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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Sep 17. 2021

신에게 바친 사람의 마음, 나스카의 땅 그림1-나스카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33

공항 이름으로 남은 나스카의 여인, 마리아 라이헤 노이만


소위 나스카 라인이라고 부르는 나스카의 땅그림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나는 울주의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후 초기부터 암각화 조사를 해오면서 나스카 유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땅그림이란 말은 바위그림이란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번에 내가 만든 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나스카 라인(Nazca line)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림들이 땅 위에 흰색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하는 표현은 지오글립스(Geoglyphs)이다. 지오는 땅이란 말이고 글립스는 그림이란 뜻이다.


나스카의 땅그림들은 책에서 작은 사진들만 보았을 뿐이지만 항상 언젠가 가보고 싶은 목록의 한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는 그냥 보고 싶었을 뿐 실제로 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나에게 남미라는 곳은 그냥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에 지나지 않았다.


마리아 라이헤 노이만 공항에 서있는 페루아나스 항공의  6인승 세스나기. 이 비행기로 한 시간에 걸쳐 나스카와 팔파 땅그림을 볼 수 있었다.


2019년 3월 17일 아침, 나는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남아 있던 여행 리스트 속의, 그 나스카의 땅그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나이는 벌써 70을 넘어갔지만 수십 년 동안 생각해 온 그곳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마리아 라이헤 뉴만 공항. 평생을 나스카 땅그림을 조사하고 연구한 것은 물론 땅그림이 사람들의 개발에 사라지지 않도록 인생을 걸고 싸워 온 학자이자 운동가의 이름이 이곳 공항에 붙어 있었다. 이 공항은 경비행기를 이용하여 나스카 유적을 보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여 운영되고 있다.


땅그림은 길이가 수백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크기라서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는 오로지 새들만이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었다. 20세기 초 이 그림들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것도 공군 조종사들이었다. 이 그림들을 본격적으로 조사 연구한 최초의 학자 마리아 라이헤가 처음 이 거대한 그림들을 본 것도 비행기 위에서였다.


나스카 평원의 선 그림과 판 아메리카나 하이웨이. 위쪽 마을이 마리아 라이헤가 살던 카세 라 파스카나 마을이다.


독일인으로 페루에 건너와서 리마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던 라이헤는 2차 대전이 발발한 후 페루에 남게 되었다. 1940년 그는 고대 관개시설을 연구하던 미국의 폴 속 교수의 조수가 되었다. 1941년 관개시설 조사작업 일환으로 비행기를 타고 땅 아래를 관찰하던 중 눈에 들어온 나스카의 땅그림으로 인해 라이헤는 평생 페루에 눌러앉아 땅그림의 연구자가 되었고 나스카에서 죽었다.  


땅그림을 지상에서 보는 전망대에서 팔파 쪽으로 산을 넘으면 카세 라 파스카나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라이헤는 나스카 땅그림들을 돌보며 연구에 몰두했다. 라이헤가 살던 집은 지금 마리아 라이헤 박물관이 되었다.



나스카 평원은 외계인의 착륙장이었나?

이 넓은 폭의 직선들은 외계인들의 착륙지로 전해지기도 했다.


페루아나스 항공사의 6인승 세스나 기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흔적들이 보였고 내부도 몽골 사막에서 타던 소형 지프차만큼이나 험했다. 몸체와 꼬리에는 나스카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멕시코에서 온 청년 셋이 나와 한 팀으로 탔다. 조종사와 가이드까지 정원 여섯이 꽉 찬 셈이다. 헤드폰을 쓰고 알아들을 수 없는 주의사항을 짤막하게 듣고 비행기는 이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나스카 평원은 광활했다. 나스카 시에 붙어서 나스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스카 강은 서쪽으로 사막을 통과하여 팔파에서 내려오는 그란데 강에 합류되어 태평양으로 들어간다. 나스카 강의 북쪽은 사막을 가로질러 산악지대로 연결된다. 나스카 강과 산악지대의 사이는 넓은 모래사막 지대인 나스카 평원이다. 이 평원이 나스카 땅그림의 집중 분포지역이다.


마치 활주로처럼 나스카 평원을 이리저리 가로지르고 있는 직선들. 긴 것은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나스카 평원은 여느 사막과 달리 뒤의 산지에서 흘러 나스카 강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물줄기의 자국들이 가득하다. 물줄기의 흔적들은 마치 실핏줄처럼 보이는데 그 실핏줄을 통하여 먼 옛날 이 평원에 물을 공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줄기들 사이사이에 넓은 폭의 길고 긴 선들이 뻗어 있다. 우주인들의 착륙장소일 것이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로 사람의 짓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보인다. 비행기에서 이 선들을 내려다보면서 정말 이것은 외계인들의 착륙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인의 초상인가? 우주복 같은 복장을 입고 있다.


