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생명과 아름다움을 불어넣다
이제 마음먹고 책을 읽지 않으면, 매일 책장을 펼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종이책과 멀어진데는 스마트폰의 무차별적인 대중화가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은 변치 않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직업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고, 이 분야의 시장성이 커지길 기대해본다.
이번에 소개할 직업은 책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직업, 예술제본가이다.
옛 유럽의 왕가나 귀족 가문에서는 평생 책을 제본하는 전속 제본가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에는 책을 낱장으로 인쇄해 표지 없이 실로 묶어 팔았기 때문에 소장가나 제본가가 독특한 문양을 가진 표지를 제작해 사용했다. 이로부터 발전한 예술제본은 종종 건축에 비견된다. 책이라는 구조물을 일일이 떼어내는 해체작업을 거쳐, 보수하고 복원해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현대의 예술제본은 특별한 기념이나 선물용, 또는 세상에 한 권 밖에 없는 책을 남기기 위해 제작된다. 예술제본을 마친 책은 예술작품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따라서 예술제본가에게는 일종의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야심차게 준비한 체크리스트!
□ 좋은 책을 가까이 두고 소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 책 읽기를 즐겨하고, 책 관련 문화를 사랑한다.
□ 손재주가 있고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 홀로 작업하는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 나만의 작업공간에서 뚝딱뚝딱 일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
□ 반복되는 기초적인 작업에 싫증을 내지 않을 수 있다(단순작업도 마다치 않음)
□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다.
□ 느리게 사는 삶의 철학에 동조한다(아날로그적 감성).
□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 예술가다운 돈벌이 수준에 만족할 수 있다(만족스런 돈벌이는 능력에 따라 다름).
예술제본가는 보관할 가치가 있는 책을 보수하고 복원하여 견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직업이다.
단순히 책의 표지만을 예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아름다움과 생명을 동시에 심어준다는 점에서 예술가로 여겨진다.
이제 너무 오래전 영화가 됐지만, 예전에 "광식이 동생 광태"라는 영화에서 배우 김아중의 직업으로 예술제본가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특이한 직업이어서 당시 영화 홍보에도 많이 활용되었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여주인공 직업이 예술제본가였어요. 당시 영화 촬영을 도우며 배우에게 예술제본 작업과정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덕분에 예술제본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홍보할 기회가 되었는데요, 대신 예술제본가를 단지 멋진 직업으로만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서 문의전화 마다 일일이 설명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2001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스쳐간 책을 만드는 장면이 잊히지 않아 예술제본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특별히 좋아했는데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서도 특별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국내에 예술제본을 도입한 故백순덕씨의 수제자로 7여 년간 공부해 예술제본가가 되었습니다."
(렉또베르쏘 조효은)
* 실제 일하는 분이 궁금하다면, 예전에 내가 직업에 대한 칼럼 작성과 책 집필에 친절하게 협조해주신 예술제본 공방 렉또베르쏘의 조효은 씨의 인터뷰를 참조해주세요.
(참고 기사 : 예술제본전문가 조효은 씨 )
---> 이 자리를 빌어 또 한번 감사드려요!
* 예술제본 작품과 도구 등을 보고 싶다면...
(참고 :예술제본, 책을 엮는 과정은 곧 삶을 엮는 과정)
예술제본은 보통 주문제작으로 이루어진다. 주문제작에는 출판사에서 특별히 주문하는 제본, 성경제본(성경·필사본), 개인 저작물 제본 등이 있고,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을 위해 소량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보통 작업은 주문을 의뢰한 고객과의 상담으로 시작되며, 책 한권을 제본하는 데는 대략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된다. 예술제본에 쓰이는 도구로는 프레스, 조합기, 재단기, 책을 매달아 실로 꿰매는 수틀, 망치, 톱 등이 있고, 종이와 노끈, 실, 풀, 헤드밴드용 비단 등 재료만도 50가지가 넘는다.
제본작업은 크게는 여섯 단계, 세부적으로는 60여개의 단계를 거친다. 우선 책을 분해해서 묶음으로 나누고 찢어지거나 지저분해진 부분은 고르게 정리한다. 그 다음 책 묶음을 프레스 기계에 넣어 최대한 부피를 압축하고 재단기로 모서리 부분을 고르게 자른다. 책등에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고, 책등을 둥글려 책과 판지를 연결한다. 비단실로 종이심을 감아 엮어 책등을 아름답고 양 가장자리를 보호한다. 책등과 표지를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사포로 다듬는다. 마지막으로 가죽으로 표지를 만들어 싸고, 표지와 본문 사이에 면지를 붙여 완성한다.
예술제본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이나 출판 전반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 및 철학에 대한 교양, 그리고 미적 감각, 손재주 등을 갖추어야 한다.
유럽에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옛날 책을 복원하는데 예술제본가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그만큼 유럽에는 전문학교나 사설 교육기관, 개인공방 등에 전문 교육과정이 많이 개설되어 있다. 프랑스의 경우, 1000여명의 제본가들이 전국의 도서관에서 일하거나 개인 공방을 운영하면서 교육과 수집가들을 위한 주문제작을 겸하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제본 역사는 10여 년 정도로 아직까진 그 수요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예술제본 전문공방에서 최소 2년 이상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고 작품을 인정을 받으면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다. 전문공방의 교육과정은 보통 초, 중, 고급 과정으로 구분해 개설되어 있다. 보통 초급과정에선 기초적인 제본방법을, 중급과정에선 실제 기술적인 훈련을, 고급과정에선 본격적인 작품만들기 등을 배울 수 있다.
(* 렉또베르소 말고도 이제 여러 예술제본 공방이 생겨났다. 그리고 연세대 평생교육원에서도 예술제본 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제본가에게는 무엇보다 책과 그 책을 만드는 과정을 존중하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예술제본은 매우 어렵고 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때문에 책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반복되는 기초적인 작업에 싫증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진중함이 요구된다.
저도 언젠가 꼭 한번 배워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엮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을 꼭 한번 제작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