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학생을 처음 만난 것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지난 11월이었다. 아담한 체구에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상담실에 앉아있었다.
나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학생들의 진로와 취업에 대해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다. 11월이면 기업들의 하반기 공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시기라 학교 상담실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이 시기에 상담실을 찾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면접 전략들에 대해 컨설팅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고, 두 번째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면서 드디어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려는 학생들이다. 그 여학생은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4학년이 되면서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려다 보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경우 학교에서는 학생의 흥미와 성향을 알아보기 위한 심리검사를 진행한다.
심리검사를 통해 이 학생은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면서 글쓰기에 흥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담을 하던 중 학생이 강조한 부분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타국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했었고 그것을 목표로, 그것만을 생각하며, 그것만을 위해 그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낮은 학점과 볼품없는 스펙이 그 증거라고도 말했다. 밝았던 처음 모습과는 다르게 학생은 고개를 숙인 체 한껏 움츠러들었다. 학생도 나도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만큼 학업에 몰두했기에, 그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뭔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학생에게 칭찬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다시 만나자고도 했다.
몇 주후 그 학생을 만났다. 여전히 밝은 얼굴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나는 질문했다.
“어떤 목표를 찾았니?”
학생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양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선생님, 저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렸고 학생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목표를 찾으려고 할 때마다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무리 고민해도 목표가 없는데... 목표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잖아요?”
학생의 마지막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지난 수년 동안 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얘기했던 것은 삶의 목표를 찾는 것이었다. 상급학교를 가려고 하는 학생에게는 전공에 대한 목표를, 취업을 하고 싶은 학생에게는 직무에 대한 목표를 그리고 창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아이템에 대한 목표를. 나는 끊임없이 질문해 댔고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어떻게든 찾아냈다.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꿈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나는 꿈이 없었다. 내가 아는 직업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 전공도 가장 많이 뽑는 학과로 지원했었다. 대학 졸업 후 채용공고에 올라오는 수십 개의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그중 처음으로 합격한 곳이 나의 적성이 되고 직업이 되고 커리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목표는 없었다. 순간의 삶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온몸으로 목표를 찾을 수 없다고 절규하는 학생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목표는 있어야 하니 찾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잔인하다고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삶의 목표를 찾아오라고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모두가 목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과 목표가 필요한 시점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특별한 목표 없이도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꿨다.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 알지? 어느 날 지니가 나타나서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소원을 3가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너는 어떤 소원을 말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