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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 Jan 03. 2017

2월의 세 번째, 월요일.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2013.02.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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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처음 사용하게 된 이유는 불건전하다.

하지만 상세한 이유를 쓰자니 마음에 걸리는 몇 사람들이 있으므로 

불건전한 이유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자.


2008년부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으니 벌써 5년이나 지났다.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빌리고,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고장 난 부품을 하나씩 고치고,

부르는 게 값이라고 카메라 1대 가격을 수리비로 탕진하고...(흑)

한 번은 필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열었다 날려버리고,

추운 겨울, 가족들 사진 찍겠다고 나왔다가 셔터가 얼어버리고,

왜 맨날 나는 찍힌 사진이 없냐며 진심으로(!) 툴툴거리고,

어떻게 찍는 건지 잘 가르치고 키워놓은 남자친구는 헤어지고,

혼자 책을 찾아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를 배우다 헷갈려서 반대로 찍어버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나왔더니 노출계가 작동하지 않아 하루 종일 짐만 되어 버리기도 하고,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 놈을 팔아 버려야지 하다가도...

한 번씩 DSLR은 따라갈 수 없는 쨍~한 아웃 포커싱 보여주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여주는 다른 느낌들에 감탄하고,

사진 하나하나 쉽게 찍은 게 하나도 없고,

언제 찍었는지,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 안 나는 사진 하나도 없으니...


이제 얼마 없는 카메라 수리점을 찾아 종로를 돌아다니게 만들고

(심지어 이번에 나온 사진을 보니) 조만간 다시 종로를 찾아가야 할 것 같은 쇠약한 이 아이,

아니 나이도 나보다 많으니까 이 아저씨 카메라와는 정이 들어도 너무 들어버렸다.


며칠 전, 약 2년 만에 들어있던 필름을 스캔했다.

- 2010년 겨울, 미루와 갔던 부산 여행에서부터

- 2012년 여름, 내일로 전주 여행

- 2012년 가을, 수연언니와 갔던 GMF까지.


마음먹고 36장 필름을 넣었다가 스캔까지 2년 걸려버린 이번 필름.

카메라의 문제인지 너무 오랜만에 찍어서 인지 아니면 필름이 너무 오래되어서 인지

쨍~ 하니 기분 좋은 사진은 얼마 없었지만 '아직 나 쓸만하지 않아?'라고 말하듯 보여주는 

너의 몇 사진들 때문에


그래, 내가 오늘도 속는 셈 치고 다시 네게 필름 하나를 넣는다.

언제나처럼 잘 부탁해.







독립출판 '세이브 먼데이' e-book으로 만들기 프로젝트

월요일을 쉬면서 월요일을 구하기 위해 저장했던 3년의 일기를 독립출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 http://yirul.blog.me/22080922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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