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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Jun 17. 2021

카라콜의 붉은 해, 치첸잇사2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26

이렇게 많은 사람을 바쳐야 했나? 두개골의 제단 춈판틀리


샛별 제단 옆으로 긴 쪽의 길이가 60미터나 되는 높직한 제단은 측면이 모두 두개골로 채워져 있다. 아스텍의 언어 곧 나우아틀 어로는 촘판틀리라고 하는데 이는 두개골의 선반이나 두개골의 벽이란 뜻을 가졌다는 것이 지배적인 설인 듯하다.


처음 촘판틀리는 나무 기둥을 세워 벽을 만들고 그 속에 두개골을 넣은 형태의 구조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한 형태의 춈판틀리는 멕시코 시티의 템플로 마요르 유적에서 실제 발굴된 것이 있으며 그곳에서 나온 춈판틀리에서는 650개 이상의 진짜 두개골이 나왔다고 한다. 템플로 마요르에서는 치첸잇사에서처럼 측면 벽에 두개골을 조각한 두개골 제단도 발견되었다.


재규어와 독수리의 제단과 인접해 있는 두개골의 제단


이 두개골 제단의 바로 옆에는 구기장이 있다. 구기장에서 거행된 경기에서 이긴 팀의 주장이 진 팀 주장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그렇게 신에게 바친 사람의 머리를 자르고 그 두개골을 이 제단에 두었다는 설이 있다.


제단의 측면은 네모난 돌을 벽돌 쌓듯이 쌓았는데 모두 다섯층 중에서 맨 밑층을 제외하고 위의 네 층은 모두 두개골을 조각하였다. 어떤 것은 돌 하나에 두개골 하나가 조각된 것도 있으나 어떤 것은 장방형의 돌에 두 개의 두개골이 새겨진 것도 있고 또 어떤 두개골은 두 개의 돌에 절반씩 새겨져서 이어 붙인 것도 있다. 이러한 벽석의 구성은 벽석을 먼저 쌓고 두개골을 나중에 조각하였음을 보여준다.


맨 위와 아래의 두개골 층은 아래 위로 몰딩 처리가 되어 있어 눈길을 뜬다. 가운데 줄에 있는 두개골 중에는 머리 위에서 턱 밑으로 말뚝이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조각된 두개골들은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처음 이것을 보았을 때 동향이나 남향 등 절대적 방향과 관련 있는가? 하고 생각했으나 제단의 사방을 돌아가면서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절대적 방향보다는 좌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수백 개의 두개골이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시 템플로 마요르의 두개골 제단에 새겨진 두개골 조각을 보니 그곳에는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조각가 마음에 달린 것인가? 스쳐가는 여행자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다.



네 층으로 겹쳐 쌓은 두개골들은 맨 위와 맨 아래층은 약간 튀어나와 있고 돌의 위와 아래에는 도드라진 몰딩 처리가 되어 특별한 구역의 표시를 하였다. 이것은 제단 면석의 디자인 상의 문제같기도 하지만 거기에 새겨진 두개골의 의미가 특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개골 제단의 뒤로 쿠쿨칸의 피라미드가 마치 제단 위에 올려진 것처럼 보인다.


두개골 중에는 머리 위에서 턱 밑으로 막대기 같은 것이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표현은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나무 기둥에 꿰어 보관했다는 춈판틀리의 초기 형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이는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끔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두개골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들이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표현한 것인가? 아니면 두개골의 형상이 본래 그런 모습인가?



신이 앉던 의자인가? 재규어 사원


아래층 재규어 사원


두개골의 제단을 돌아나가면 바로 재규어의 사원을 만난다. 재규어의 사원이란 이름은 아래층의 두 기둥 사이에 재규어 석상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재규어 상은 등을 편평하게 하여 사람이 앉기 편하게 디자인되었다. 쿠쿨칸 피라미드의 신전에서도 이와 거의 같은 형태의 채색된 재규어 상이 나온 바 있는데 재규어 왕좌라고 부른다.


이러한 재규어 상의 의자는 왕의 자리인가? 그보다는 신의 자리라고 해야 더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원은 위와 아래 두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층에는 재규어상이 있고 위층에는 아래층 신전의 반대쪽을 향하여 두 개의 원기둥을 가진 사원이 있다.

