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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Jun 07. 2021

마야 유적의 결정판,치첸잇사1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25

시골길의 아침 풍경


욱스말에서의 아침 식사는 이제껏 지나온 여행지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의 아침 식사도 기분 좋은 추억거리였지만 전체 여행기간 동안의 아침을 떠올려보면 욱스말 만큼 따뜻하고 감성적인 식탁은 없었다.


객실 건물을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조금 걸어들어간 곳의 숲 속에 차려진 식탁에는 따뜻한 빵이 보자기에 덮여 있었다. 하연 식탁보 위에는 몇 가지 과일로 채워진 유리그릇과 오렌지 쥬스 그리고 김이 오르는 커피잔이 주문한 음식 접시를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식탁 윗쪽 하늘을 보면 온통 녹색의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음식에 그리 큰 관심이 없이 사는 편이지만 이날 아침 만큼은 혼자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욱스말의 호텔에서 맞이한 아침 식탁과 그 위의 하늘을 덮은 나뭇가지들


차창으로 스치는 치첸잇사에 가는 길의 풍경은 마치 한국의 여느 시골길처럼 정겹다. 삼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일터로 가는 아빠의 앞자리에는 꼬맹이 아들이 타고 있다. 학교에 데려다주는 걸까?


길가에는 제주도처럼 돌담이 있고 초가지붕이 올려진 작은 집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촘촘히 세워 벽을 만들었다. 열려 있는 대문은 철제이긴 하지만 뼈대만 듬성듬성 얽어서 외부인을 경계하지 않는다. 대문 옆 돌담 위에는 철제 들통에 심긴 풀들이 보이는데 얼핏 보아도 꽃 보기 위해 심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반찬에 쓸 나물인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지 앞에 어린 아들을 태우고 일터로 가는 어버지의 출근길


마을의 가게의 모습도 안동 주변 어느 마을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가게 안 벽에 진열된 상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반 일용품을 파는 집은 아닌 것 같은데 판매대 위에는 저울이 올려져 있다. 코카콜라 광고 포스터가 보이는데 그 옆으로 무슨 씨앗 봉지 같은 것이 매달려 있다.


씨앗을 파는 집인가? 그리고 보니 작은 식물을 심은 바구니들이 가는 줄에 매달려 있고 또 세제를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 병을 잘라 거기도 작은 화초를 심어 놓았다. 판매대 아래도 여러 가지 깡통이나 플라스틱 통들에 가지가지 화초들이 있어 가게를 예쁘게 꾸며주고 있다.


아, 길 쪽으로 놓인 통나무 의자, 이건 정말 명품이 아닐 수 없다. 차를 타고 스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골 가게를 볼 수 있었다니. 치첸잇사 가는 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마야 고대 유적의 종합판 치첸잇사


치첸잇사는 지금까지 거쳐왔던 마야인들의 고대도시 유적 중에서도 가장 넓고 또 많은 수의 건물들이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치첸잇사의 전체 넓이는 5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도시유적보다도 넓다. 하긴 대부분의 유적들이 숲 속에 숨어 있으면서 아직도 아주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니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우물처럼 원형으로 꺼진 싱크홀, 세노테 사그라도


유적 내의 건물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것들이 많다. 쿠쿨칸의 피라미드는 말할 것도 없고 전사의 사원과  천문대처럼 알려진 카라콜 유적, 그리고 지금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구기장 등은 가히 마야 유적을 대표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떼오띠우아칸에서 시작된 마야 고대도시 순례는 이제 치첸잇사에 와서 정점을 찍는 것 같았다.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들이 한 곳에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는데 하루에 다 돌아부는 것은 힘도 들고 또 시간도 부족했다. 내  눈에 들어온 몇 군데의 유적들을 선택해서 소개하겠다.


세노테 사그라도 옆의 건물지.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잇사 족의 우물, 신성한 세노테(Cenote Sagrado)


유카탄 지역에는 수많은 싱크홀들이 있다. 이 싱크홀은 지하수가 지상으로 노출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작은 것은 지름이 10미터 이내 수면까지의 깊이가 4,5미터의 것들도 있지만 큰 것은 지름과 깊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유카탄에서는 이러한 싱크홀을 세노테라고 부른다. 세노테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해주기 때문에 농업이 발전하고 주민들의 생활도 풍요롭게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비의 신 차크가 세노테에 산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세노테는 신성한 장소로 내려오게 되었다.


