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gweon Yim Sep 26. 2021

드론이 찾아낸 로열 패밀리, 나스카의 땅 그림2-팔파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34

힘들었던 세스나기에서의 한 시간


나스카의 땅그림은 지금까지 나스카를 대표하던 나스카 평원의 그림과 최근 많은 그림들이 추가 발견된 팔파 지역의 그림으로 대별된다. 나스카 평원의 대표적 그림 만을 대상으로 하는 항공 투어는 30분 비행을 하며 팔파 지역까지 포함하는 투어는 1시간을 비행한다. 소형 세스나 기에서의 한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나스카 평원 상공을 선회하는 투어용 경비행기

비행기가 그림이 있는 상공을 날아갈 때는 기체를  한쪽으로 많이 기울여 비행해야 한다. 그래야 창가에 있는 사람이 땅 위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반대쪽 창가에 앉은 사람은 그 그림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비행기는 같은 곳을 반드시 왕복으로 두 번씩 비행한다. 양쪽 창가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그림을 보게 하기 위해서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비행기가 바로 다른 쪽으로 기체를 기울이고 하는 것을 몇 번 반복하면 사람들은 멀미를 하기 시작한다. 귀에서는 가이드가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헤드폰을 통해 울려대고 그에 따라 땅 위의 그림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동안 머리는 빙빙 돌고 땅그림이고 뭐고 몸을 의자에 고정시키는 것도 힘들 지경이다. 비행이 10분을 지나면서 고막이 터져라 내지르는 가이드의 고함소리를 포기하고 헤드폰을 벗어야 했다.


좁은 골짜기의 좌우 그리고 정면의 세 사면에 그림들이 보인다. 오른쪽은 나무형태, 왼쪽은 곰처럼 보이는 동물, 그리고 맞은편에도 그림이 보인다. 왼쪽 능선 위에 전망대가 보인다.


드론이 찾아낸 사람들과 동물들


그렇게 30분을 나스카 평원을 돌고 작은 산맥을 넘으면 팔파 지역이다. 이곳은 넓은 평지보다는 나지막한 구릉들이 이어져 있다. 그림들은 나스카 지역과 달리 구릉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곳의 그림들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언덕 아래에서 좀 거리를 두고 보면 전체 그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들은 나스카와는 매우 다른 특징들을 보여준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람의 형상이 있고 여러 줄의 평행선을 직선과 곡선으로 연결하여 만든 특이한 기하학적 형상들이 있다. 또 산의 능선 위에 활주로 모양의 넓적한 직선들을 길게 표현한 것들도 있었다. 이러한 그림들의 형상은 나스카 평원에서 보았던 직선 그림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나스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들이었다.


능선상의 활주로 형 도형과 직선과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땅그림들
직선과 곡선들이 얽혀서 만들어진 추상화 같은 도형. 사각형 모양으로 돌아간 두개의 나선형이 특이하다.

이 그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드론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라고 한다.  그림의 상당수는 내가 이곳에 오기 1년 전인 2018년에 발견되었다고 하니 내가 내려다본 팔파의 땅그림들은 금방 솥에서 꺼낸 아주 따끈따끈한 것들이었다.


이 그림들은 마을 가까이 있지만 실제 그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덕을 오르내려도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 그림의 존재를 알았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반에 알려지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한국이나 동북아시아 암각화 조사를 하면서도 자주 경험했던 것이다.


열 개의 얼굴로 구성된 인물상들. 마치 가족의 기념사진을 보는 듯하다. 로열 패밀리라고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인물상 그룹. 왼쪽에서 두 번째는 태양신이 아닐까 추정된다.

로얄 패밀리와 태양신상


지금까지 알려진 팔파 지역의 땅그림은 대체로 600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산 경사면에 묘사된 인물상들이다. 로열 패밀리(Royal Family)로 알려진 이 얼굴들은 8개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자세히 보면 10개 정도의 얼굴이 식별된다.


기원전 800년에서 100년 사이에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카라카스 문화의 소산이라 알려진 이 얼굴들은 사각형 얼굴에 머리 위로 수직선으로 머리카락을 표현한 것과 동그란 얼굴에 반원형으로 단발 모양의 머리카락을 표현한 것 등 두 형태로 나뉜다. 몸체는 머리보다  좀 작은 사각형을 머리 아래에 두고 그 아래 두 다리를 가늘고 짧게 묘사했다. 몸체나 머리카락이 없이 작은 얼굴만 표현한 것도 보인다.


서 있는 형태의 인물상으로 두 팔을 굽혀 양 옆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또 다른 그룹의 인물상 중에는 얼굴 윤곽 없이 두 개의 동심원으로 표현된 눈과 얼굴 하단의 일부 그리고 얼굴 주위를 태양광선 모양의 방사선으로 묘사한 얼굴이 보인다. 이런 형태의 얼굴은 팔파 지역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데 크기도 다른 얼굴과 달리 몇 배나 커서 이것은 태양신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팔파의 인물상과 비슷한 인물상은 나스카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팔파에서와 같이 산 경사면에 묘사된 인물 입상이었다. 나스카의 그 인물상도 팔파의 그림과 같은 시기, 즉 파라카스 문화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팔파 지역의 벌새 그림. 나스카의 벌새와 달리 날개나 꼬리 등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고기처럼 보이는 선 그림이 활주로 형태의 직선 그림들과 겹쳐 보인다.

사람과 함께 하는 신들에게 바친 팔파의 땅그림들


팔파의 그림들 중에서는 나스카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이 있는데 마치 현대 기계의 부속처럼 보이는 원형이나 방사형 도형, 그리고 각을 죽인 네모꼴의 나선형을 포함한 매우 현대적인 추상적 도형들, 산상에 만들어진 폭이 넓은 활주로형 도형, 나스카의 벌새와 비슷하지만 곡선으로 마무리한 벌새 그림, 구불구불한 곡선들을 이용한 물고기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 높이 올라가서야 볼 수 있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나스카의 그림들은 하늘 위에 있는 신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도 문을 열고 볼 수 있는 팔파의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가? 사람이 아닌 신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 신은 사람과 함께 있는 신들이 아닐까?


마치 기계의 부속처럼 보이는 방사선 모양 도형. 직선으로 만들어진 도형이 가는 선의 방사선 모양 도형 위로 지나가고 있다. 방사선 도형이 직선 도형들보다 오래된 것을 보여준다.
산 능선 위에 만들어진 활주로 형태의 땅그림들



팔파지역의 농경지와 맞은 편의 땅그림이 있는 산 능선들
매거진의 이전글 신에게 바친 사람의 마음, 나스카의 땅 그림1-나스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