 

왼쪽은 재규어 상, 오른쪽은 석실 벽과 기둥의 그림들


위 층으로 올라갈 수 없으니 위층 사원을 보려면 대 구기장으로 들어서야 한다. 재규어 사원의 위층 사원은 구기장의 동쪽 벽의 남쪽 끝 부분 상부 테라스에 있다. 이 사원은 크게 보면 아래층의 재규어 사원과 하나의 구조 속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본다면 서로 다른 사원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서향을 하고 있는 사원의 정면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 아래에는 쿠쿨칸의 머리가 있다. 이로 보아 기둥 전체도 쿠쿨칸의 몸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둥 위쪽의 정면 프리즈에는 쿠쿨칸의 긴 몸이 서로 S자 형으로 교차하여 얽혀 있고 구기 경기에서 사용하는 것인 듯한 원이나 한 발을 들고 걷는 재규어 등이 매우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구기장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위층 재규어 사원. 멀리 광장을 가로질러 쿠쿨칸 피라미드가 보인다.
사원 기둥 위의 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조.


마야 최대의 대구기장


치첸잇사에는 모두 13개의 구기장이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소개하는 대구기장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야시칠란이나 욱스말 등의 유적에서 보았던 구기장들과 비슷한 형태거나 그보다 작은 크기를 가진 것들이다. 그 대부분은 관광객들이 직접 볼 수도 없다.


치첸잇사에 왜 구기장이 이렇게 많이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구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는 단순한 공놀이 경기가 아닌 신에게 인신공양을 하기 위한 제의의 한 과정이었다고 하지만, 많은 수의 크고 작은 구기장이 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제의적 목적이 아닌 놀이로서의 구기 경기도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북쪽 수염난 남자의 사원을 향해 보는 대구기장 전경. 양쪽 벽 높이 공을 집어 넣는 골대가 매달려 있다.


쿠쿨칸 피라미드의 북쪽으로 펼쳐진 광장의 북서쪽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대구기장은 길이가 168미터 폭이 79미터나 되는 엄청난 크기이다. 축구장의 두배가 넘는다. 공을 넣는 골대가 달린 양쪽의 벽은 높이가 8미터나 된다.


구기 경기를 하는 방식은 팔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어깨나 가슴 허리 엉덩이 등을 이용하여 공을 골대에 집어넣는 것인데, 8미터나 되는 높은 곳에 달린 골대에 어떻게 공을 넣을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당시 사용하던 고무공의 탄력이 꽤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구기장 양쪽 벽 위에 설치된 고리모양의 골대. 두 마리의 쿠쿨칸이 머리를 마주대고 대결하고 있다. 윗턱에서 내려오는 날카로운 송곳니와 하늘로 치켜 올린 갈라진 혀가 인상적이다.

둥근 고리모양의 골대는 돌로 만든 것이며 두 마리의 쿠쿨칸이 서로 얽힌 채 머리를 마주대고 있다. 아가리를 최대한으로 벌린 형태로 아랫 니와 웃 니가 길게 뻗쳐 있는데 끝이 갈라진 혀가 웃니를 지나 하늘을 향해 마치 분수처럼 올라갔다. 골대의 디자이너가 가히 당대 최고 수준의 예술가였음을 보여준다.


골대가 붙은 경기장의 양쪽 벽의 아랫부분은 벽면을 비스듬하게 경사지게 만들고 구기경기와 관련된 다양한 조각이 되어 있다. 이 경사면과 골대가 붙은 수직벽의 경계에는 둥글고 긴 쿠쿨칸의 몸이 경계선을 만들고 있고 그 남쪽 끝에 쿠쿨칸의 머리가 있다. 이 머리는 지금까지 본 쿠쿨칸의 머리 중에는 가장 큰 것이 아닌가 다. 경사면에서는 무사 복장을 한 인물들과 쿠쿨칸 그리고 구기 경기의 모습 등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대구기장 측면 벽의 아래쪽 부조 부분과 수직벽과 부조 경사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쿠쿨칸의 몸체 및 머리
대구기장 벽의 아래쪽에 장식된 인물상. 
구기에 사용된 공의 부조


구기장의 남쪽과 북쪽에는 신전이 있다. 남쪽의 신전은 훼손이 많이 되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북쪽의 신전은 양쪽 벽면과 비슷한 높이로 경기장에서 보면 마치 천상의 신전처럼 아득히 올려다 보인다. 신전의 석실 전면은 두 개의 원기둥이 서 있으나 경기장을 향해 탁 터져 있어서 경기의 진행 광경을 잘 볼 수 있다.