치첸잇사라는 말의 뜻은 "잇사 우물의 입"을 뜻한다고 한다. 잇사는 유카탄 반도 북부의 유력 부족이라고 하니 치첸잇사 자체가 바로 유카탄 지배 부족의 우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우물이 바로 세노테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그라도 세노테를 들 수 있는데 지름 60미터 지상에서 수면까지는 27미터의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싱크홀이다. 치첸잇사라는 명칭은 이 싱크홀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그라도 세노테는 치첸잇사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거기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세노테 사그라도의 수직벽에 자란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다.


치첸잇사 경내에서 북쪽으로 깊숙한 곳에 숨듯이 자리하고 있는 세노테 사그라도는 유카탄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당연히 유카탄의 대표적인 신성한 장소로 인정되어 왔다. 사그라도는 신성하다는 뜻이다. 가뭄이 들면 마야인들은 세노테에 인신공양을 하는 것은 물론 금이나 다른 보석들, 그리고 귀중한 물건들을 세노테에 집어넣었다.


1894년 미국 영사였던 에드워드 톰슨은 유카탄에 와서 치첸잇사 유적이 포함된 아시엔다 치첸(Hacienda Chichén)을 구입하고 30년 동안 치첸잇사 유적을 조사했다. 특히 그는 1904년부터 1910년까지 세노테 사그라도의 바닥을 준설했는데 수많은 보석 가공품과 직조물, 목제품 등을 찾아냈다.


벽체와 앞쪽의 기둥만 남은 에키스톨록 사원. 사원 오른쪽 뒤로 같은 이름의 세노테가 있다.


그 후 미국의 카네기 연구소와 멕시코 정부의 조사에서 많은 자료들이 출토되었는데 세노테 사그라도에서는 성인과 어린아이의 유골이 40여구 나왔으며 금, 비취, 코팔, 도기, 흑요석, 고무, 직물 등 수천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상부의 신전에서 산사람의 심장을 꺼내 바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이 세노테에 인신공양은 물론 보석을 비롯한 값진 물건을 바쳤던 것이 확인된 것이다.


치첸잇사에 쿠쿨칸 피라미드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물들이 있어도 치첸잇사를 상징하는 유적은 당연히 세노테 사그라도라 할 것이다. 치첸잇사라는 말 자체가 그대로 세노테 사그라도를 지칭하는 것임은 물론 그 안에서 나온 유물로 보아서도 치첸잇사를 대표하는데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에키스톨록 사원 문 입구의 기둥에 새겨진 그림


치첸잇사 경내의 남쪽에도 에키스톨록(Xtoloc)이라는 세노테가 있는데 그 옆에도 작은 규모의 신전이 있다. 신전 내부의 중심에 제단이 있고 식물이나 새, 신화의 장면을 새긴 부조 장식이 있다고 한다. 또 사람의 뼈가 담긴 그릇이 바닥에서 나왔다고 하니 여기서도 인신공양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뱀의 신전, 쿠쿨칸 피라미드


지금까지 마야의 여러 유적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많이 맞닥뜨린 것은 소위 쿠쿨칸이라는 뱀 신이다. 앞의 다른 유적지에서도 여러 차례 보았듯이 쿠쿨칸이란 말은 머리에 깃털이 붙은 뱀이란 의미의 마야식 표기라고 한다. 쉽게 말을 만들자면 '깃털뱀'이라고나 할까. 마야의 유적 어느 곳을 가도 쿠쿨칸과 만나게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야의 고대 도시들은 뱀신들의 세상이다.


쿠쿨칸 피라미드의 북쪽. 세 개의 신전문이 있는 것을 보면 이 곳이 피라미드의 정면임을 알 수 있다.


마야 문화는 멕시코 뿐 아니라 멕시코에 인접한 과테말라 등 중미 전체에 분포된 문화이며 따라서 쿠쿨칸은 대부분의 중미 거주민들에게 숭배되어 온 신이다. 뱀의 주된 표현은 주로 머리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쿠쿨칸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마야인들이 받들었던 모든 신들 중 최고의 신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치첸잇사 유적에서 가장 크고 유적 전체의 대표성을 띠는 것은 단연 쿠쿨칸 피라미드라 할 수 있다. 정상부의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 설치된 거대한 쿠쿨칸으로 인해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또 엘 카스티요라는 이름도 있는데 카스티요는 성채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곳을 처음 찾은 스페인 사람에게 거대한 성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라미드의 인접한 땅 밑에서 발견된 석축과 계단. 신전은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있다.


