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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Jun 07. 2022

하늘에 내 건 땅의 소망, 아타카마의 땅그림들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62

나를 잡아 끈 아타카마의 땅그림들


이키케에 온 두 번째 날, 4월 13일이다. 오늘은 두 곳의 땅그림(Geoglifos 또는 Geoglyphs)을 답사하는 날이다. 이번 여행은 가능하면 유적답사의 냄새를 없애리라고 떠나기 전부터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떠나고 보니 첫 번 도착지인 멕시코 시티부터 오늘까지 줄곧 답사여행이 되고 말았다.


오늘 답사지는 두 곳의 땅그림이다. 하나는 핀타도스 땅그림(Geoglifos de Pintados)이고 또 하나는  우니타 모래산(Cerro Unita)에 있는 '아타카마의 거인(El Gigante de Atacama)'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인물상이다.


이키케를 벗어나면서 다시 본 시가지 위의 모래 언덕. 뒤로 보이는 바다가 인상적이다.


이 두 유적과 앞으로 찾을 예정인 아리카 근처의 암각화 유적의 존재에 대해서는 멕시코 여행 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이 땅그림 유적들은 나스카 말고도 이렇게 대단한 땅그림 유적이 있다는 데서 흥미가 끌렸다. 그리고 아타카마 사막을 가면서 그곳을 뺀다는 것이 마음속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칠레 수도 산티아고와 그 주변의 작은 도시들 그리고 칠레 남부의 한 두 군데 작은 지역의 일정을 없애고 이곳 이키케와 아리카를 집어넣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도시와 주변의 땅그림과 암각화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도착하고 말았다. 이 두 유적은 내가 찾아갔다기보다는 오히려 유적이 나를 끌어당겼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핀타도스 유적의 입구. 오른쪽 산 사면부터 땅그림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어제 오후 여행사를 찾아 알아보았으나  대중교통은 없고 또 관광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도 없었다.  관광객이 없어서라고 했다. 여행사는  원한다면 안내해줄 차량과 운전기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사람이 오늘 동행할 운전기사이다.


두 유적이 가까운 곳이 아니라서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핀타도스 유적은 이키케에서 9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서 먼저 그곳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우니타 모래산에 있는 아타카마의 거인은 돌아오면서 들리기로 했다.  


멀리서도 한눈에 전모를 알아볼 수 있는 핀타도스 유적의 땅그림들. 앞의 흰색 건물은 핀타도스 땅그림 관련자료를 전시한 전시관이다.


하늘보다 사람을 중시한 핀타도스 땅그림


핀타도스 유적으로 대표되는 아타카마 사막의 땅그림들이 페루에서 보았던 나스카 땅그림과 다른 점은 평지 그림이 없고 산의 경사진 사면에 있다는 것에다. 물론 나스카 지역의 것들에도 사면에 만들어진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스카를 대표하는 것들은 거의 평지 그림들이다.


나스카에 갈 때 그림이 있는 지역의 한 복판으로 버스를 타고 지나갔지만 그곳에 그림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가까이에서 그림의 형태를 파악하기에는 그림이 너무 거대해서 그림의 일부조차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관 입구의 벽면 위로 땅그림이 있는 산 사면과 전망대가 보인다.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땅그림은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일까? 아마도 나스카의 땅그림들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기보다 신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 위에서 그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그것들을 볼 수 있는 존재는 하늘에 있는 신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핀타도스의 땅그림은 멀리 있는 도로 위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림이 가까이 보이는 유적 현장에 서 있으면 이 땅그림들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 그림이며 사람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그림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들은 산의 능선 아래에서 산의 아래쪽 등성이까지 이어져있다. 이들은 마치 신에게 바라는 것을 땅이라는 캔버스에 그려 하늘에 걸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땅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박물관을 관람하고 박물관을 통과하면 연결되는 진흙의 대지 위에 낸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맞은편에 길게 펼쳐진 산의 사면과 그 사면을 캔버스로 해서 제작된 땅그림들을 볼 수 있다.  


전시관 내부. 땅그림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달 두꺼비? 해 두꺼비?


땅그림은 대체로 기원후 7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더 좁혀 말하는 사람은 1000년에서 1400년으로 본다는 자료도 있다. 지금부터 따지면 대략 600년에서 1000년 정도 이전에 제작된 것이니 생각한 것보다는 그리 오랜 것은 아니다.  


