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1
이 글이
죽음의 벼랑 끝에서 새로운 다리를 놓아주기를 바란다.
prologue 2
조울병(bipolar disorder, 양극성정동장애)은 조증기와 우울증기로 나뉘는데 이 두 주기가 일정 간격을 두고 순환한다. 조증기는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어 극도로 흥분되는 시기이고 우울증기는 극한의 침울로 내딛는 시기이다. 높이 올라가는 만큼 더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조울병은 제1형, 제2형으로 나뉘며 제1형의 경우 조증과 우울증, 제2형의 경우 경조증과 우울증의 패턴을 갖고 있다. 경조증(hypomania)은 '아래, 낮은'을 뜻하는 hypo-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처럼 조증(mania) 보다 비교적 증상이 경미한 상태를 말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생활에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경조증과 조증을 판가름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나는 제1형 조울병이며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급속순환형(rapid cycle) 패턴을 보인다. 극단의 상태에서 정신병적 증세가 발현되어 정신분열적 사고, 망상, 환각 등이 나타나곤 한다.
조울병을 방치하고 스스로 부정하느라 쏟은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 <조울의 기하학>을 연재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꽤 후회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쌓아 둔 데이터라고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꼼꼼한 성격이 아니어서 참 곤란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는 것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수시로 폭발하고 불현듯 침전하는 일상에서 생존하느라 내 증세가 어떠했는지를 매번 기록해 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롤러코스터에 앉아 인체비공학적으로 설계된 감정 순환 코스를 무방비 상태에서 타야만 했으니까. 티켓을 끊은 적도 없는 데 말이다. 멀미를 하거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내 병증은 바뀌고 나는 대혼란 속에 매번 힘겹게 롤러코스터에서 내렸다가 어느새 다시 올라타 있었다.
요즘은 내가 누구로 살아왔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쓰다 보면 그 끝에는 내가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여러 형태로 싸워온 흔적들이 그나마, 다행히도 남아 있어 그 흔적을 다듬고 엮으려 한다. 산문과 시, 그림, 사진 여러 형태일 수도 있다.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공감되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