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 사람이야
오전에
신경과 담당의사는 의학적 예측을 설명했다.
" 서서히 일상이 헷갈리기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 길을 잃게 되고, (...)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진행이 촉진될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아부지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있었고
"저 의사 이상한 의사네? 의사가 왜 저런 말을 하냐? 내가 넘어진다고? 나 도봉산으로 등산 다니는 사람이야. 내가 설악산도 날아다녔던 사람이라고”
"아부지, 신경과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있어서 말해준 거예요. 신경과 의사는 그런 걸 배우거든요. 여긴 성형외과 의사처럼. 예뻐져요라고 하는 곳이 아니에요..."
"아, 그래? 책에 써있대?"
비좁은 골목에 드나드는 택배 차들을 피해야 해서 내가 아부지의 팔을 잡아 이끌어보려는데 아부지는 한사코 내 손을 뿌리치며 느릿하지만 스스로 행동하셨다. 그 몸짓은
'나 아직 판단력이 살아있다'라는 표현이었다.
오후에
아부지의 집을 계약한 매수자가 대출 절차 때문에 은행에서 집을 확인하러 나올 거라고 연락을 해왔다.
아부지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는데,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목소리를 올리셨다. 내가 왜 그런 걸 해줘야 하냐며 돈도 없는 사람들이 왜 집을 산다고 했느냐라고 짜증스러워하셨다.
"에이씨, 집을 잘못 팔았어"
은행의 확인 절차라는 말보다 아부지에게 그것은 내 공간에 대한 침입자의 방문이었다.
절차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밀어내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감정의 잔상만 남은 모양이었다.
의학적 예측 속 아부지의 미래는 '길을 잃는 것'과 ‘넘어질까 봐 조심'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부지는 산에서, 집에서,
아직 자신의 통제권이 살아 있음을 매일 스스로 확인하는 중이시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아부지, 라일락 꽃향기 맡을 때까지 그 통제력을 꼬옥 잡고 계셔야 해요'라고 겨울바람에 실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