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별일 없으면 소개 되어 사람 보기 힘든 교정에서 지내다 보니 잡 생각이 많다.
주말엔 쓸데없이 본업에 인접한 질병과 인권, 정치 문제에 관해 끄적대는 정치-윤리학자가 되더니 오늘은 통속적 문학자 마냥 엇갈린 관계와 마음과 언어들의 문제에 매여든다.
사실 우리는 같은 시간의 지평 위에 서있어 보이지만 실제 우리의 위치값은 다를수 있다. 뭐랄까 각자 자기 존재가 서있는 시간의 서로 다른 흐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일수 없는 시간대, 서로에게 의미를 가질수 있는 시간대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농경시대의 유산인 철이 들다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자연의 시간에 고정 시킨다. 철이 든다는건 씨를 뿌리고 피를 뽑고 거두고 쉬는 때의 적절함을 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서로에게 두 개의 시간이 작동한다.
존재의 문제에 시간의 개념을 도입한 하이데거 마냥 관계의 문제에도 사맞는 때, 의미를 살려주는 시간, 존재가 닿을수 있는 시간의 진폭. 그리고 그 무수한 가능성의 결절들을 만드는 우연과 선택들. 그냥 약간 미친 문학자 처럼 종일 그런 생각을 해본다. 주파수가 어긋난 라디오 마냥. 다른 대역을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