신전의 두 기둥과 뒷 벽은  얕게 새겨진 부조 그림들로 꽉 차 있다. 벽의 상단에는 붉은색 안료의 채색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아래의 벽면에도 약간 붉은색의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부조들은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전의 위치는 한 눈에도 경기를 주관하고 승자와 패자에 대한 판정과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한 신관 또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의 자리였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대경기장의 북쪽 수염난 남자의 사원


사원 뒷 벽의 돌들은 대부분 풍화되어 그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한 복판의 돌에는 아직도 뚜렷하게 그림이 남아 있다. 망원렌즈로 촬영된 사진 속에는 턱수염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 얼굴의 턱수염은 정말 턱수염일까? 내 보기에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어쨋든 이 사원의 이름은 이 얼굴의 턱아래 붙은 것이 수염이라고 본 사람들에 의해 수염 난 남자의 사원이 되었다.


이 사원에서 행하여진 신관의 선언으로 진 팀은 머리가 잘려 촘판틀리의 제단으로 가거나 아니면 쿠쿨칸의 피라미드 신전에서 심장이 꺼내졌을 것이다. 경기의 결과를 상상해보면 경기장의 뛰어난 예술적 가치는 끔찍한 생각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사원 기둥과 뒷 벽에는 그림들의 부조로 꽉 차 있으며 벽의 상부에는 붉은 안료의 채색 흔적이 남아 있다.
벽면 중앙부에 있는 수염 난 남자의 얼굴. 자세히 보면 수염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이 얼굴로 인해 사원의 이름이 정해졌다.



천 개의 기둥을 가진 전사의 사원


쿠쿨칸 피라미드 앞 광장의 동편으로 피라미드 형의 구조물 위에 차크물 석상이 보이는 사원 유적이 보인다. 피라미드 위 넓은 테라스에는 수직으로 선 반듯한 두 개의 벽면이 양쪽으로 갈라서 있고 벽면의 끝으로 쿠쿨칸의 머리 조각이 벽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두 벽의 사이 공간에는 벽면 높이 만큼 높은 기둥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고 기둥 사이에는 비의 신 차크물 석상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차크물 석상이 있다는 것은 인신공양이 행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전사의 사원 뒤쪽으로 소규모의 구기장이 있는데 이 역시 인신공양과 관련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차크물 석상 뒤로 큰 규모의 사원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둥들이 보였다.


전사의 사원 원경. 줄지어 선 기둥들 뒤로 피라미드가 보이고 그 위 테라스에 사원의 벽과 기둥 그리고 차크물 석상이 보인다.
피라미드 상면 테라스의 기둥 사이에 누워 있는 차크물 석상. 기둥 아래로 쿠쿨칸의 벌어진 입의 윗턱이 보인다.


그 사원의 밑으로는 사각형과 원형의 기둥들이 여러 줄 열과 행을 맞추어 사원을 호위한다. 사원 안으로 접근할 수는 없어도 저만치 떨어져서 사원 밑에 도열한 기둥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원은 엄청난 감동을 준다. 이 기둥들은 위에는 지붕이 얹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냥 기둥 자체가 줄지어 배치된 것만으로도 신전을 더욱더 신성하게 보이도록 한다.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서양 고대 건축에서 많이 보이는 소위 콜로네이드라고 하는 구조가 마야 고대 건축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흥미롭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열주들의 행진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불국사나 삼국시대 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회랑 구조를 떠올렸다. 물론 중국과 일본의 고대 건축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치첸잇사에서의 경우처럼 천 개의 기둥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돌기둥들이 열과 행을 맞춰 도열해 있는 모습은 다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전사의 신전 앞에 도열한 전사의 부조가 새겨진 기둥들
줄지어 선 원형 기둥 사이로 나오는 한 아이가 마치 고대와 현대의 경계를 넘는 듯하다.

기둥 하나하나에는 전사의 모습이 많이 새겨 있다. 이 사원이 실제 사용되고 있을 당시 사원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수많은 전사 즉 군인들이 도열해 서있는 사이를 걸어 사원으로 오르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경건한 마음이 얼마나 가슴속에 가득했을 것인가?  


기둥에 새긴 전사들로 인해 사원의 이름은 전사의 사원으로 되었다. 멀리서 본 사원의 중앙 계단 위에는 두 줄로 늘어선 기둥들이 보인다. 맨 앞의 두 기둥은 쿠쿨칸의 몸체로 되어 있다고 한다.  기둥 사이 맨 앞에는 챠크물 석상이 있다. 챠크물 뒤로는 많은 기둥들이 있어 본래 상면 테라스에 큰 규모의 신전이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신전 위로 올라갈 수 없어 그 모습을 실제로 볼 수는 없다.


