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기념물 앞에 서면 나 자신이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저 기념물도 나 같은 사람이 만든 것임을 생각하면 사실 내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 어떤 힘 있는 자가 나 같은 사람들을 가혹하게 부렸겠지. 참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해의 피라미드. 밑면은 긴변 231.6미터 짧은 변 219.4미터 높이 65미터이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이처럼 계산할 수도 없는 인력과 시간을 바쳐서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돌덩이들의 구조물을 만든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명분이 사람들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도 이처럼 많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 그것도 바로 사람의 생명을 바쳐서 하는 일이라니. 그 신이라는 것도 실은 사람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할 나위조차 없지 않은가? 신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떼오띠우아칸에서 태양의 피라미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떼오띠우아칸 유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기원전 300년 경에 축조되어 천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이 도시는 700년경 갑자기 사라졌다. 그로부터 다시 600년이 지나 아스텍인들이 이곳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곳에 들어와서 어마어마한 유적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떼오띠우아칸이라는 이름도 아스텍인들이 붙였다고 한다. 지금 전하는 대부분의 유적의 명칭은 모두 아스텍인들이 붙인 것이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카르낙 열석 유적에 가본 적이 있다. 수많은 선돌들이 십여 줄씩 줄을 지어 수 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유적이다. 작은 돌은 1미터도 안 되는 것도 있지만 큰 것은 4미터가 넘는 것이 있다. 그 앞에 서서 늘어선 돌을 보면서 사람이란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사람의 힘이 위대한 것인지, 위대한 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인지, 막상 이런 유적 앞에 서면 사람의 이런 엄청난 행위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머리가 먹먹해지곤 한다.
테오티우아칸 또는 여타의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산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죽은 자의 집으로 지어진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구별된다.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신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이집트의 것은 죽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다. 하긴 이집트에서도 죽은 자와 함께 산 사람을 매장하는 순장제도가 있었다고 하니 신분이 낮은 평민 이하의 사람에게는 뭐가 더 낫고 못한가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온몸을 내놓고 까마득히 높은 피라미드의 정상으로 올라간다. 태양의 피라미드 위에는 2월 말이지만 한증막 같은 열기가 가득했다. 그곳에 올라선 사람들은 거기서 산채로 몸을 갈라 심장을 꺼내 저 뜨겁게 타는 태양에게 바쳤다는 잔혹한 역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죽은 자의 길 남쪽 건물군에 있는 깃털 달린 뱀의 머리 조각
죽은 자의 길과 달의 피라미드
인신공양을 한 피라미드는 달의 피라미드가 더 유명하다. 달의 피라미드는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시기는 더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 앞을 지나는 직선의 도로를 죽은 자의 길이라 부른다. 태양의 신에게 자신의 몸을 신에게 바칠 사람들이 이 넓고 곧은길을 걸어서 달의 피라미드로 간다. 뜨거운 태양 아래 멀리 자기들의 심장이 바쳐질 달의 피라미드를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희생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신에게 자신을 희생물로 바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몸이 선택된 것을 신에게 원망하였을까?
달의 피라미드 앞에도 많은 제단 피라미드들이 있다. 그 하나의 피라미드 정상에서 보면 죽은 자의 길 뒤로 보이는 맞은편 산의 봉우리들도 마치 거대 피라미드처럼 보인다.
케찰코아틀 곧, 깃털 달린 뱀의 사원에서 달의 피라미드까지 2.5킬로미터 드넓은 대로는 죽으러 가는 자에게는 너무나도 먼 길이다. 길의 중심에 태양의 피라미드가 있다. 이 길의 양쪽에는 신전이나 제단으로 보이는 보다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들과 광장 그리고 건축물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의 구조물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는데 당시 이 유적이 얼마나 크고 훌륭한 종교적 대 단지를 이루고 있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본 죽은 자의 길. 멀리 왼쪽으로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이고 길 양쪽으로 많은 제단들이 보인다. 달의 광장이라는 앞의 넓은 광장은 우주적 질서가 구현되었다고 한다.
죽은 자의 길이 끝나는 달의 피라미드 앞 광장은 우주적 질서의 원리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하고 하늘땅 지하의 삼 세계의 힘이 모인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미 나는 멕시코 시티의 템플로 마요르에서 피라미드의 계단과 인신공양의 자취를 보고 왔다. 그러나 테오티우아칸의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야말로 앞으로 이 여행에서 전개될 마야인들의 죽음의 의식을 예고하는 서막이라 할 만하다.
달의 피라미드 앞에는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사원 건물이 있다. 사원의 내부에는 새가 새겨진 기둥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작은 내정이 있다. 황색끼가 도는 기둥과 그 위에 사방으로 돌아가는 붉은색의 벽화, 그리고 짙푸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공간 배치는 놀랍도록 아름답다. 기둥에 새겨진 새의 조각은 연하고 짙은 붉은색 돌과 흰색의 돌을 짜 맞추어 마치 정교한 채색화를 보는 듯하다. 당시 마야의 사람들이 가진 미적 감각은 놀랍기만 하다.
이 사원의 내부에는 많은 벽화가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파랑새들의 행렬이다. 노란색 부리가 앵무새처럼 꼬부라져 있고 부리 아래 노란 꽃이 보인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만나는 현지인은 모두 기념품 상인들. 이 뜨겁고 넓은고대도시는 그들이 일상을 보내기에는너무 힘든 곳이다.
이 작은 새는 이후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자주 만났다. 버밀리온 프라이캐쳐(vermillion flycatcher)라는 이 새는 나에게 멕시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