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맛과 향, 본질을 찾아라
언젠가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이 생겼으니, 커피가 바로 그것이다.
내 경우는 매일 하루에 딱 한 잔씩을 마시는데, 보약 먹듯 커피를 챙겨먹기 시작한 건 입사를 하고 부터였다.
마치 인생의 쓴맛을 커피의 쓴맛으로 대체하려는 듯이,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급속히 커피의 씁쓸 오묘한 맛에 빠져들었다.
2006년 당시에도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많았지만, 정말이지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이화여대에 국내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온지도 벌써 16년.
이제 커피전문점은 편의점보다 많은 수가 되었고, 일을 할 때 또는 공부를 할 때, 마치 컴퓨터 같은 작업도구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이미 포화상태를 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카페는 계속 생겨나고 있으며, 이제 '커피 한 잔'은 보통의 일상이 되었다.
직업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어떤 게 제일 좋을까 고민하다 생각난 직업이 바로 커피 관련 직업이었다. 커피하면 가장 먼저 '바리스타'가 떠오르겠지만, 너무 잘 알려져 있는 관계로 조금은 생소한 직업인 "큐그레이더"를 소개해볼까 한다.
쨘!!
야심차게 준비한 체크리스트!
(아래 조건 중에서 7개 이상이 해당한다면, 이 직업에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 개코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후각이 잘 발달해 있다.
□ 미세한 맛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로 미각이 잘 발달해 있다.
□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미각/후각 등 감각이 둔해질 수 있음)
□ 체력이 좋고 체력 관리에 힘쓴다(체력이 떨어지면 감각도 떨어짐)
□ 성격이 차분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다.
□ 영어구사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거부감 없이 영어를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자격시험 때문).
□ 언젠가 로스터리 카페를 창업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
□ 기회가 된다면 커피 관련 직종으로 해외 취업을 해보고 싶다.
□ 커피의 원산지나 커피를 둘러싼 문화에 관심이 많다.
□ 무엇보다 커피향과 커피 자체가 참 좋다.
큐그레이더(Q-grader)는 커피 품질의 등급(grade)을 정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커피의 맛과 향, 본질을 감별하는 일을 한다. 우리말로 하면 ‘커피향미 감정평가사’ 정도가 가장 근접하고, ‘커피감별사', '커피감정사'라고도 부른다.
커피는 와인처럼 품종과 토양, 고도, 강우량 등의 재배환경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 때문에 커피도 생산국 외에 재배지역과 생산농장명, 생산품종, 생산로트, 생산방식 등을 표기해 거래하기도 한다. 큐그레이더는 이런 커피의 다양한 품종에 기초해 생두의 품질과 맛, 특성을 감별해 좋은 커피콩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일을 한다.
여기서 잠깐!
큐그레이더와 바리스타의 차이를 살펴보자.
큐그레이더가 생두를 수급하는 것부터 로스팅을 한 뒤 평가에 이르는 전과정을 책임진다면, 바리스타는 로스팅을 한 그 다음 단계부터를 책임진다고 할 수 있다. 즉, 바리스타는 원두를 분쇄하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개인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맛의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한다. 둘 다 커피를 다룬다는 점에서 두 가지 업무를 다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큐그레이더가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인 생두에 대한 높은 이해와 판별능력, 커피의 맛을 감별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있으면 바리스타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이 바리스타를 할 경우에는 매니저급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보수도 상승).
커피 감정 과정을 설명하는 용어는 매우 전문적인데, 대략적으로만 설명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 프레그런스(Fragrance) : 원두를 분쇄해 향기를 평가
- 아로마(Aroma) : 분쇄한 커피에 물을 부었을 때 향을 평가
- 애씨디티(Acidity) : 커피의 산도 평가
- 바디(Body) : 커피의 농도 평가(입안에 머금도 돌렸을 때 느낌을 평가)
- 플레이버(Flavor) : 입안에 머금었을 때 맛, 향, 촉감 등 전체적인 조화율 평가
- 클린 컵(Clean cup) : 커피의 투명도와 마시는 순간부터 마신 후 안좋은 요소가 있는지 평가
- 유니포미티(Uniformity) : 커핑했을 때 한 종류의 원두를 5컵 추출한 후 5컵의 동일성을 평가
- 오버롤(Overall) : 전체적인 평가
큐그레이더로 활동하려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고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좋다.
큐그레이터 자격증은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의 커피품질연구소(CQI: Coffee Quality Institute)에서 발급하는데, 미국 자격이어서 영어로 용어를 학습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아시아커피감정평가원과 아시아스페셜티커피감정사학원 주관으로 자격시험이 치러지고 있어서, 영어를 몰라도 시험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자격은 3년에 한 번씩 재시험을 통해 갱신해야 한다.
자격시험은 먼저 실기 테스트가 진행된다. 이때 커피의 3대 맛인 신맛, 짠맛, 단맛의 종류와 강도를 구별해내고, 커피 속 최대 아홉 가지 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맛만으로 원산지를 식별해야 하는 등 총 22개의 실기 테스트를 치러야 하며, 실기 테스트를 통과한 뒤에는 필기 테스트도 치러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건 큐그레이더로 활동할 수 있는 출발점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연마해야만 일정한 수준의 평가를 내릴 수 있고, 최소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커핑(cupping; 커피를 마시면서 맛과 질을 평가하는 과정)을 연습해야 높은 감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큐그레이더 자격 취득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에 바리스타처럼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카페를 창업하려고 준비하는 경우나 커피 관련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교육은 과거 잘 알려지기 전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포털사이트에서 '스페셜티커피학원' 정도로 검색하면 주요 학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진출 분야는 카페 창업 외에 커피 프랜차이즈나 커피제품을 만드는 대기업(대상, 웅진, SPC, 코카콜라, 이랜드 등)이 있고, 대학과 대학원, 연구소, 학원 등에서 큐그레이더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 한편, 미국 자격이다 보니 해외 취업도 가능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영어 실력을 쌓으면 호주나 캐나다 등으로 취업이 가능하고,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내용 참조: 워크넷 (www.work.go.kr) 눈길끄는 이색직업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 평생 직업 등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찾고자 할 때는 다양한 직업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여러 대안을 마련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대안이 적으면??? 선택의 폭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이 매거진을 연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들이 있는지 알아가면서 마음에 꼭 드는 직업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