열주 사이로 보이는 피라미드 상부의 쿠쿨칸 머리와 인물상


피라미드 상면 테라스 위에 우뚝 선 사원 벽은 흰 화강암으로 정갈하게 다듬어진 전시장 벽을 연상하게 한다. 정면의 양쪽 벽과 측면 벽에는 비의 신 차크의 얼굴 가면이 중앙부와 모서리에 중첩된 형태로 새겨져 있으며 벽면 양쪽에 쿠쿨칸 입으로 사람을 토해내는 듯한 형태의 조각이 있다.


그러나 사람을 토하는 듯한 쿠쿨칸의 입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의 그림은 대지를 힘차게 딛고 선 독수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독수리와 쿠쿨칸의 한 몸으로 표현된 것인가? 아니면 쿠쿨칸이 깃털 달린 뱀이란 뜻이니 깃털 달린 뱀을 정면에서 묘사한 것인가?  


열주들 뒤로 전사의 사원이 우뚝 서있다. 햇빛을 받은 사원 벽이 스크린처럼 빛난다.
사원 벽의 모서리에 비의 신 차크의 얼굴이 중첩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쿠쿨칸이 사람을 토해내는 듯한 모양의 돌조각이 있다. 벌어진 입의 배경은 마치 독수리처럼 보인다.

     

카라콜 가는 길의 제단들


전사의 사원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숲 속 여기저기에 많은 건물들이 보인다. 이 건물들은 각각 여러 개의 무리를 이루며 분포되어 있는데 하루 동안 돌아보는 치첸잇사 유람으로는 일일이 들어가 볼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숙소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천문대처럼 생긴 건물을 찾아 그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천문대처럼 보이는 건물은 카라콜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카라콜로 가는 길의 주변에서 만난 첫 번째 주목되는 것은 오사리오 피라미드라고 하는 것이다.


제단으로 보이는 원형 구조물과 오사리오 피라미드


오사리오 피라미드는 대제사장의 사원이라고도 하는데 외형은 쿠쿨칸 피라미드와 판박이다. 사방에 정상부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계단의 양쪽 소맷돌은 쿠쿨칸 뱀신의 몸이다. 쿠쿨칸의 머리는 입을 벌린 채로 땅바닥에 닿아 있다. 또 중앙 계단의 앞에 제단으로 보이는 원형의 구조물이 있어 주목을 끈다.


정상에 신전이 있는 것도 같은데 정상부에서 피라미드 내부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고 하는데 통로는 지표면 아래까지 내려와 12미터 깊이의 천연동굴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또 지하의 동굴에서는 모두 7개의 무덤과 구리 방울, 수정, 조개껍질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피라미드는 천연동굴을 무덤으로 이용하기 위해 동굴 위에 지은 특별한 유적으로 쿠쿨칸 피라미드 못지않은 신비에 싸인 피라미드라 할 것이다.


쿠쿨칸의 몸체를 조각한 계단의 소맷돌과 땅바닥까지 내려온 쿠쿨칸의 머리
오사리오 피라미드 앞에 서 있는 마야 문자의 비석. 문자들을 돌 하나하나에 새겨 블록 퍼즐 게임판처럼 보인다.


카라콜로 가는 길에는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샛별 제단(Venus Platform)이나 재규어와 독수리의 제단 같은 비슷한 형태의 제단들이 여러 개 있다. 이들 중 관심을 끄는 것은 제단 위에 여러 개의 기둥이 서 있고 제단 위로 가는 계단이 없는 석단 유적이다. 이는 무덤의 플랫폼 즉, 무덤의 제단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방형의 제단 내부에서는 세 개의 방에서 사람의 유골이 나왔으며 여러 개의 그릇들과 옥제품, 구리로 만든 방울, 조개로 만든 장식품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제단은 단순한 신을 위한 제사용 제단이 아니라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석실을 갖추고 있는 합장묘인 셈이다. 이 전에도 대형 피라미드에서 시신을 안치한 무덤방이 확인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 무덤의 제단은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무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축조된 듯하다. 제단의 측면에는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출입구가 있다.


제단 위에 있는 기둥은 지붕을 얹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단과 인접하여 앞에서 소개한 샛별 제단 비슷한 제단이 있는데 혹시 이 무덤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무덤의 제단. 측면에 내부 석실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다.