이 땅그림들을 잉카 문명의 어머니격인 티와나쿠 문명의 영향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아타카미 사막은 잉카 문명권의 최남단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용 길에서 마주 보이는 땅그림들


작은 것은 길이가 4미터 정도, 큰 것은 10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제작 방법은 나스카의 것들과 비슷하다. 검은색을 띠고 있는 지표면을 긁어내서 그림의 형태를 따라 밝은 색의 흙이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과 돌을 모아서 그림의 윤곽선에 늘어놓는 방법 등을 사용하고 있다.


관람용 길을 걸으면서 길 양쪽에 경계석으로 늘어놓은 자갈돌들과 길 바닥의 모양이 범상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길의 형태와 제작 방법은 바로 지금 내가 보고있는  맞은편 산의 땅그림 그대로였다. 니는 뭔가 대단한 것이나 발견한 것처럼 스스로  놀라서 내가 밟고 있는  길과 건너편 산의 땅그림들을 번갈아가며 보고 또 보았다.   


땅그림을 관람하도록 설치된 길. 길의 조성 방법은 땅그림의 제작방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림의 내용은 동물이나 인물상 등도 있지만 대부분은 추상적인 기호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대부분 음각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양각처럼 그림의 주변을 파내서 그림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들도 있다.


또 음각으로 파냈으면서 내부에는 양각의 기법을 사용한 것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음각으로 그림이 들어갈 전체 윤곽을 만들고 그 내부에 양각으로 그림의 주제를 표현한 것이 많이 보였다.  


산 경사면에 새겨진 그림들. 중앙에 두꺼비처럼 보이는 두 그림과 그 위로 허리가 잘룩한 긴 네모꼴이 보인다. 안쪽으로는 야마처럼 보이는 동물과 화살표 모양의 그림도 있다.


추상적 기호로 보이는 것들은 원이나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을 원호로 잘라낸다든가 화살표 모양 등이 많이 보였다. 동물 모양 중 흥미로운 것은 땅 표면을 원형으로 긁어내 밝게 만들고 그 안에 두꺼비 같은 형태의 동물이 있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중국 한대의 화상석이나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달 속에 든 두꺼비 그림을 연상케 했다. 그 옆으로는 반대로 음각으로 긁어낸 두꺼비의 뱃속에 동그라미가 양각으로 새겨진 것도 있었다.     


음각과 양각의 두꺼비 그림


이 음각의 큰 동그라미 속 작은 두꺼비와 음각의 큰 두꺼비 속의 양각의 작은 동그라미는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태양 숭배가  매우 강한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지역이므로 이것이 달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태양과 관계될 가능성이 높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섣불리 갖다 붙이기에는 아는 게 워낙 부족하다.  


산 정상 일대의 음각으로 새겨진 인물이나 동물들, 그리고 원모양의 기호들


두꺼비 그림 위쪽에도 마치 칼 손잡이처럼 생긴 허리가 잘록한 긴 사각형이 음각과 양각을 섞어 새긴 것이 보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그림들이 고대 무역로를 따라 분포된 것이라 보고 무역로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의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정표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러한 주장은 이러한 그림들이 여행자들에게 여행의 안전을 위한 의식을 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있음을 말해준다. 마치 우리나라의 길가나 고갯마루에 있는 돌무지 성황당이나 장승같은 것이 가지는 의미와 같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산의 사면에 그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러나 이러한 대규모의 땅그림들은 이곳이 성스러운 공간이며 오랜 기간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장기간 성스러운 공간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마을과 관련될 것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오래된 흙벽돌 집터 뒤의 산 등성이에 땅그림들이 보인다. 집과 비교하면 그림들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모래산에 누워 있는 아타카마의 거인


핀타도스를 나와 온 길을 다시 돌아가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얼마 안가 우아라 마을이 나온다. 우아라 마을의 두 갈래 길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15킬로미터 정도 달리면 넓은 평원에 작은 동산 같은 산 하나가 나지막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은 산은 주변에 아무런 돌출된 지형도 없어 누구라도 거기에 무언가 있을 법한 느낌이 든다.   


몽골이나 시베리아 남부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암각화 유적을 답사하면서 특이하게 느낀 점의 하나는 대체로 독립된 산의 남쪽 사면에 그림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그림들이 있는 곳은 다른 평범한 지형이 아니라 다른 세계와 떨어진 신성한 공간으로서 독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멀리 평원 위에 홀로 떨어진 산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아타카마의 거인이 누워 있는 쎄로 우니타 산의 원경. 능선의 왼쪽 부분에 거인상이 보인다.


