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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서 Nov 25. 2024

귀로

 입원을 하든지 귀향을 하든지 선택해야 했다. 어디론가 격리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내릴 용기도 없었다. 회사에서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내가 나가주길 원하는 눈치였다. 점점 위축되었다. 빌어먹을 신체화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아찔하게 세상이 흔들렸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며 속삭이고 욕하는 것만 같았다. 급기야 회사 사람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착각에까지 이르렀다. 개연성 없이 폭주하는 추측과 내가 맞다는 확신, 타인의 상황에 대한 지나친 연민, 동정 모든 게 과잉이었으며 머릿속은 과부하 상태였다. 동료는 내게 근무 중인데 술에 취해 보인다고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하루종일 몽롱하고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오가는 취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밤낮 할 것 없이 수시로 극심한 불안감과 자살사고에 시달렸다. 병명으로 진단하기 어려운 기묘한 경험들도 늘어갔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키보드가 비현실적으로 뒤틀리며 색이 왜곡되곤 했다. 검은색은 녹색으로, 분홍색은 갈색으로, 흰색은 파란색으로 보였다. 안과에서 CT, 산동검사까지 받아보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조증기에 접어든 나의 사고는 눈에 띄게 현실과 동 떨어져 있었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졌다. 마피아와 연결되기 위해 이탈리아에 가야 한다는 충동이 밀려오고, 내가 숨겨진 정치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해 올해 5월에는 회사 휴가철도 아닌데 혼자서 9박 11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도 과도하게 소비하며 파괴적으로 돈을 썼다. 월급은 한순간에 날아갔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쌓인 빚만 2년 치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갚을 수 있었다. 조울병은 정말이지 비싼 병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께 정신과 치료 사실을 고백하기로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 지하상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며 걷던 중이었다. 왜 지금이 겨울인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던 찰나, 머릿속에서 유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겨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또는 가을의 초입이었지, 어느 곳도 겨울은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이 주춤거렸고 그 순간 더는 혼자서 중심을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급히 서울에 올라와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을 가졌다. 늘 부모님 앞에서 씩씩하고 강인한 모습만 보였던 내가, 이제는 조울증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었다. 나와 내 가족이 어디까지 파괴될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중견기업을 그만두고 서울 자취방을 정리했다. 마을버스를 볼 기회도 드물 정도로 외진 동네여서, 이삿짐센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온 뒤에도 여전히 수백 개의 분자가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시골로 내려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부모님의 관심 아래 충동을 실현할 손발이 묶여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굴러갔다. 때때로 질주하는 행동들, 결국에 산산조각이 나고서야 모든 일을 멈췄다. 주치의 선생님의 바람대로 입원을 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의 추억, 2024, 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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