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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훈 Jul 31. 2019

[초고] 포스트 청일전쟁 레짐으로 동아시아 대전 의식.

포스트 청일전쟁 레짐으로 동아시아 대전 의식.

개인적으로 지금의 동아시아 질서를 후기 청일전쟁 레짐이란 맥락으로 이해한다. 물론 ‘일본 중심의 아시아(대일본론 내지 대동아공영원)’라는 패러다임은 1945년에 군사적으로 약하나-경재적으로 부강한 국가로 평화헌법과 상징천황제로 규율되는 동아시아의 제 1국으로 신 일본이 등장함으로 종결 되었다. 이후 미국이라는 관리자와 이 관리자를 대행하는 일본이라는 역학 관계는 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 65년 한일 수교, 일본의 기시 정권 수립과 안보 투쟁, 미일 가이드라인 문제 같은 미세 조정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 최 상급 관리자로 미국, 현장 관리권자로 일본이 구 소련(과 러시아)과 신중국을 봉쇄하는 형태로 후기 청일전쟁 레짐이 수립 되었다. 최초의 청일전쟁 레짐이 근대화된 국가 일본에 의한 한반도, 만주, 중국에 대한 점령 지배를 골자로 한다면  동아시아 제 1국으로 일본이 미국으로 부터 어떤 의미와 역할을 부여 받는가를 중심으로 작동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는 이 후기 청일전쟁 레짐의 하위 주채로 종속 변수의 위치에 가깝다)

그런데 냉전의 해체와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 된 이른바 ‘증언의 시대’는 한중일-중소(러)북이라는 포스트 청일전쟁 레짐의 골간을 흔들었다. 전 지구적인 생산의 분업 질서 내에 중국이 편입되기 시작하며 한미일 3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를 중심으로 강온 양면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911테러는 미국의 주요 관심이 전통적인 극동과 유럽의 안정에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의 지배 질서를 재편하고 중근동을 평정하는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고, 견고한 배타적 내셔널리즘으로 무장한 한중일 삼국은 이른바 각자의 지위와 역할의 재조정과 갱신 두고 여러 부문에서 갈등을 이어왔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아베 정부는 여러 의미로 좋지 못한 조건들에 놓여 있다. 기본적으로 아베 노믹스로 상징되는 엔화의 양적 완화는 사실상 출구 전략을 차지 못한 채 디플레이션을 심화시키고 있고, 전통적 통화주의자들의 접근법으로는 막대한 금융 비용 부담만을 유발하는 상황이다. 또한 아베가 총리대신 4선 도전을 하지 않겠다 선언한 상황에서 자민당 내 방계(현재에는 이들이 사실상 본계의 자리를 쥐고 있지만)가 오랜 시간 파벌의 핵심적인 의제로 추진해온 평화헌법 개헌과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를 바탕으로 한 보통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도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정의 불안함만 노출하며 그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과 일본은 G20 오사카 회담에서 보여주었듯 미국 주도의 데이터와 자본의 공개 자유시장-생산과 고용 창출의 보호주의 전략에서 중요한 협력 관계에 있다. WTO 이사회 문제에 있어서도 양국은 같은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재편 전략, 중국에 관한 보호주의적 압박, 북한에 대한 한미일 동맹으로의 편입, 한국의 위상과 역할 조정 등에 있어서 일본은 다소 주변화 되는 인상이 짙다.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 포스트 청일전쟁 체제는 실질적으로 ‘전쟁’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동아시아 대전론을 바탕에 둔 배타주의와 공안주의로 점철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수행이 국가 수준이건 민간 수준이건 간에 적의 존재와 적과의 상호작용이 훨씬 분명해질수록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한다는 공안주의는 더 강화 될 것이고, 이것이 급진화된 내셔널리즘과 결합 할 때 외국인에 대한 한층 더 강력한 헤이트 스피치와 ‘오염 의식’이 강화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화나 화해, 협력, 온건함 등을 외치는 이들은 공공의 적, 박쥐, 회색인간 취급을 받으며 탄압 받을 것이다. 더욱이 사실상 민주-공화국 경험이 취약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이런 잠재적 전쟁 구도, 현상 타파의 태도 같은 것들을 근거로 그간 지속해온 권위주의 무책임 국가/배외주의/공안적 자유주의를 강화시키고 이 대전 체제를 지탱하는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동원/증폭 시킬 것이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고민 해야 할 것인가? 터트려서 말 그대로 동귀어진의 문명사적 전쟁을 치를 것인가? 이는 모두에게 어떤 이득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미일의 자국 이익 중심주의를 위해 누군가의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 역시 용납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긴장의 와중에서 어디에선가는 압력이 팽팽한 파이프의 밸브를 조절해주고 물러날 퇴로를 열어주는 ‘판을 깨지 않겟다는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민중들 간의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연대의 구축은 절대적이다. 아래로 부터의 에너지가 강력한 동아시아에서 아래로 부터의 연대와 상호 이해의 면이 넓어지는건 그 어떤 동맹 보다 강력한 안전판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면 현재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동아시아’라는 단위 의식의 구축을 통한 열린 내셔널리즘의 정립에 이르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 정의의 구현과 수난 받는 이들에 대한 연대 더 나아가 사죄와 배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만큼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것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동아시아의 갈등이 관리 가능하고 유화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정치의 역할이다. 적어도 지금 아베의 강경 일변도의 드라이브를 멈출수 있는/그러나 우리의 자존을 훼손하지 않는 심모원려가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헤이세이 덴노를 한국에 초청해서 극진히 예우하고 동시에 그가 한일 간의 평화의 메시지 정도를 표명 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이 가능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동아시아 대전 시대에서 이를 평화와 연대의 시대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이는 과격파와의 싸움이고 동시에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 부르는 현실제약주의자와의 싸움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인들은 지금 완벽한 정의의 구현, 완전한 자존의 구현 만큼이나 이 갈등이 관리 가능하고 한일 양국에 출구가 있는 형태로 갈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 아베 정권의 준비 되지 않은 기습은 사실상 기대한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전 지구적 분업 체제 내에서 점점 뿌리 산업과 기초 자원이 힘을 갖던 시대에서 소비자에 가까운 곳이 힘을 갖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고 반도체는 한국이 사실상 전략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독점적 지위가 견고한 부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를 밀어낸 상황에서 인텔과 퀄컴, 삼성의 역할을 중심으로 네트워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재구축 해야 하는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 미중 무역 갈등과 WTO 변화 등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미국은 이 위기가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자존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아베에게 출구를 열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판단하는 근거이다. 그것이 바로 한일 갈등과 미일-중 무역 전쟁이 대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우리의 최대 이익인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동아시아 민중 연대는 결국 이 평화가 유지 되는 상황에서 구축 할 수 있다. 대중은 계급 정체성만으로 움직이 않는다. 그들이 현상하는 방식으로 국민, 국적, 국가, 민족 문제가 갈등적으로 표출 되는 상황에서의 초 국가, 초 국적 연대만큼 어려운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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