카라콜 가는 길의 끝에는 라스 몬하스 컴플렉스(Las Monjas complex), 번역하면 수녀원 건물군이라고 할 수 있을 화려한 건물들이 있다. 수녀원 건물군이라고 했으나 마야 역사에 수녀가 있을리 없다. 욱스말에서도 수녀원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마야의 유적을 보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이들 유적에 가져다 붙여 이런 이상한 이름들이 생긴 것이다.


어쨌든 이 건물들은 치첸잇사에서 매우 화려한 외부 장식을 한 건물들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더위에 치쳐 허덕이고 있었다. 이 건물이 상당히 대단한 것 같았지만 그냥 그늘에서 쉬어야만 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 건물에서 치첸잇사를 통치했던 사람은 카쿠파칼 카윌(Kʼakʼupakal Kʼawiil,  869–890)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치첸잇사를 다스린 왕 중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듯했다.


이곳에 처음 온 스페인 사람들이 수녀원으로 부른 건물이다. 계단 위에 사원이 있고 사원 벽의 기하학적인 조각도 관심을 끌었으나 올라갈 수 없었다.


건물들 가운데 높은 석축과 넓은 폭의 중앙계단 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인 건물이 있다. 이 건물군들을 수녀원 건물군이라 부르게 된 건물군 중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소위 수녀원이라 부르는 건물이다. 계단 위의 사원도 규모가 작지 않게 보이는데 엄청난 높이의 단일 석축과 계단으로 인해 사원은 왜소하게 보일 정도였다.


수녀원 동편에도 몇 개의 건물들이 있었는데 외관의 화려함이 단연 치첸잇사 제일이라 할 만하다. 수녀원 건물군에 속한 건물들은 일일이 찾아가기 힘들 만큼 많은 듯했다. 들어가 볼 수 없는 곳도 많아 그냥 길 가에서 볼 수 있는 몇 개의 건물만 사진으로 남겼다.


수녀원 동쪽의 건물들. 아래 위층 벽면의 조각이 매우 화려하다.
교회(la iglesia)라는 이름의 건물 상부에 있는 챠크 신의 대형 가면들

수녀원 건물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소위 붉은 집 사원이라는 건물은 수녀원 건물과 비슷하게 높은 석축 기단 위에 붉은색의 돌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다른 건물에 비해 단순한데 뒤쪽으로 작은 구기장이 딸려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붉은 집 사원 뒤로 작은 규모의 볼 코트가 보인다.



붉은 해로 작별인사를 해준 카라콜 천문대


처음 치첸잇사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배낭을 둘러멘 채 카라콜 건물(El Caracol)을 넋을 잃고 보았었다. 장미꽃밭 뒤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돔 모양의 돌 건물은 천문대로 밖에 달리 볼 수 없었다. 마야 고대 사회에 이런 현대적 천문대가 있다니? 생각해보면 고대의 천문대가 현대의 천문대를 닮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 저건 그냥 천문대를 닮은 종교 건축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라콜(Caracol)은 달팽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외부에서 보면 높은 방형 기단부 위에 세운 원형의 건물로 돔형 지붕이 있다. 그러나 이 지붕이 실제 돔이었는지는 밖에서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원형의 1층 위에 또 같은 형태의 2층이 있고 다시 밑면이 좁은 3층의 원형 타워가 올려진 형태이다. 다만 2층과 3층의 벽체가 많이 무너져 밖에서 보기에 마치 돔과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달팽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위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나선형으로 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숙소로 정한 호텔에 도착했을 때 정문에서 본 카라콜은 신비 그 자체였다.


기단부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석축은 크게 보면 3단으로 보이는데 하부 기단 상면 한쪽에 여러 개의 기둥이 세워진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단부 상부에 있는 석비에 의하면 906년이라는 연대가 나오는데 대체로 이 연대를 카라콜 건물의 건축 연대로 보고 있다.


카라콜은 실제로 마야의 천문대 건물이었다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 전문가들의 설이다. 마야인들의 천문관측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그들이 만든 달력으로 증명된 바 있으며 이곳 치첸잇사의 쿠쿨칸 피라미드 구조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금성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서 일 년 주기를 알게 되고 그로써 태양력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제는 대부분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카라콜 천문대의 원경과 기단부 위에 우뚝 선 원형 타워


치첸잇사의 여러 피라미드나 제단에서 이러한 금성의 관측이 확인되고 있어서 치첸잇사 유적 답사의 끝을 카라콜 천문대에서 끝낸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 같았다. 치첸잇사의 하루가 카라콜 천문대 옆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보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카라콜 옆으로 붉은 해가 내려앉는다. 이 건물이 천문대였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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