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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Oct 05. 2021

나스카인들의 신전, 카우아치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35

나스카 문화의 생명줄 아케둑토와 와랑고 나무


나스카 시의 서쪽으로 땅그림이 집중 분포된 평원을 감돌아나가는 나스카 강은 나스카 문화를 낳은 탯줄이자 나스카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온 생명줄이다. 강은 서쪽으로 흘러 그란데 강을 만나 합류한 후 다시 남으로 방향을 돌려 태평양으로 들어간다.


강은 사막을 파 들어가 계곡을 만든다. 계곡에는 푸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사막을 슴쉬게 한다. 나스카 시를 벗어나 카우아치 유적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선인장 농장을 지나고 고고학 기념물로 지정된 오콩가야 아케둑토도 지나간다.


오콩가야 마을의 아케둑토 수로 유적


아케둑토는 수로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멀리 안데스 산에서 내려눈 녹은 물이 사막의 땅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을 샘을 파서 땅 위로 끌어올려 수로를 만들었다. 물이 나오는 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돌로 계단식 석축을 쌓아 작은 못을 만들고 수로를 파서 농지로 물을 흐려보낸 것이다. 나스카는 사막지대이지만 항상 풍부한 수자원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오콩가야 마을의 아케둑토는 계단식 석축의 맨 밑 돌 틈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나온다. 물에서는  송사리 떼가 노는 것도 볼 수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이들 아케둑토 수로들은 나스카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케둑토 한쪽 석축 사이에서 지하수가 흘러내린다.


샘의 옆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데 이곳 사막의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랑고 나무이다. 와랑고 나무는 땅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속성으로 인해서 사막에서도 지상 10미터 높이까지 성장한다. 또한 번식력도 매우 강해서 강가 저지대에는 숲을 이루고 있다. 사막 지대에서 살아가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나무였다. 지금도 나스카 강가에 늘어선 와랑고 나무는 높은 키로 인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푸른 숲의 존재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아케둑토를 덮고 있는 와랑고 나무


나스카 문화가 발달한 배경에는 와랑고 나무의 역할도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나무의 단단한 목질은 건축자재는 물론 가구의 제조나 마룻바닥을 만드는 쪽모이 세공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무껍질은 가죽을 무두질하는 데도 사용되고 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은 물감의 원료로도 사용되었다.


노란색의 꽃은 꿀벌을 끌어들여 꿀 생산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콩과에 속하는 열매는 좋은 음식재료가 되기도 했다. 뿐 아니라 와랑고는 연료로서의 비중이 매우 컸고 숯을 만드는데 좋은 재료이기도 했다. 나스카 인들의 생활은 와랑고 없이는 불가능했을 정도로 와랑고의 비중은 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와랑고의 무분별한 남벌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케둑토 수로 유적 근처에 있는 선인장 농장


결과적으로 사막의 바람이나 이따금씩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홍수 등에 나스카가 오랜 기간에 이룩한 문화는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농업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한다. 급기야 AD 600년 경 나스카 문화는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최근 페루에서는 남부 해안에 와랑고 숲을 다시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리마에서 이카로 내려오는 해안 가에서 본 묘목들은 와랑고 나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벌레 코치닐. 코치닐은 우리말로 연지벌레라고 하며 붉은색 염료의 원료로 사용한다.


나스카의 성지 카우아치


카우아치는 나스카 서쪽으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나스카 강가에 있는 성지 유적이다. 언덕 위에는 온통 흙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이 능선을 이루며 하늘과 맞닿아 흥미 있는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피라미드를 자세히 보면 큰 봉분처럼 솟아오른 봉우리의 경사진 지표면을 계단식으로 다듬고 흙벽돌로 마무리한 것이다. 겉에서 보면 흙벽돌 피라미드로 보인다.