나스카 평원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외계인 설을 증거 하듯이 하나의 인물상이 나타났다. 이 인물은 산의 경사면에 서 있는 듯 묘사되어 있다. 인물상은 동근 헬멧을 쓴 것 같은 머리에 안경을 쓴 듯한 동그란 두 개의 원으로 표현된 눈을 가졌다. 또 상체와 하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오른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우주비행사의 옷차림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로 인해 흥밋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인물을 우주인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먼 외계에서 지구까지 오는 기술을 가진 외계인들이 비행체를 이착륙시키는데 이렇게 긴 활주로가 필요했다는 것은 난센스도 그런 난센스가 없다. 외계인을 무시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천상의 신들을 위한 대지의 신전


BC 500년에서 AD500년에 걸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선 그림들의 전체 합계는 1300킬로미터에 달하고 그림이 있는 면적은 450평방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엄청난 면적이다. 직선들 중 긴 것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그러면서도 직선은 그 곧기가 엄격하다. 이는 제작자들이 뛰어난 측량술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미 그림. 라이헤는 이 거미 그림을 오리온 별자리를 동물로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라 주장했다.


처음 항공측량을 하고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폴 코속(Paul Kosok)과 마리아 라이헤는 이 직선들이 천문관측과 관련 있다는 주장을 폈다.  코속은 동지에 해가 지는 지점을 향하고 있는 선을 발견했고 라이헤는 하지에 해가 지는 지점으로 향하는 선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 선을 제작한 사람들이 태양력과 관련하여 천문을 관측하는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선들 외에 여러 동물들의 형상을 묘사한 도형들도 별자리와 관련된다는 설을 발표한 바 있는데 지금은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선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한다. 지표면에서 산화철로 인해 붉은색을 띤 자갈을 제거하고 포토를 15센티미터가량 파면 밝은 색의 황토가 드러나는데 이것이 바로 나스카 라인 즉 땅그림의 선을 만드는 방법이다. 또 지표면 아래의 토양에는 석회성분이 많이 섞여 있는데 석회는 공기 중의 습기와 결합하여 그림을 고착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제작된 선과 도형들은 비가 안 오고 바람도 없는 사막 기후로 인해 수천 년을 버티고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나스카 강이 사막의 복판을 흘러간다. 이 강은 나스카 시 서쪽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시내를 동서로 관통한다.


지표면에서 제거된 갈색 자갈들은 직선이나 곡선의 가장자리에 놓아 도형의 윤곽선을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하늘에서 보면 이 윤곽이 뚜렷한 도형이 고대의 나스카 땅그림이고 그렇지 않은 가는 선들은 근래에 만들어진 대형 트럭의 바퀴 자국이 많다.


이 선들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물과 관련 있다는 설이 많다. 특히 나스카 평원의 관개 사업과 관련 있다는 주장이나 농업에서의 풍작을 기원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주장 등 농업과 관련되는 설도 많다.


능선 위의 직선들


그러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설로서는 종교적 측면에서 신의 숭배와 관련짓는 설이 유력하게 보인다.  이 지역에서도 태양을 신으로 받드는 전통이 많이 있다. 길고 긴 직선들은 종교적 장소로 인도하는 신성한 길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또 거대한 직선들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은 오직 하늘에 있는 신만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이 그림들은 신들만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능선의 편평한 정상부에 능선을 따라 폭이 넓고 긴 선들을 보면 이런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그림들이 나스카의 평원을 캔버스 삼아 신에게 바친 것이라 하면 이 평원 전체는 나스카 사람들이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신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로 보이는 그림


에게 바치는 동물들


많은 선들 사이사이에는 또 많은 동물들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나스카를 찾는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은 동물 그림들이다. 그림들은 대체로 개체의 수가 70여 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2020년까지 드론을 이용한 조사 결과 80에서 100개 정도의 도형들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실제로는 수백 개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소형 드론의 등장은 나스카 땅그림의 조사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만든 것 같다.


지금까지 알려진 동물들은 물고기, 상어, 고래 등 어류, 원숭이, 개, 고양이, 라마 등 육지동물,  벌새, 콘도르, 플라멩코, 앵무새 등 조류, 이구아나, 도마뱀 등 파충류 그리고 거미 같은 벌레도 있다. 또 식물로 나무나 꽃도 있고 드물지만 사람도 있다. 동물 중에서는 새 종류가 특별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혹시 이것은 새가 가진 종교적 특성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새는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는 동물이며 사람의 영혼을 천상의 세계로 옮겨 주는 신성한 동물로 전해진다.   


