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어느 골목엘 들어가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광장에는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성당이 눈앞을 막는다. 그리고 머리를 들면 사방으로 팔을 벌린 나뭇가지들 틈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와하카 시는 와하카 주의 주도이니만큼 인구 25만이 넘는 작지 않은 도시이긴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구 도시는 한나절이면 여기저기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이다. 이 좁은 지역에 박물관이 무려 50개가 넘는다. 그러니 길을 가다가 저 집은 좀 오래되었다고 생각된다거나 모양이 좀 특별하다고 생각되면 그곳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임이 거의 확실하다.
로스 핀토레스 박물관의 안마당. 하늘이 천장에 걸어 놓은 쪽빛 면포처럼 보인다.
그중에서 내 관심을 끌 만한 것으로는 루피노 타마요 프리이스파니코 미술관(Museo de Arte Prehispanico de Mexico Rufino Tamayo), 로스 핀토레스 박물관(Museo de Los Pintores Oaxaque) 그리고 알바레즈 브라보 사진미술관 (Centro Fotográfico Álvarez Bravo) 등이 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전시된 내용도 볼만하지만 나에겐 건물 자체도 전시품 못지않게 볼거리의 대상이 된다. 특히 밖에서 볼 때는 후줄근하고 낡은 평범한 건물에 지나지 않던 건물도 안으로 들어서면 다른 세계에 온 듯 색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로스 핀토레스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침침한 건물의 현관을 들어서면 놀랄만한 백색 경관이 펼쳐진다. 흰색의 아름다운 기둥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2층의 건물은 마당만큼의 넓이로 뚫려있는 하늘까지 한 폭의 미술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전시실의 미술품을 본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하늘 보는데 써버리고 말았다.
대문부터 사진 거리인 사진 박물관
알바레즈 브라보 사진 이술관
길을 가다가 붉은 벽 가운데에 노란색 테두리를 두른 대문에 눈이 들어왔다. 보도의 끄트머리에 검은 색 가로등이 높직히 서있고 자전거 한대가 기대 있었다. 그 원색의 조화에 끌려 카메라를 꺼내 든 순간 노랜 대문으로 노란색 옷의 여성이 나오고 있었다. 촬영부터 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내가 가보려고 예정했던 알바레스 브라보 사진박물관이었다. 알바레스 브라보는 그의 사진 작품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멕시코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사진가이다.
사진미술관 안뜰벽의 꽃덩굴
그는 20세기 초반 어린 시절에 멕시코 혁명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자랐고 20대에 들어서면서 사진작가로 살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 작업은 대부분 멕시코 원주민들을 멕시코의 중심에 내세우는데 쓰였다.
1902년에 나서 2002년에 죽었으니 백 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았고 스무 살 무렵부터 사진을 시작했으니 80년을 사진작가로 살아온 셈이다. 그가 살아온 백 년은 멕시코의 근대사 자체였으니 그의 작품들이 세계기록유산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또 멕시코의 벽화들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도 알바레스 브라보의 사진 때문이었다고 한다. 멕시코로서는 그가 단순한 사진예술가로서가 아닌 멕시코 혁명의 증인이고 멕시코 현대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린 현대 예술의 중심축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와하카의 축산 박람회에서 보트를 탄 두 여인을 촬영한 사진으로 그는 처음 큰 사진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멕시코 시티에서 보냈다. 그러나 1996년 와하카에 알바레즈 브라보 사진 센터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그의 첫 사진상과 연관되지 않을까 짐작된다. 이 사진 박물관은 바로 그 사진 센터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노란 대문을 들어서니 갑자기 눈앞이 현란해졌다. 햇볕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맞은편에 붉은색의 꽃을 매단 덩굴식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루피노 타마요 프리이스파니코 미술관
겉과 속이 다른 박물관들
우리의 박물관들은 우선 겉모양이 다른 건물들과 선명하게 구별된다. 그것들은 주변의 건물에 비해 권위적이기도 하고 특별한 예술성으로 눈길을 끌기도 한다. 와하카의 박물관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건물의 외양들이 명성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볼품이 없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낡은 옷을 걸친 노인처럼 느껴졌다. 그 대표적인 곳이 타마요 고대 미술관이다. 정식 이름은 루피노 타마요 프리이스파니코 미술관(MUSEO DE ARTE PREHISPANICO DE MEXICO RUFINO TAMAYO)이다.