피라미드의 높이는 신전까지 포함하여 30미터이고 신전을 제외하면 24미터이다. 또 밑면의 한 변도 55.3미터나 된다. 높이가 71미터나 되는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에는 못미치지만 어마어마한 규모다. 욱스말의 마술사의 피라미드에서 본 것처럼 쿠쿨칸 피라미드도 작은 피라미드에서부터 시작하여 증축이 거듭되어 지금 보는 것과 같은 큰 규모로 완성되었다. 최근의 조사는 피라미드 속에 작은 피라미드가 세 개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의 사용된 기간이 8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른다고 하니 적어도 400년 동안 여러차례의 증축이 있었을 것이다. 확인된 여러 작은 피라미드들은 그러한 피라미드의 확대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 계단의 아래쪽 지면에 입을 벌리고 혀를 길게 내민 쿠쿨칸의 머리가 있다. 머리 측면으로 새의 깃털 같은 장식이  보인다.


피라미드는 사방으로 신전에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지만 북쪽의 신전문이 삼문 형식으로 된 것을 보면 북쪽이 정면이라 할 수 있겠다.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의 계단들은 훼손된 부분이 많으나 북쪽 계단만은 깨끗하게 복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쪽 계단을 정면에서 마주 보면 계단 양쪽에 설치된 긴 소맷돌은 뱀 즉 쿠쿨칸의 몸이고 소맷돌이 땅에 닿는 곳에 쿠쿨칸의 머리가 있다.


쿠쿨칸은 신전에서 내려와 몸을 똑바로 편 채로 머리를 광장의 땅에 대고 아가리를 벌린 채 신전에 오르는 제관들을 맞이한다. 제관들이 신전으로 올라가려면 입을 벌린 쿠쿨칸의 머리 사이를 지나 계단을 오른다. 신전에 도달하기까지 쿠쿨칸의 몸이 계단 양쪽에서 제관들을 호위한다.


이 피라미드가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흥미를 주는 것은 계단의 갯수가 갖는 숫자의 의미이다. 사방에 설치된 중앙계단의 갯수는 각각 91개이다. 이의 총합은 364개이며 마지막 신전의 계단을 합하면 365개로 태양력에서의 일년의 날수와 일치된다. 마야인들이 천문 관측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러 유적이나 기록에서 확인되지만 그것이 이처럼 수치로 증명되는 것은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 하나, 춘분 날 오후가 되면 아홉 단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모서리의 그림자가 중앙 계단의 소맷돌 측면에 드리워진다. 이 그림자와 광선이 닿은 소맷돌 측면이 서로 어울려 마치 뱀처럼 구불거리는 형상을 볼 수 있다는데 춘분 날에는 이 광경을 보려고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몰려든다고 한다.


쿠쿨칸 피라미드 앞에선 어린이의 태블릿 화면 속으로 중앙계단이 들어와 있다.


깃털이 달렸다는 것은 날 수 있음을 뜻할 것이다. 거대한 몸집의 쿠쿨칸은 비의 신 차크물과 함께 등장하지만 대지 위의 특별한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숭배받아왔다.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한 전능한 존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신전 꼭대기에 꼬리를 두고 머리를 땅으로 내려놓은 쿠쿨칸은 마치 사람 사는 세상의 평안과 풍요를 위해 피라미드 위의 신의 세계와 땅 위의 사람의 세계를 소통시키는 존재로서 그의 절대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에서도 잠깐 말한 바 있지만 쿠쿨칸은 나에게 용에 다름 없는 존재이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물을 상징하고 농사에서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준다. 또 하늘을 날며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원자로 등장하는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마야의 쿠쿨칸이 모든 신의 정점에 있고 마야인들에게 농업을 가르친 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용의 존재와 일치되어 흥미롭기 짝이 없다.


최근의 조사는 이 피라미드가 지름 25~35에 이르는 큰 규모의 세노테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이 쿠쿨칸의 피라미드가 용이 승천한 신성한 자리에 세워진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녁해가 피라미드 뒤의 구름 속에서 붉게 하늘을 물들인다. 용이 승천할 기운이 피라미드 위로 감도는 듯하다.


네가 왜 거기서? 차크물의 무덤 샛별 제단(Venus Platform)


비너스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돌로 쌓은 건조물은 편평한 방형의 윗면을 가진 단순한 구조물이다. 마야인들은 마야 달력을 만드는데 금성의 관측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단순한 구조물은 바로 금성을 관측하기 위한 곳이라는 가설 위에서 붙여진 이름이 비너스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나에게 쉽게 잡히는 개념이 아니라서 그냥 샛별 제단이라고 붙여 보았다.


