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갑작스럽게 조직 개편이라니. 기존 그룹장님은 일부만 데리고 다른 조직으로 가시고, 남겨진 우리는 새로운 그룹장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새로운 그룹장이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 예상되는 인물이 몇 있었다.
1순위는 김 수석. 수석 말년 차. 상무를 달아도 될 정도로 연차가 꽉 찼다.
2순위는 이 부장. 개발 지식은 없고, 연차도 낮지만.. 2년을 특진한 떠오르는 별.
김 수석도 이 부장도 아니면, 다른 부서 상무님이 우리 쪽으로 오시려나?
하지만 회사생활에 예상과 짐작이란 각자의 뇌피셜일 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후보 1순위였던 김 수석이 데리고 있던 박 수석이 그룹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한때 본인은 그룹장, 그 후배는 파트장이었던 관계가 이젠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일 이래? 김 수석이 박 수석한테 왜 밀려???"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수군수군 댔다. 새로운 가십거리의 등장에 반짝이는 눈을 하며, 사람들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일할 때와는 다른 텐션들이었다.
소문에 유독 밝은 문대리가 이유를 알아냈다. 알고 보니, 그 비운의 수석님은 전무에게 단단히 찍혔었다는 것이다.이유인즉, 전무가 지시한 것이 왜 실현 불가능한지 설명하며 직언을 했다는 것.
<회사생활 단어 사전>
직언: 아랫사람한테만 하는 것
…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하필 김 수석님 밑에 있던 사람을 위로 올려?
“그 이유는 그 전무만이 알겠지..” 우리는 전무의 평판을 떠올렸다. 그 영악함과 잔인함으로 지금 전무 자리를 꿰찬 개발실의 독사. 우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둘 사이에 감정의 골은 꽤 깊었던 걸까. 갑에게 직언한 을은, 결국 병에게 밀려 정이 되었다.
회사는 늘 서열이 존재하면서도 언제나 뒤집어질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퇴사하는 부사장의 추천으로 만년 부장이 갑자기 상무가 되기도 하며, 차기 여성 임원으로 주목받던 부장이 만년 부장으로 내려앉고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하다 퇴직권고 1순위가 되기도 한다.
<회사생활 단어 사전>
서열: 직급은 서열이 아니다. 서열은 상사의 마음속에 있다.
잘 나가던 사람의 몰락, 얻어걸린 행운아의 등장.
드라마가 따로 없는 미생들의 집합소, 회사.
내가 당사자가 된다면? 오싹하다.
퇴근길. 마음이 무겁다.오늘 김 수석의 퇴근길은 어떠할까. 그는 가족에게 이 이야기할 것인가? 그의 내일 출근길은 또 어떠할 것인가.껄끄러운 관계, 결국은 그가 못 버티고떠나지 않을까 예상하지만 그에게는 중학생 아들이 둘.. 그는 존버 할 것이다.
위로의 말이 오히려 비참함을 일깨울 수가 있다.응원의 말에 더 풀이 죽을 수 있는 날도 있다.나는 복도에서 그를 마주쳤지만 아무 이야기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를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