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gweon Yim Jul 09. 2021

마야 여행의 코다, 툴룸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27

마야의 꼬리


나의 마야 여행은 이곳 툴룸에서 끝이 난다.


툴룸은 지금까지 지나온 마야 고대 도시의 꼬리 부분처럼 느껴졌다. 꼬리라고 해서 대단치 않다는 것이 아니다. 용의 머리에 달린 뱀의 꼬리가 아니라 마야의 머리에 달린 마야의 꼬리다. 그래서 이 꼬리처럼 조그만 유적이 없으면 마야의 머리도 의미가 없어진다.


꼬리라는 뜻을 가진 코다(Coda)라는 음악 용어가 있다. 노래 한 곡이 끝나는 맨 마지막 부분에 붙이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내용을 총정리하여 마무리해주는 부분이다. 나에게 툴룸은 꼭 그런 코다 같은 유적이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칼리브 바다를 동쪽으로 두고 남북으로 펼쳐진 툴룸 유적은 지금까지 보던 마야의 유적지와는 인상이 매우 달랐다. 바다를 끼고 있으나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등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적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어서 유적을 정면에서 보면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흰 구름 뜬 푸른 하늘과 유적 뒤쪽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바닷가의 분위기를 설명해 준다.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툴룸 유적 전경. 왼쪽 끝에 푸른 칼리브 바다가 보인다.


여기에는 이전에 지나온 많은 유적지들처럼 넓은 광장을 내려보는 웅장한 피라미드도 없고 또 넓은 광장도 없다. 유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엘 카스티요는 높이가 7.5미터로 이제까지 보았던 피라미드와 비교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유적의 뒤로는 12미터나 되는 높은 절벽이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길을 막아섰고 나머지 세 면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뚜렷한 성곽도시 유적도 마야 유적을 따라오면서 처음 만났다. 유적 안으로 들어가려면 지금도 좁은 성문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의 마야 유적들이 스페인이 들어오기 훨씬 전에 폐기되다시피 되었으나 툴룸은 스페인이 들어올 때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마야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곳이었다.


바람신의 사원


마야 유적의 미니어처


툴룸 유적과 바다 사이에는 높은 절벽이 경계를 지으면서 보호막의 구실을 한다. 도시가 앉은 지형은 바다 쪽이 약간 높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엘 카스티요 신전 등 주요 건물들이 바다 바람을 막아 도시의 중심부는 아늑하게 느껴진다. 바다는 해 뜨는 동쪽이다. 중심 신전인 엘 카스티요에 올라서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성한 감정이 가슴속에 충만해지지 않겠는가?


동쪽의 바다를 제외하면 도시 전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단면 8미터의 두터운 돌벽이다. 지금도 성문을 통과해야 유적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의 폭은 사람 둘이 겨우 지나칠 정도로 좁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길이 400미터 폭 170미터 정도로 좁다. 이 좁은 성안에 중심 신전 엘 카스티요를 비롯한 여러 신전들과 외부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탑, 벽화가 그려진 종교적 건축물 등 다양한 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건물들은 매우 작은 크기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그래서인가? 어떤 안내서에는 마야 유적의 미니어처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을 보았다.


툴룸 유적으로 들어가는 북쪽 성문. 이중으로 축조되었다. 두께 8미터, 길이 400미터



사후 세계의 입구, 세노테의 집


이러한 철통 같은 방어벽을 가진 도시에는 원활한 용수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북쪽의 성문을 들어서면 세노테의 집이라는 건축물이 있다. 세노테는 이전에 설명한 적이 있지만 땅이 꺼진 곳에 지하수가 차올라와 만들어진 일종의 지하 연못이다. 집 뒤 지하에 세노테가 있어서 집 앞에서 세노테를 볼 수는 없지만 이 세노테의 물로 성 안의 물 공급이 가능했던 듯하다. 유카탄 지역에서는 세노테로 인하여 농업이 발달했고 도시 안의 급수도 가능했다.


그래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세노테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신성하게 받들어졌다. 세노테의 집은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세노테 위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물과 관련된 신전이 아니었을까? 마야인들은 세노테가 동굴처럼 깊이 들어가 있어서 그곳이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세노테의 집에서는 무덤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이 지하세계, 곧 사후의 세계이고 영혼의 세계로 가는 문이라는 마야인들의 관념과 관계있다고도 한다.


세노테의 집. 오른쪽 뒤에 성의 북문이 보인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엘 카스티요 신전


툴룸의 중심은 엘 카스티요라고 부르는 신전이다. 엘 카스티요라는 이름의 신전은 앞서 소개했던 치첸잇사에도 있었다. 바로 치첸잇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쿠쿨칸 피라미드이다. 카스티요라는 말은 성채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적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가장 큰 건축물은 성채로 부를 만큼 규모가 크기 때문에 카스티요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엘 카스티요는 높이가 7.5미터 정도이니 중심 신전으로서는 매우 작은 편이다. 그리고 정면은 넓은 계단이 있고 계단 위로 신전이 서 있어서 다른 마야 유적의 피라미드들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대부분의 피라미드들이 사방 같은 형태를 가진 사각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과 달리 양측면에는 작은 건물이 날개처럼 달려 있고 뒷쪽은 바다를 바라보는 단순한 벽면으로 되어 있다.


카리브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엘 카스티요 신전


신전 뒤의 절벽 밑으로 펼쳐진 백사장과 카리브의 투명한 바다는 툴룸 유적으로 인해 그 빛을 더한다. 이 바다는 지금 휴양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마야인들에게는 카리브 바다의 아래 위로 남미의 여러 나라들과 연결되는 바닷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엘 카스티요 신전에서 바다를 보면 육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호초의 띠가 보이며 그곳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감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배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물자를 싣고 들어오는 무역선들이다. 곧, 툴룸은 멕시코의 물자가 외부로 나가고 또 외부의 자원들이 멕시코로 들어오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다.


