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감기로 고열이 오르면, 눈앞이 요술경처럼 변하곤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무늬가 움직였고, 색들은 서로 겹치며 번졌다. 그러다 눈물이 쪼르륵 흘러내리고, 호흡이 고르게 돌아오면
그 요술경은 스르르 사라졌다.
양곡상회를 하던 어무니는 돌 고르는 기계 소음으로 내 숨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쌀 주문 전화를 받으러 와서야
“꼬니네 갔다 와서 밥 줄게.”라고 한마디 하고는 머리에 쌀포대를 이고 배달을 나가셨다.
그때는 병원이 멀고 문턱이 높았다. 그래서 어무니의 구원자는
버들약국 약사 아줌마였다. 어무니는 유난스러울 만큼 그 약사 아줌마를 믿었다.
“나는 전쟁통에 여드름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쟤는 왜 저러는지 몰라요.”
나는 어무니 옆에 서 있으면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가 되어버렸고, 슬그머니 혼자 집으로 와버렸다.
“버들약국 아줌마가 김치랑 밥만 먹으래. 한 달만 그러면 싹 없어진단다.”
버들약국 약사 아줌마는 얼마 뒤 어무니의 전용 몸살약을 조제해서 거칠어진 손에 바르라며 글리세린 몇 병을 건네고는 분당신도시로 이사를 갔다.
어머니가 기댈 언덕 하나는 그렇게 사라졌지만, 버들약국 약사아줌마는 떠난 지 사십 년이 지나도 느닷없이 소환되곤 한다.
“아니, 무슨 피존을 이렇게 써. 들이부었냐?, 냄새가 너무 나.
아이, 골 아파. 버들약국 아줌마는 피존 쓰지 말라 그러더라. 써도 이렇게 쪼금만 넣어야지.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아휴 나는 핸드크림 이런 거 다 싫어. 버들약국 아줌마가 가르쳐준 글리세린이랑 이거 섞어서 바르면 최고야"
그렇게나 버들약국 약사아줌마를 신봉하던 어무니는 요즘 변실금 때문에 속앓이를 하신다. 시장에 다녀오는 동안 변이 새는 줄도 몰랐다는 어무니의 넋 나간듯한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어머니 눈앞도 혹시 요술경의 무늬가 떠있을까.
“내가 왜 이러냐. 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은데.”
이제는 내가 버들약국 약사 아줌마를 찾아보고 싶다. 그리고 부탁하고 싶다.
저의 어무니에게, 별거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그러면 어무니는 조금 덜 놀라고, 조금 덜 부끄러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면 요술경처럼 어지럽던 눈앞도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해질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