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보니까 첫 쇠물닭 사진을 찍은 것이 2017년 1월이었다. 그날은 왠일인지 집에서 강변으로 나와 늘 가던 출근길을 가지 않고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면 용상동의 뒷산인 무협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성곡천이 반변천과 합류되는 곳이 있다. 이 합류지점에는 자연스럽게 널찍한 습지가 조성되어 있고 핫도그 모양을 한 수초 부들이 군락을 이룬다. 습지를 건너는 도보용 다리를 반쯤 건넜을 때 말라 붙은 부들 아래 빨간 이마와 노란 부리를 가진 새 한 마리가 날개 위에 서리를 홈빡 덮어쓴 채 꼼짝 않고 물 위에 떠 있었다. 부들 숲 어딘가에 녀석의 보금자리가 있지 싶었다. 사진을 딱 한 장 찍었는데 새는 부들 숲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겨울 아침 날개에 서리를 덮어쓴 채 물 위를 헤엄치는 쇠물닭
이렇게 나는 추운 겨울 아침 쇠물닭과 첫 만남을 가졌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새이름을 물었더니 페이스북 친구도 아닌 어떤 분이 고맙게도 쇠물닭이라는 석자의 답글을 달아 주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본 이 새의 정보에는 여름 철새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겨울에 내 눈앞에 나타난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추위에 떨고 있는가? 한 참 후에야 기후 변화로 인하여 겨울을 나는 여름철새들이 제법 있으며 반대로 겨울 철새로 와서 여름을 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 폴더를 뒤져보니 일년 전에도 서리 내린 달뿌리 풀 사이를 떠 다니는 쇠물닭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의 쇠물닭은 어린 새이기 때문에 이마가 붉지 않고 회색을 하고 있어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을 뿐이었다.
앞 이마와 부리 윗부분까지의 선명한 빨간색과 부리 끝의 샛노란색이 검은 몸체과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강 언덕의 나뭇가지 반영을 흩뜨리며 헤엄치는 쇠물닭이 멋진 추상화를 그린다.
이후 쇠물닭은 봄에도 여름에도 이따금씩 눈에 들어왔는데 검게 윤기가 흐르는 머리에 빨간색 이마와 노란색 부리는 무척 예쁜 새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쇠물닭도 물닭과 마찬가지로 청둥오리같은 물새들과 달리 물갈퀴가 없다. 대신 발가락 양쪽으로 좁고 얇은 판이 붙어 있어 헤엄칠 때 물갈퀴 역할을 한다. 이 좁은 판이 달린 발을 판족이라고 한다. 연두빛의 다리는 무릎관절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길다. 발가락의 길이가 다리 아랫부분보다 길 정도로 발가락이 길고 안정되어 있다.
얼음판 위에 긴 발가락으로 안정감 있게 서있는 모습이 당당하게 보인다.
사뿐히 물 위로 내리는 쇠오리의 가벼운 날개짓
두루미목 뜸부기과에 속하는 이 새는 수초 위에서 곤충이나 씨앗을 먹는다. 쇠물닭은 빨간 이마와 노란 부리로 흰 이마와 흰 부리를 가진 묽닭과 구별되지만 이마와 부리의 색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형태를 가졌다. 다만 물닭의 몸체가 좀 더 크며 몸 전체가 짙은 회색을 띠고 있는 것과 달리 쇠물닭은 짙은 갈색 날개에 흰색 속날개가 보이는 것이 다르다. 몸 길이는 30센티미터를 좀 넘는다. 새 이름에 ‘쇠’자가 붙으면 작다는 뜻을 가진다. 어쩌면 한자의 ‘소(小)’자에서 온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수초가 가득한 습지 위에 서 있는 쇠물닭의 눈초리와 날카로운 부리가 매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