무역의 중심지이니 자연히 멕시코 내륙의 물자들도 툴룸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 유카탄 반도 일대의 금제품이나 도자기 향로 플린트제 석기 등의 출토는 이웃 나라들과 어떤 물건들을 주고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신전에서 바라보이는 카리브 바다와 백사장


엘 카스티요 신전의 뒷모습과 바람의 신전


하늘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하강신


엘 카스티요 신전의 기둥 위 프리즈 부분에는 흥미로운 인물 조각상이 있다. 이 인물 조각상은 모두 신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 칸으로 나누어져 새겨진 신상은 오른쪽은 형태가 남아 있지 않고 중앙에는 거꾸로 내려오는 형태의 신상 그리고 왼쪽은 똑바로 서 있는 신상이 있다. 오른쪽은 모습을 알 수 없으나 왼쪽과 같이 서있는 신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양쪽의 신상이 중심의 신상을 호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가운데의 거꾸로 선 신상이 이 신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하늘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신상은 같은 툴룸 유적 안에 있는 '하강신 신전'으로 이름 붙은 건물에서 더 분명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형태의 신상은 이미 욱스말의 초콜릿 박물관의 비석에서 본 일이 있다. 그 비석은 과테말라의 빌바오에서 가져온 것인데 가슴에 태양을 안고 땅으로 내려오는 신이 있고 밑에서는 카카오를 바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그 신은 태양신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엘카스티요 신전의 정면
엘카스티요 신전 정면 프리즈의 신상들. 중앙이 하강신이다.



샛별에서 온 꿀벌인가?


그런데 빌바오 비석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과 이곳 툴레의 같은 형태의 신이 같은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거꾸로 내려오는 신상은 유카탄 지역에서는 치첸잇사 등 모두 네 군데의 마야 유적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툴룸에서는 위에 소개한 엘 카스티요 신전과 하강신 신전, 그리고 프레스코 신전 등 세 건물이 알려져 있다. 하강신상 관련 유적으로는 단연 툴룸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마야의 전설에는 아무센캅(Ah Muu Zen Caab)이라는 신이 유카탄 지역에 꿀벌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며, 마야인들은 꿀벌을 사람 사는 세계와 영적 세계를 연결해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꿀벌이 생산한 꿀은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이 일대 마야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상품이었다. 그 상품들은 각지로 팔려나갔는데 그 중심에는 무역항 툴룸이 있었다. 따라서 유카탄 지역에서 하강신은 바로 그 꿀벌과 관련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툴룸의 하강신 신전에 있는 신상은 어깨에 새 깃털 같은 형태가 새겨져 있고 두 다리 사이에도 꿀벌의 몸체 같은 형태가 보여서 이것이 꿀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툴룸 이외의 하강신이 있는 마야 유적들은 모두 이 일대 최대 무역항 툴룸을 경제적 중심지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하강신은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인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강신 신전
하강신 신전의 신상. 어깨에 새 깃털 같은 것이 묘사되어 있고 두 다리 사이에도 꿀벌 몸체의 하단부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하강신상은 또 금성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마야의 유적에는 금성을 관측하여 달력 제작이나 농업에 활용하는 마야인들은 금성이나 태양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건물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치첸잇사의 카라콜이다. 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상은 혹시 금성에서 온 꿀벌이 아닐까? 글을 쓰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다.


엘 카스티요 신전 아래쪽으로 프레스코 벽화의 사원이라는 건물이 있다. 프레스코는 벽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회칠에 색이 먹어 들어가도록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마야 유적에서는 보남팍 유적이 대표적이고 이미 소개한 바 있다. 툴룸에도 이와 같은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 있는 건물이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건물 정면에는 하강신의 신상 부조가 있는데 다른 곳의 신상과 달리 한 손으로는 쿠쿨칸으로 보이는 뱀의 몸체를 쥐고 다른 손은 머리 앞으로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이 1층 지붕에 작은 건물을 올린 2층 건물로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한 관측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건물의 성격은 건물 정면에 새겨진 하강신이 태양이나 금성과 관련 있다는 설과도 관계될 것이다.


프레스코 벽화 신전
프레스코 벽화 신전의 하강신 부조


기둥으로 남은 옛 궁전의 영광


위에 소개한 엘 카스티요, 하강신 신전, 프레스코 벽화 신전 등 세 신전은 툴룸의 대표적 신전 건축물이다. 그러나 나의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건물은 건물의 벽체가 거의 없어지고 기둥만 겨우 남은 한 건물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이름이 돌기둥의 집이다. 건물 앞에 서면 기단부와 조금밖에 남지 않은 벽체의 일부, 그리고 줄지어 서 있는 기둥들 만이 남아 과거의 웅장했을 건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역사 유적이 우리를 잡아끄는 힘은 과거의 원형을 상상하게 해 주는 데 있다. 우리는 그 유적의 원형을 상상하면서 거기서 일어났을 여러 가지 일들을 영화를 만들듯 재구성하고는 한다. 그러한 상상은 완전한 모습을 갖춘 유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를 준다. 빈약한 사료로 남은 고대사가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건물을 툴룸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던 궁전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돌기둥의 집이라는 이름과 함께 엘 팔라시오 즉 궁전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다 무너지고 기둥만 남아 옛 영광을 보여주는 이 모습을 보며 상처 뿐인 영광이란 말이 떠올랐다.



돌기둥의 집 또는 궁전으로 부르는 건물
다른 방향에서 본 돌기둥의 집


매거진의 이전글 카라콜의 붉은 해, 치첸잇사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