그 작은 산을 여기서는 쎄로 우니타(Cerro Unita)라고 부른다. 우니타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언덕이란 말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게 느껴져서 그냥 쎄로 우니타라고 부르기로 했다.  쎄로 우니타 뒤로는 안데스가 바람벽처럼 평원을 막아서 있다. 그 안데스를 넘으면 볼리비아이다.


쎄로 우니타를 구글에서 위성사진으로 보면 마치 고래 한 마리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듯하다. 아타카마의 사막을 바다 삼아 한 마리 고래가 바다에 떠 있는 것이다. 그 고래 등 위에 한 사람이 길게 누워 쉬고 있었다.     

쎄로 우니타 유적 입구. 정면의 그림은 넓은 띠의 직선들이며 이 산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거인상을 볼 수 있다.


도로에서 쎄로 우니타로 접어들면 마주 보이는 모래산 등성이에 여러 개의  긴 수직선들이 산 능선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마치 넓은 폭의 긴 헝겊 띠를 늘어뜨려 놓은 것 같다. 이 긴 띠들 옆으로  이보다 가는 띠들도 여러 줄 있다.  그림들은 검은색 땅의 표면을 제거하여 흰 바탕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선의 윤곽은 긁어낸 자갈돌을 늘어놓아 뚜렷이 보이도록 하였다.


이렇게 직선으로 내려오는 띠들 외에 비슷한 폭의 원들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띠 모양이나 원 모양의 그림들이 의미하는 바는 알 수 없으나 신들과 소통하는 기호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직선으로 묘사된 넓은 띠 모양의 그림 세부
직선과 원의 그림들


아타카마의 거인(El Gigante de Atacama)이란 이름이 붙은 거대한 인물상을 보려면 입구에서 직선들이 묘사된 맞은편 등성이를 왼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긴 등성이가 끝나가는 지점쯤에서 위를 보면 사람 형상의 그림이 바로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의 발 밑쪽에서 바로 올려다보면 인물상은 전체 길이가 압축되어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약간 옆으로 가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측면을 보면 이 인물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정면에서 올려본 아타카마의 거인. 오른쪽은 실측도면을 참고로 비례에 맞춰 사진을 늘린 것이다.


인물상의 길이는 120미터라고 하는데 현재 인물상 묘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아타카마의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다. 제작 연대는 기원 후 1000-1400년 경으로 핀타도스의 땅그림과 같다고 한다. 이 인물상은 이 지역  주민들이 그들의 신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농사짓는데 필요한 작물주기 또는 계절과 관련된 중요한 날짜를 알려주는 천문력의 기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인물상은 사각형과 원형 등을 결합하여 만들었는데 팔은 양 어깨에 V 자 모양으로 구부려 붙였고 다리는 양쪽으로 벌리고 서 있다. 머리는 네모꼴로 폭이 어깨 폭과 거의 같아 매우 크게 묘사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머리카락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짧은 수직선이 하늘을 향해 뻗쳐 있다.      


측면에서 빗겨 본 아타카마의 거인


두 다리 사이에는 남성의 성기가 묘사되어 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본 실측도에는 성기를 묘사하지 않았다. 성기의 묘사는 자손번식이나 농업 또는 목축에서의 생산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선사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므로 이 인물상에서도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아타카마의 거인이 보이는 모래산 아래쪽에는 자갈돌을 이용하여 어떤 도형을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있다. 이들이 거인상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인물상 양 옆 또는 인물상과 겹쳐서 여러 개의 동물상도 있는데 이 것은 이곳의 그림들이 여러 시기에 걸쳐 중복되어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곳 주민들이 이 모래산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신성한 지역으로 모셔왔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아타카마 사막 지역에는 오늘 찾아본 두 곳 외에도 안토 파가스타의 축축(Chug Chug) 유적이나 치자(Chiza) 유적 등이 알려져 있는데 이 유적들 모두 훼손이 심하여 현재 보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아타카마의 거인상이 있는 쎄로 우니타도 사람들의 접근은 너무나 쉽고 감시의 눈은 너무나 적다.
쎄로 우니타에서 본 아타카마 사막. 멀리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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