이 유적은 유적 앞에 서서 올려다보면 그리 큰 규모로 보이지 않지만 언덕 뒤쪽으로 넓은 지역으로 수많은 유적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언덕 위쪽으로는 출입을 막아 놓아 높은 곳에서 유적을 내려다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나스카 강의 남쪽 모래 언덕에 조성된 카우아치 피라미드 유적. 유적의 뒤쪽으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피라미드를 비롯한 많은 건축 유적들이 있다.
카우아치 유적의 중앙 대 피라미드

유적의 앞으로는 나스카 강이 흐르고 강변 저지대의 푸른 와랑고 숲이 길게 띠를 이루고 있다. 강 건너에는 나스카 고원이 펼쳐지는데 그곳이 바로 나스카의 땅그림이 집중 분포된 곳이다. 지형적으로 이곳은 나스카의 땅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이곳은 나스카의 수도로 인정되어 왔는데 최근의 발굴 결과 많은 인구가 오랜 기간 거주한 곳이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유적 안에는 신전으로 사용된 건축물과 무덤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종교적 의례를 위해 임시로 거주한 집들도 있다고 한다. 또 스페인이 침공한 이후에도 중요한 종교적 순례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안토니니 박물관의 카우아치 출토 토기


유적 내에서는 많은 도자기가 출토되어 나스카 양식의 채색 도자기 문화의 화려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나스카 시내의 안토니니 교육 박물관에서 보았던 트로피 헤드 즉 목이 잘린 머리들도 대부분 이곳 카우아치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트로피 헤드와 함께 환각성 음료를 마신 흔적도 나왔다고 하니 환각제의 복용과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자르는 등의 행위가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카우아치의 도자기들은 한 개의 완전한 그릇이 한 장소에서 깨진 조각으로 출토된 것들이 많다. 이는 그릇을 특정한 장소에서 땅에 던져 깨트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의례의 과정 중에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의 삼국시대에도 있었으며 조선시대를 거쳐 최근까지 지속된 장례 풍속이었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풍속은 잡귀를 물리친다거나 이승과 저승을 단절시킨다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카우아치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졌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그릇 깨기 의식이 지구 상의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피라미드 토벽의 표면이 벗겨져 드러난 진흙 벽돌.
유적의 앞에는 와랑고 나무가 울창한 나스카 강이 흐르고 그 뒤로 땅그림이 있는 나스카 평원이 시작되는 능선이 보인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음료수를 파는 가게의 흙벽에 코카콜라 광고가 붙어 있다.


 모래 봉분 위에서 인사하는 해골들


카우아치 피라미드에서 나스카 강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면 길 가에 하얀 인골들이 흩어진 것이 보인다. 카우아치 고분군이다. 모래밭 여기저기에 백색의 두개골을 비롯한 인골들과 고대 토기들 그리고 시신에 입혀졌을 것으로 보이는 낡은 면직물들이 흩어져 있다.


 이 유적은 이미 20세기 전반에 발견되었고 수많은 도굴꾼들에 의해 파헤쳐졌다고 한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유골들과 유물들은 땅 속에 있어야 할 것들이 도굴꾼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와 모래바닥 위로 뒹굴고 있는 것이다. 나스카 지역에는 이런 곳이 헬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이곳은 카우아치 유적 바로 옆에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을 뿐이다.


이곳 전체를 다녀보지 못했지만 수없이 많은 무덤들이 이처럼 속과 겉이 뒤섞인 채 모래밭 위에 흩어져 있을 것을 생각하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한 세기를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지고 남은 고분군들의 잔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 인사하는 듯 보이는 백골들


그래도 사막은 아름답다


그렇다. 어찌 되었건, 나 같은 이방인에게 사막은 아름답다. 어린 왕자가 아니라도 해 질 무렵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모래 능선들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어찌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득히 펼쳐진 모래언덕 뒤로 해가 떨어지고 모래의 표면 위로 황금빛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비단 보자기를 덮어 씌운 듯 언덕을 덮어 왔다. 그 바람에 날리는 모래들이 마치 노을에 물든 안개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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