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대부분의 도시에는 시 중심에 소칼로라고 하는 광장이 있고 그 도시를 대표하는 대성당도 그 광장 한편에 있다. 그런데 와하카를 대표하는 성당은 소칼로에서 500미터쯤 떨어져 있다. 바로 산토 도밍고 성당이다. 이 성당의 앞 광장은 소칼로에 있는 와하카 대성당의 광장보다 더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 와서 시민들에게 하소연하는 곳도 이곳 산토 도밍고 성당의 광장이다.
와하카 주변 농촌 마을에서 광산의 공해물질 배출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산토 도밍고 성당은 멕시코의 역사적 부침을 따라 많은 수난을 겪어 왔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부대가 주둔하는 병영이 되기도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지진은 이 아름다운 건물이 제 모습으로 유지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수난을 겪어 오면서도 이 성당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최근까지 복구작업이 계속되어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우리 앞에 서 있다.
성당에 붙어 있는 수도원 건물은 지금 와하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고 수도원 뒤편은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의 정원이 되어 멕시코를 대표하는 식물원이 되었다.
산토 도밍고의 족보에서 시작되는 제단 길
성당 문을 들어서서 중앙 제단 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천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 도미니크 곧 산토 도밍고의 족보 그림이다. 이 천장화는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라 일종의 부조이다. 황금색의 나무줄기와 가지들이 덩굴처럼 얽혀 있고 가지 사이에는 포도처럼 보이는 열매들이 달려 있다. 가지 끝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옷을 입은 인물의 상반신이 꽃처럼 매달려 있다. 이들은 모두 도미니크 교단을 창설한 스페인의 도밍고 펠릭스 데 구스만(Domingo Félix de Guzmán)의 계보를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유럽에서 기독교의 중요한 성인들의 가계를 나무 형태로 묘사하는 전통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로부터 시작되는 족보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는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 기독교 예술의 한 장르로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이제 멕시코의 와하카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핀 가계 족보 그림의 정수를 산토 도밍고 성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사람의 혈통이 이어진 계보를 나무에 빗대에 표현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생명을 지속시키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어떤 숲에는 9600년을 살고 있는 독일가문비 나무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 있는 나무에 신성성을 부여하고 그들이 받드는 성인들이 이 나무처럼 오래 오래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있기를 기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당의 현관 입구에서 정면 제단을 향해 서면 머리 위로 성 도미니크의 족보 그림을 볼 수 있다
족보그림의 전체와 부분. 나무의 제일 위쪽 끝에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보인다.
성가대석에서 보는 성당의 구조
족보 그림의 위는 이층 성가대 석이다. 성가대 석의 천장은 궁륭형으로 되어 있고 궁륭형 천장은 멀리 사제가 집전을 하는 제단 위까지 이어진다.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는 천사의 합창처럼 궁륭형 천장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쪽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의 머리 위로 내려온다. 신자들의 귀에 천사의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이다. 신자들은 일주일 간의 노동의 결과로 얻어진 예물을 가지고 이러한 신성한 분위기에 취해 아낌없이 그들의 하느님께 예물을 드린다. 내가 보는 성당의 구조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성당 안에 들어서면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 듯한 마음이 일어난다.
성가대 석 천장에는 메달 모양으로 장식된 순교자들의 초상이 있다. 그 궁륭형 천장에서 제단을 향해서 예수와 성모의 생애를 비롯한 여러 성도들의 모습이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에는 4인의 교황을 포함한 성도들의 황금색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왼쪽은 성당 입구로 천정은 도미니크의 족보도, 그리고 이층 성가대석 천장에 순교자들의 그림이 있다. 거기에 오른쪽의 성모와 예수의 생애 및 여러 성도들의 그림이 이어진다.
4인의 교황과 성도들의 천장 부조
사람의, 사람을 위한, 위대한 정신의 힘
나는 이 치밀하고 장엄하며 경건하고 긴 이야기 구조 속에 감추어진 작가의 정신적 집중이 쏟아내는 기에 눌려 주눅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뛰어난 정신의 힘이 신을 위해 쓰이지 않고 인간을 위해 쓰였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니 어느 시대나 예술가의 마음속에는 인간이 신보다 먼저였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어떤 위대한 종교 미술 속에도 당시 사회 속에 감추어진 인간들의 고뇌와 갈등들이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고려 탱화의 정교함과 아름다운 관음보살의 자비로운 미소도 떠올랐다. 그 미소는 중생의 구제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귀족의 사치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함석헌 같은 비분강개형 역사관으로 고려청자나 탱화를 보는 데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걸출한 종교 미술 앞에 설 때면 앞서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했었다.
무신론자의 쓸데없는 잡생각인가?
성모 마리아를 모신 성모 방의 마리아 상과 천장 돔의 장식
박물관이 된 수도원
성당의 옆에는 수도원이 붙어 있다. 아니 바로 말하면 성당은 수도원의 부속 시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토 도밍고 성당은 산토 도밍고 수도원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수도가 필요 없어졌는가? 현재 와하카 지역의 역사 문화 박물관으로 꾸며진 수도원은 박물관 이전부터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벽마다 마치 액자처럼 제작된 프레스코 화의 성인 그림들이 미술관에 걸린 그림처럼 보인다. 이 그림들이 붙어 있는 회랑 또한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건축을 보여주고 있어 방안의 유물보다 해가 잘 드는 회랑에 앉아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풍요롭게 느껴진다. 회랑의 기둥 사이로는 수도원 안마당이 내려다 보이고 마당에는 돌기둥 사이에 분수가 솟구친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그 평화로움에 내가 마치 몇 백 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것 같다.
수도원은 분수가 솟구치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회랑의 기둥 안쪽에는 도미니크 교단의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프레스코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다
수도원 안마당의 분수
아랫부분이 사라진 수도원 회랑의 기둥 모양 벽화와 감실 둘레의 장식이 잘 어울린다. 거기에 누가 갖다 놓았는지 꽃병까지 더해져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성당 안의 한 예배당에서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당의 지하로 내려오면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는 안 마당이 있어서 지하로 생각되지 않고 따뜻한 햇살이 창을 통해 서고 안까지 들어온다.
성당은 끊임없이 보수된다. 문화재 복원 전문가들이 성당 내부의 조각상들을 복원 처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