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교외에 나가서 들 길을 걷거나 산으로 트레킹을 하는 것과는 다른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여행 중에 큰 도시에 머물 때면 나는 하루 정도를 그냥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을 갖는다. 시내 중심의 번화가를 걷기도 하고 변두리의 좁은 골목을 걷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큰 건물을 지나기도 하고 서민들의 오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것을 보는 것도 즐겁다.
다른 나라에 가면 모든 것이 새롭다.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지만 처음 그곳에 간 사람은 이제껏 보지 못한 흥미로운 낯선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면 그저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길을 걸으면 옆으로 지나가는 풍경이나 사람들이 천천히 마음 속에 들어와 앉는다.
멕시코 시티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에는 대형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건물들도 일반 시민들에겐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출근하는 시민이나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에게서도 그 도시만이 가진 색채를 볼 수 있다. 일상은 무척 평범한 것이지만 이방인에게 그 도시의 일상은 또한 매우 특별하다.
꽃 파는 아주머니와 직장여성의 대비, 전통적 주황색 벽과 최신 건물의 유리벽에 비친 이미지가 역사적 도시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알라메다 센트럴 공원
멕시코 시티의 허파라 할 수 있는 곳, 바로 시내 한 복판의 숲, 알라메다 센트럴 공원이다. 멕시코 국립 예술궁전과 소칼로 광장에서 이어지는 넓은 숲은 사백 수십 년 전인 159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멕시코는 물론 미국까지 포함해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공원이다.
이 공원은 스페인 통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식민지 기간 동안 멕시코 원주민들에게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유럽의 공원도 처음에는 귀족들의 전용 공간이었고 일반 시민들은 공원을 산책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럴 자유도 없었다. 유럽인, 즉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알라메다 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넓은 숲이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 허용되었다는 것은 바로 식민지로부터 독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멕시코인들은 독립 후 비로소 공원을 산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공원은 스페인 사람들이 당시 유행한 프랑스 공원 양식을 도입하여 조성한 것이다. 미국이 알라메다 센트럴 공원을 모델로 삼아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만들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었다. 알라메다 공원이 근대 공원의 역사에서 새로운 기원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숲길을 거닐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대화를 즐기는 일은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공원을 이렇게 거닐고 먼 외국에 여행을 와서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 것도 실은 오랜 세월 스페인 식민통치에 대해 투쟁한 멕시코 사람들의 덕이기도 한 것이다. 참으로 소소한 일상 어느 하나도 역사의 변화에 힘입지 않은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