루피노 타마요 미술관 안뜰의 벽에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프리이스파니코 미술관이란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지로 되기 이전의 유물을 전시한 미술관이란 뜻이다. 멕시코의 역사는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오기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뉜다. 16세기에 스페인이 들어왔으니 멀리 구석기시대부터 16세기까지가 하나의 시대로 묶여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프리이스파니코 미술관은 곧 고대 미술관이라 불러도 크게 잘못은 아닐 것이다.
루피노 타마요는 현대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러나 그가 왕성하게 활동을 하던 20세기 전반기에 멕시코의 미술가들은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작품화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타마요는 미술작품이 특별한 지역이나 민족을 위해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보편적 미의 세계를 추구하던 타마요는 멕시코에서 견디지 못하고 뉴욕으로 가서 활동하였고 크게 성공하였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나서야 그는 다시 멕시코 시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루피노 타마요 미술관의 일부. 전시실은 조명으로 인해 마치 수족관에 들어온 듯하다.
그는 한편으로 멕시코의 고대 유물들이 유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야와 아스텍 문명이 남긴 유물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였다. 한국으로 치면 전형필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의 수집품의 대부분은 이 와하카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많은 고대 미술사학자들에게 와하카는 특별한 도시로 기억된다.
와하카 섬유박물관 2층에서 내다 본 안뜰 공간
그런데 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대 토기들보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유물 자체가 아니라 전시장의 조명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붉은색과 푸른색의 진열장 속에 흙으로 빚은 토기나 토우들이 제각각 포즈를 취하고 관람자들을 보고 있는데 그 모습은 배경색으로 인해 무척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타마요 적인 전시 방법인지 모르겠다.
박물관을 기웃거리다 보면 전시품보다 건축구조에서 경이로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와하카 섬유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좁은 안마당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서 놀랐고 2층 복도에서 내다 본 공간 체험이 또한 놀라웠다. 와하카의 박물관들은 이래저래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세계적 샤먼을 길거리에서 만나다
60년대의 세계적 샤먼 마리아 루비나의 흑백 포스터가 걸린 길거리 서점
길을 걷다가 보도 한쪽에 설치된 잡지 판매대가 눈에 들어왔다. 각종의 크고 작은 잡지들이 거치대에 가득 전시되어 있고 사람 키보다 약간 높은 천정에는 여러 종류의 포스터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 큼직하게 인쇄된 여자의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 사비나(Maria Sabina)라는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멕시코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인상 깊게 보았던 그 인물이 와하까 사람이란 것을 길거리 서점에서 알게 되었다.
마리아는 신비한 버섯을 가지고 의식을 행하여 병자를 치료한다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샤먼이었다. 1960년대 히피 문화가 세계를 휩쓸 때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마리아를 찾아왔다고 하고 유명한 록 가수들이 찾았다는 말도 전하고 있다. 어쨌든 마리아는 신성한 여성 샤먼으로 와하까를 대표하는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거리 어디에서나 마날 수있는 옥수수 장수
너무나 예술적인 거리의 사람들
거리를 걷다 보면 골목 양쪽에 들어선 요란하지 않은 채색의 건물들도 아름답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조차 예술 작품인 양 보인다. 이것은 이방인의 눈에 들어온 낯선 세계의 일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경이 아무리 훌륭해도 무대에 올라선 배우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배경조차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배우와 무대가 서로 어우러진다는 것은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
나는 광장 한편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나뭇가지에 걸린 낮달까지 한참씩 바라보며 앉아 있고는 했다. 그것은 미술관에 앉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나 극장에 앉아 연극 공연을 감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과 거리를 지나는 사람과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나무들과 건물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시장 풍경은 어디서나 친근하다.
나그네에게도 여기서 뿌리내려 사는 사람에게도 이 도시는 편안하게 다가온다
길이 아름다우면 사람도 길 위를 나는 새들도 길 가에 앉아 있는 노점상까지 모두 작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