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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Aug 10. 2015

그냥 두었다. 마음이 가는대로

"학생, 여기서 뛰어내리면 안 돼요."

"저...... 죽으러 온거 아니예요."

.

.

.

나...  

살라고 온건데...

햇볕이 포근했던 어느 봄날,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소양호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경비초소에 있던 아저씨 한 분이 내게 죽지 말라며 말을 걸었다.


'내가 호수에 뛰어내릴 것 같았나?

여기서 죽는 사람이 많은가 보구나...'


말투에는 따뜻함에 배어있었다.

안쓰러웠나보다.

여학생이 혼자...

혼내는 말투가 아니어서, 내딴엔 참 고마웠다.

아저씨가 돌아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요.

살아야 한다는 거 느끼려고... 혼자 여행온 거라구요..."


19살,

그날 난 학교를 빼먹었다.

무단결석이었다.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긴 했지만,

이미 집에서 사복까지 챙겨온 터였다.


소양호의 바람을 느끼며 음악을 듣다가

별다른 결론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 듣던 음악 중 하나는

故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애초에 질문은 있어도 답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고3이 아무리 죽을만큼 힘들고 답답해도

"공부해야지" 말고 다른 결론이 뭐가 있으랴.


오늘 하루 일탈한 것에 만족하며,

학교에서 먹었어야 했을 도시락을,

그것도 여동생이 "보온통"에 싸준 도시락을

다 먹고서야 소양호를 떠났다.

 그리고 저녁까지 슬금슬금 춘천일대를 돌아다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밤 12시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가출신고를 하려고 했단다.

겨우 그 시간을 넘기지 않아

가출학생 꼬리표는 달지 않았다.


제멋대로일 때가 많아,

그 일로 어른들에게 크게 혼나지는 않았는데,

그 뒤로도 훌쩍 떠나는 "가출 같은 여행"은

20대까지 이어졌다.

(30대엔 휴가를 내고 혼자 영화를 보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떠나고 싶은 날 떠나곤 했던 짧은 여행.

내가 하고 싶은대로 결정해서

충동적으로 떠나던 여행으로

돌아왔을 땐 한 1cm 정도 성장한 것 같았다.


고3생활을 시작하며

우울한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스스로 상처내고 혼자 치유하다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감정을 추스릴 힘이

내 안에는 없다고 결론냈을 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집근처 병원을 찾아갔다.


남들 눈은 신경쓰지 않았다.

아파서 본능적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고,

이후 6개월 가량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마음이 아프니까 병원을 가는 건 당연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기특하다.

상담과 약물치료 후 우울증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때 내가 병원을 가지 않았더라면........

(우울증은 상상이상으로 무서운 병이다.)


겨우 10대를 벗어나 20대가 되어서도

원인 모를 방황은 계속됐다.

원치 않는 대학에 가서 적응을 못하는 바람에,

학교를 밥먹듯 빼먹었다.

열심히 살지 않았고,

마음은 기분나쁘게 떠다녔다.


난 날 그냥 두었다.

흘러가는대로 두고 하루하루를 그냥 살았다.

그때 함께 한거라곤 연애와 술, 알바,

그리고 영 쓸데없는 인생 고민 정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은 많이 했지만,  

20대가 지나면 30대가 되고 또 40대로 이어진다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한 채,

인생을 보는 시야는 아주 근시안적었다.


그래도 지푸라기 같은 것 말고,

뭐 하나 제대로 된 내것을 잡고 싶은 마음은

강렬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룰 수 없는 나이면서도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기성세대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 사이에서

마음은 늘 불안했다.


다행히 나에겐 성실한 기질이 있었다.

방황마저도 성실하게 했다.

바닥까지 참 성실하게 내려갔고,

그 경험을 잊을 수 없게 진하게 느끼며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를 알려고 애썼다.


알바비에 절반 정도는 책을 사는데 썼고

말이 잘 통하는 친구와 여기저기 쏘다니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는게 낙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소설이나 영화같은 좋아하는 것에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지기도 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날 내버려둔 객기는 내것으로 삼을 만한 것을

만났을 때 슬슬 멈추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쯤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많은 자양분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점차 근시안에서도 벗어나는 것 같았고

미래를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보통의 20대가

사회적으로 이룰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열정과 욕심은 있지만

안정성을 느끼며 살기는 어렵다.

그래서 20대에는

마음 가는대로 충분히 느끼고 경험하게

자신을 그냥 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른을 이립이라 하여

자립하는 나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30대에 뿌리를 내리려면

제대로된 곳으로 위치를 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살면서 내 자리, 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간은

꼭 한번 찾아온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30대에...

30대에 하지 않으면 40대에 해야하는데

서른 전 가장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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