 제물들이라고 한다.


거북이의 집과 지붕 아래 장식된 거북이 조각


주지사 궁전 바로 아래에는 거북이의 집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욱스말 유적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주지사의 궁전에 부속된 건물이라는 설도 있다. 다른 큰 건물들과는 달리 정면 프리즈를 아무런 조각 장식도 없이 짧은 원기둥을 이어 붙인 형태로 단순하게 처리를 하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지붕 슬라브 바로 아래에 가늘게 장대석을 이용하여 띠를 돌리고 띠 위에 일정 간격으로 거북이를 조각하여 붙였다.


거북이는 중국이나 한국의 사찰 궁궐 등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몽골 알타이 지역의 차강살라 암각화나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에 까지 볼 수 있는 친근한 동물이다.  아시아 권에서 거북이는 화재를 막기 위한 영물이거나 물과 뭍 양쪽에서 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세계의 메신저적 존재로서의 신령스러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욱스말의 거북이도 물 숭배와 관련 있다는 설도 있다고 하니 거북이는 물과 뗄 수 없는 존재임은 틀림없다.       


욱스말의 전망대 대피라미드


폐허가 된 건물 뒤로 보이는 대피라미드의 원경


마지막으로 오른 욱스말 유적의 대 피라미드는 피라미드 자체 보다도 나에게는 전망대와 휴식처로서 받아들여졌다. 대 피라미드라고는 하지만 웅장함과 짜임새의 면에서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따라갈 수는 없다. 양쪽으로 아홉 개의 단으로 쌓은 석축이 비스듬하게 피라미드의 측면을 이루고 그 중앙에 피라미드 상면 폭에 맞추어 폭이 넓은 계단을 만들었다.


여느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대 피라미드의 정상에도 사원이 서 있다. 사원의 측면에는 여러 가지 조각 장식이 있는데 중심부에 앵무새로 보이는 조각이 된 석판이 끼워져 있다. 이 앵무새 조각으로 인해 이 사원은 마코 사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코(Macaw)는 중남미에 주로 서식하는 앵무새 종류이다.


대피라미드는 뜨거운 햇볕 아래 넓은 유적을 다니느라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좋은 휴식처이자 유적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이다.

모서리는 챠크 신상의 얼굴이 있고 중심에 마코 앵무새의 석판(중앙)이 있다. 오른쪽은 챠크 신상의 눈으로 소용돌이무늬가 장식된 것이 흥미롭다. 신상은 원래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대 피라미드에서 내려다 본 욱스말 유적의 전경

6세기에 들어오면서 설립되었다는 욱스말은 유카탄의 서쪽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다고 한다. 서기 900년 경 전성기에 달했고 유카탄의 소위 푸크라고 하는 넓은 지역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이웃 치첸이트사와의 동맹에 힘 입은 바 컸다. 하지만 11세기에 들어오면서 통치자로서의 구심력을 잃었고 13세기에 치첸이트사가 몰락하자 욱스말은 더 이상 유카탄의 맹주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스페인이 들어왔을 때 욱스말은 이미 주요 도시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었다. 욱스말 같은 거대한 유적들이 스페인이 들어왔을 때 이미 오래 전에 역사가 끝난 고대 유적으로서 남아 있었다니. 이런 어마어마한 도시를 건설한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었던 찬란한 문화의 끝이 어찌 이리 허망할 수 있는지 추측조차 하기 어렵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욱스말의 피라미드에서 라이트 쇼가 벌어진다.


덧붙임 : 태양신에게 심장 대신 카카오를


모든 마야인들이 직접 자기 몸을 죽여 신에게 심장을 바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욱스말 유적의 입구에는 초콜릿 박물관이 있다. 초콜릿은 신들의 음식 주로 왕이나 전사들이 마시던 고급 음료.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마야인들이 마시는 초콜릿을 마셔본 후 이를 쇼콜라트르(Chocolatre)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말은 맵고 쓰다는 뜻인데 이것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초콜릿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멕시코는 초콜릿의 원산지이며 고향이다.


초콜릿 박물관에는 흥미로운 비석이 있다. 비는 욱스말에 있던 것이 아니라 과테말라의 빌바오라는 곳에서 옮겨 온 것이다. 그러나 구기 경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과테말라에서 온 구기 경기와 관련된 비석. 초콜릿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그림이 있다.


비석의 맨 위에는 태양을 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양신이 있고 그 밑에 비석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인물이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치켜들고 태양신에게 받치고 있다. 인물 머리 위에는 두 개의 동전처럼 생긴 동그란 그림이 있는데 이는 구기 경기에서 사용하는 공이며 이 인물이 구기 경기의 선수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손에 들고 있는 카카오의 옆으로는 받침대에 올려진 잘린 머리가 있고 이는 태양신에게 받친 희생자의 머리이다.


구기장에서의 경기에서 희생자가 선택되고 그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받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봤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은 이 박물관에서 처음 보았다. 특히 들고 있는 카카오는 아직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로 마치 사람의 심장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주목되며 카카오는 심장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그림은 사람의 머리를 잘라 따로 태양신에게 바치고 또 심장을 상징하는 고귀한 열매 카카오도 바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에서 진 팀은 심장 대신 카카오를 바쳤는가? 아니면 카카오와 머리 둘 다 바쳤는가? 비석을 보면서 끔찍함과 흥미로움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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