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는 엄마입니다.

by 신이나

직장을 그만 뒀다. 6년 넘게 다녔던 외국계 회사였다. 하필 날 괴롭히는 독사 같은 인간도 없었고 일에 대한 어려움도 없었고 빌어먹을 연봉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들이 문제였다. 매끼니 마다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손에 잡히는 자동차 장난감은 가격과 크기를 막론하고 10분 만에 핸들과 바퀴를 분해시키는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녀석이었다. 그랬던 그 녀석이 수퍼울트라파워는 사라지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눈만 뜨면 조잘거리던 말이 급격히 없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아들은 ‘응’ 아니면 침묵이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 뿐 이었다. 난 워킹맘이니까.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최대한 모른 척 했던 나는 아들의 무언증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백수로서의 첫 주는 불안한 자유를 느끼며 말 없는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아침밥을 먹이고 준비물을 챙겨주며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학교로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등교했다.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니 아름다운 풍경이어야 했다. 10년 넘게 지옥철을 타고 강남 테헤란로로 출퇴근을 해왔던 나에겐 하루 24시간이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톱니바퀴 같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여유 따위는 개나 줘야했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 온전히 24시간이 주어졌고 그 시간을 직장이 아닌 집에서 ‘아름답게’ 보내야 했다. 현관부터 베란다까지 집안 곳곳을 쑤석거리며 나노크기의 먼지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청소를 해댔다. 가구위치도 바꿨다. 학부모 모임도 나가고 신문도 읽었다. 써도 써도 남아도는 시간. 처음엔 혼란스러웠고 나중엔 괴로웠으며 마침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아들은 점점 말 수가 늘어났지만 늘어난 아들의 말 수 만큼 나의 말 수는 줄어들었다. 난 우울했다. 하루가 길었고 하루가 길어질수록 더 우울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우울한 내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뭔가 몰두 할 일이 필요했다. 달리기라면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근처 이마트로 달려가 아식스 런닝화를 한 켤레 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어린이대공원이 있었다. 대공원 안에는 넓은 잔디 축구장이 있었고 축구장 둘레는 우레탄으로 푹신하게 깔린 400m 달리기 트랙이 구비되어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첫 날, 축구장 8바퀴를 달렸다. 코에서는 피 냄새가 올라왔다. 고등학교 체력장 시험 때 800m 오래달리기 이후 처음이었다. 심장은 찢어질 것 같았고 종아리 알통도 곧 터질것 같았다. 급기야 두 팔이 무거워 몸통에서 쏙쏙 뽑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뱃속에 음식이 들어있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쯔쯔가무시 병이고 나발이고 난 잔디위에 대자로 누웠다. 허접한 나의 체력을 목도하며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남 시에서 주최한 마라톤 대회 5km 종목에 만오천원을 내고 신청했다. 축구장 트랙 8바퀴로 시작했던 나는 3개월이 지나 어느덧 15바퀴 정도는 껌 씹으며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달리다 보니 내가 잘 달리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달리는 지 정식 대회에 나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하던 대로 매일 축구장에서 15바퀴를 달리며 대회 준비를 했다.


대회 출전하는 날 미사리 조정경기장에 8시에 도착했다. 가장 긴 코스인 42.195km 풀코스부터 9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딱 보기에도 아마추어 급 선수들은 검은색 피부의 탄탄함을 뽐내며 온몸에 파스를 바르고 있었고 검은색 고글과 날렵한 모자를 쓰고 워밍업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마라톤 생초짜인 나는 다리통 넓은 츄리닝 바지와 박시한 면티를 입고 찢어지지 않는 다리를 찢으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42분 35초. 나의 첫 기록이다. 그런데 마라톤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5km종목 3위안에 드는 사람들이 10분대 초반이니까 내 기록은 기록이라기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두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3개월 넘게 준비한 나의 첫 달리기 대회는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뿌듯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게 해줬고 얼굴에 핏기가 살아난 엄마를 보며 같이 달려준 아들도 그 나이 또래의 활발함을 찾아갔다. 밤마다 근육통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다리를 주물러 주는 아들이 사랑스러웠다.


첫 도전 이후 10km 단축 마라톤에 출전했다. 하루 운동량도 축구장 30바퀴가 되었다. 초반 3바퀴는 콧속으로 싸한 피맛이 올라오는 가장 힘든 코스이다. 4바퀴부터는 숨이 평온해 지고 머리속의 잡생각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머리는 무념무상의 진공상태가 되고 팔과 다리는 기계적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안온한 때가 찾아온다. 전 우주에서 나만이 느끼는 절정의 카타르시스. 이 순간을 느끼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온 몸은 고통스럽지만 정신은 황홀한.


오늘도 난 축구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다음 하프 마라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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