별로 높지 않은 샛별 제단은 규모에 걸맞지 않게 윗면으로 오르는 계단이 사방에 설치되어 있다. 조금 떨어져 제단을 보면 제단 전체를 완성된 건축물로 보기에는 좀 어색한 점이 있다. 그러한 느낌은 샛별 제단이 마치 한국 고건축의 기단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제단의 위치는 넓은 광장의 건너편으로 치첸잇사를 대표하는 쿠쿨칸 피라미드를 마주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제단이 쿠쿨칸 피라미드와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계단의 위쪽 끝에 설치된 뱀신 쿠쿨칸의 머리 뒤로 피라미드를 보면 둘이 무엇인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들어온다.


샛별 제단의 정면과 모서리에서 본 모습. 측면의 면석에는 재규어, 독수리, 뱀, 인물상 등의 조각이 있다.


이 제단이 치첸잇사의 다른 모든 유적들과 다른 특이한 점 한 가지는 방향성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살펴본 치첸잇사 유적 지도에서 나는 샛별 제단의 방향이 다른 건물들과 다른 점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치첸잇사 내의 모든 건축물들이 장축 방향을 북북동 - 남남서로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유일하게 샛별 제단 만이 정방형의 네 변이 정방향으로 동, 서, 남, 북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체 관측과 관계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데 샛별을 관측했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이 제단이 흥미를 끄는 것은 제단을 해체했을 때 속에서 비의 신인 차크물 석상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단은 '차크물의 무덤'이라 부르게 되었다. 차크물은 마야의 많은 유적에서 만날 수 있으며 치첸잇사에서만도 14개나 확인되었다고 한다. 상체를 뒤로 비스듬히 눞이고 두 다리를 모은 채 넓적다리를 역시 비스듬하게 하고 종아리를 수직으로 세워 불안정한 자세를 취한 인물상이다.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샛별 제단(Venus Platform)에서 발굴된 차크물 석상


멕시코 시티의 템플로 마요르 유적에서는 울긋불긋한 채색이 원래대로 남아 있는 차크물 석상을 보았었다. 이 인물상은 배 위에 넙적한 그릇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데 여기에는 신에게 인신공양으로 바쳐진 희생자의 심장과 피를 포함한 여러 제물이 놓였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차크물은 인신공양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샛별 제단의 옆에 있는 차크물 석상

그런데 이 차크물 석상이 왜 제단 위에 있지 않고 제단 속에서 나온 것일까? 이것은 폐기된 차크물일까? 여기서 출토된 차크물은 건축물의 외부에 있던 것들과 달리 매우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현재 멕시코 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차크물 석상은 팔과 다리에 끼워진 장신구들의 세부 무늬들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정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순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다. 차크물 석상이 이처럼 깨끗한 상태로 제단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은 그것이 폐기된 것이 아닐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아마도 샛별 제단을 만들면서 행한 특별한 종교적 의식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제단 옆에는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풍화가 심한 차크물 석상 하나가 있었다. 여러 유적을 다니면서 이처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차크물은 이것이 유일했는데 마모가 심해서 자세한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유감이었다.


위에는 뱀으로 보이는  조각과 작은 물고기 모양을 볼 수 있고 아래는 정면을 향한 인물상이 있다. 오른쪽엔 금성으로 해석되는 십자형 도형이 보인다.


비너스 제단의 사방에 있는 계단석 옆면에는 재규어, 독수리, 뱀, 인물상 등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대체로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과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중에는 금성으로 해석되는 그림도 있다. 아마 이 그림으로 인해서 이 제단을 샛별 제단 즉 비너스 플랫폼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계단 위에 튀어나온 쿠쿨칸의 머리 뒤로 쿠쿨칸 피라미드의 신전이 보인다.



샛별 제단과 거의 유사하게 생긴 또 하나의 제단이 인접하여 있는데 재규어와 독수리의 제단이다. 그 제단의 측면 면석에는 재규어와 독수리의 그림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제단 상면의 바로 밑에는 마치 차크물 같은 자세를 취하고 비스듬히 누운 인물상이 있다.


그림들 중에서 특별하게 나의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재규어 상이었는데, 얼핏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우리 민화의 까치 호랑이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호랑이도 아니고 까치 같은 새도 수반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규어가 앉아 있는 모양이나 수직으로 올라간 꼬리 등은 영락없는 까치 호랑이 그림의 호랑이였다.


재규어와 독수리의 제단


이 면석에 새겨진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인물의 입을 자세히 보면 모두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뱀의 혀가 밖으로 길게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신성한 쿠쿨칸의 특징을 혼합하여 묘사함으로써 신화 속의 동물과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야 문화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친숙한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재규어와 독수리의 제단 측면 면석의 그림들. 위에는 차크물과 비슷한 자세를 취한 두 인물상이 있고 아래는 까치 호랑이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재규어상과 독수리 상이 있다.
재규어와 독수리의 제단 계단 윗부분에 설치된 쿠쿨칸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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