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 나는 외국계 제약회사 메디컬 부서로 이직했다. 그 전까지의 내 이력은 서울에 있는 작은 주한 외국대사관에서 비자발급 업무와 재정 관리업무로 일한 것이 다였기 때문에 제약에 관련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지루하고 반복적이었던 관공서 업무와는 달리 비즈니스를 하는 새로운 산업 군이라 설레는 마음과 이런 곳에서 내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출근을 시작하고 내가 시작한 업무는 본사인 미국에서 들어오는 전문의약품 관련 보고자료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가끔 영문 PT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도 있었다. 내과 의사인 한국인 보스는 첫날부터 매일 10장 정도의 자료를 건네주고 마감일은 없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번역해 달라고 하였다. 처음 받은 자료는 관절염 관련 내용이었고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제목부터 빽빽이 나열되어 있었다. 포털사이트의 영어사전으로 검색을 해봐도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지나가고 단어의 해석은 찾을 수 없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처음 보는 데면데면한 사이인 데다 다들 뭔가에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단어의 뜻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회사 근처 대형서점으로 갔다. 의학전문 사전을 찾아 2만 3천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강력한 무기가 생겼으니 번역도 각을 잡고 앉아 맹렬히 진행했다. 의학사전이라 그런지 내가 원하는 모든 단어들이 들어있었다. 단어들의 뜻은 알았지만 그것들을 연결해서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눈이 빠질 것 같았다.
완성된 번역본을 A4용지에 프린트해서 클립으로 고정시킨 후 보스에게 가져갔다. 보스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고생했다고 한마디 하고는 눈빛으로 책상 위에 놓고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의 뼈를 갈아 만든 소중한 번역본을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놓고 나는 방을 나왔다.
입사 후 한 달 동안 나는 그렇게 번역을 해댔다. 일다운 일은 하지 못한 채 번역으로 지쳐갈 때쯤 보스는 내게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이때다 싶어 밥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동안 내가 번역했던 자료들은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보스는 당연하다는 듯 번역 자료가 따로 쓰이는 곳은 없다고 했다. 제약회사다 보니 업무에 사용되는 용어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었고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일을 시킬 수 없기에 이를 해결할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으로 번역을 선택했다고 보스는 말했다. 피땀으로 만든 나의 결과물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니. 고마웠다 그리고 허탈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부서회의에 참석하라는 보스의 이메일을 받았다. 메디컬 부서에서는 크게 2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R&D센터에서 개발한 신약을 상용화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임상시험팀과 신약의 임상시험이 끝나 한국에 시판하기 위해 식품의약청에 허가를 받는 등록 팀이다. 만약 지난 한 달 동안 번역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모든 제약 용어와 지식들이 없었다면 난 그 회의에서 오갔던 대화의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보스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가을이 다가왔다. 전 직원은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회사의 대표이사도 마찬가지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는데 문제는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라는 것이었다. 인사부에서는 외국인 진료가 가능한 몇 개 안 되는 병원들에 연락을 취했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으나 적당한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보스가 제약회사로 오기 전 자신이 교수로 재직했던 한 대학병원을 추천하였고 본인이 직접 대표이사의 통역을 자원했다.
보스는 대표이사를 대동하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병원으로 갔다. 보스가 외래병동으로 들어서자 홍해 바다 갈라지듯 양쪽으로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줄지어 섰고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개 숙인 그들이 보스에게 보이는 태도는 존경이었다. 보스는 대학병원의 내부를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었다. 불필요한 동선을 줄이고 교수님이었다는 프리미엄까지 보태어 대표이사의 건강검진은 예상했던 시간보다도 더 일찍 마무리되었다.
회사에서 본 보스의 모습과 병원에서 본 보스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내게는 그랬다. 내로라하는 엘리트 집단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명예롭게 일할 수 있는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치열한 경쟁과 과중한 업무가 일상인 제약회사로 이직한 보스의 결정이 궁금했다. 어느 날 보스에게 이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해맑은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어요.”
보스는 제약회사로 이직하기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혈액종양 내과 교수였다. 즉 백혈병을 주로 다루는 의사였고 주된 환자들은 어린이들이었다. 교수로 재직할 당시 매일 소아암 병동에 회진을 돌면서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집으로 갈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예요.’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곧 집에 갈 수 있어요.’라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곧 나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병색이 짙어지는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신이, 그 말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자신이 더 괴로웠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자 선택한 길에서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잔인하다.
젊은 의사들의 존경과 사회적 부와 명예 따위로는 보스를 병원에서 오래 일하게 할 수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단한 직업도 본인이 괴롭다면 할 수 없듯이, 하루의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일터가 나에게 보람과 성취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부질없는 일이다.
보스는 본사 R&D센터에서 개발된 신약을 여러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보람과 성취를 찾았다. 형태는 다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매진했다. 가장 먼저 출근하셨고 가장 늦게 퇴근하셨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나의 보람과 성취는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 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