가까이 본 원숭이(왼쪽)와 개 그림. 그림들은 대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숭이의 크기는 93m*58m이다.


현장에 서서는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선이나 나선형 등 기하학적 도형들을 하늘 위에 있는 신들이 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는 설과 함께 이 동물들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동물의 모양은 매우 구체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그림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원숭이나 개의 그림을 보면 그림을 이루는 선을 따라가 보면 선이 끊어지지 않고 모두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들의 구조를 보면 현장에서 바로 땅을 파서 새기는 것은 불가능하게 생각된다. 아마도 밑그림으로 사용하는 소형의 설계도가 있었을 것이다.


물고기(왼쪽)와 고래 그림. 물고기도 꼬리 부분이 훼손되어 보이지 않지만 역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앵무새(왼쪽), 콘돌(중앙), 벌새(오른쪽). 콘돌의 길이 134m, 벌새의 길이 93m이다.
추상적 도형들 중 조개 모양(왼쪽)과 나선형. 이 도형들도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스카 평원에서 가장 긴 동물은 부리 긴 새로서 길이가 370미터에 이른다. 플라멩코로 보이는 긴 새의 옆에 또 하나의 기다란 새가 보이는데 이것이 가장 긴 새라고 한다. 이 새는 부리로 보이는 엄청나게 긴 네 선으로 이루어진 도형이 뻗어 있고 그 아래쪽에 새의 몸체로 보이는 것이 붙어 있는데 정확한 형태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 콘돌 비슷한 몸체를 가진 새가 겹쳐있는 듯 보인다.

왼쪽은 플라멩코(왼쪽)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부리 긴 새(중앙에 대각선으로 놓인 긴 직선 부분)
플라멩코 옆의 부리 긴 새의 몸체 부분. 콘돌로 보이는 작은 새가 한 마리 있고 그 위에 겹쳐서 큰 새의 머리 부분이 오른쪽에 보인다. 여기에 네 줄의 긴 직선이 연결되어 있다.


땅그림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나스카의 땅그림들이 2000년 이상의 세월을 버티어 온 것은 연평균 4mm에 불과한 강우량과 바람 없는 사막 기후, 바다에서 올라오는 적당한 습기 등 바로 하늘이 준 자연조건이었다. 거기에 이 평원은 신성한 지역이었다. 땅그림이 제작된 이후 이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성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깊이 15~20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 땅그림은 훼손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막의 모래밭도 사람들의 발길에서 무관할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것도 발로 걸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대형 트럭을 몰고 평원을 내달리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하늘에서 보는 나스카의 땅그림들은 어느 것이 그림의 선인지 어느 것이 트럭의 바퀴 자국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곳이 많았다.


활주로처럼 표현된 가늘고 굵은 직선들이 있고 왼쪽에는 여러 겹으로 표현된 곡선 도형이 있다.  오른쪽에는 대형 트럭들의 타이어 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다.


사람들이 오가기 편하려면 도로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땅그림이 있는 평원에 판 아메리카나 하이웨이가 건설되었다. 지금 나스카 전망대가 서 있는 근처에 180미터에 이르는 도마뱀의 꼬리가 고속도로에 잘려 나갔다.


1996년에는 규모 7.5의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나스카와 주변지역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상당수의 땅그림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거기에 더하여 2009년 1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가 적게 오는 이 지역에 폭우가 쏟아졌다. 고속도로에 쏟아진 빗물은 그림이 있는 평원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그로 인해 큰 손바닥 그림의 한쪽 손바닥에 모래가 밀려들어 형상을 잃은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복구되어 원형을 볼 수 있기는 하다.


판 아메리카나 하이웨이가 큰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고 지나간다. 전망대 아래쪽에 나무 그림과 커다란 손이 묘사된 알 수 없는 동물이 보인다. 이 손 그림이 폭우로 훼손되기도 했었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본 나스카 평원과 땅그림들

폭우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연재해로 훼손된 땅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고의적 훼손이다. 도로의 건설이나 트럭들의 침범으로 인한 훼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가 재생가능 에너지의 홍포용 대형 표지판을 나스카 평원에 설치하여 벌새 그림이 있는 지면에 손상을 입히기도 했다. 환경보호단체가 환경을 파괴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한 엘니뇨 피해를 막기 위해 전전긍긍한다고 한다. 이러한 기온의 변화를 비롯한 자연재해의 대부분은 사람의 잘못에 원인이 있다. 수천 년 버텨온 땅그림들이 훼손되어 하늘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바친 이 그림들을 볼 수 없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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