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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Nov 09. 2024

혼기가 지난 싱글 남성에게 닥쳐온
메리지 블루

이것은 픽션입니다만?

- 안녕하세요, 저 김 순자 자자 아들입니다.

- 누구시라고요?

- 마산에 순자 아들입니다. 어머니 대신 왔어요, 아드님 결혼 축하드려요.


예식이 삼십분이나 남았는데도 작은 웨딩홀은 어른들의 웅성거림으로 시끄러웠다. 내 인사에 물음표가 맑게 뜨던 혼주 아저씨의 눈빛은 '순자 아들'이란 말에 안도감과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며칠 전 엄마는 동갑내기 사촌의 큰 애가 서울에서 결혼을 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위치를 보니 강남 어디라는데, 대신 축의금도 전달하고 혼주와 인사까지 하고 오란 지령이 떨어졌다. 평소같으면 주말에 일정이 있다며 대충 둘러댔겠으나 미처 거절하지 못했다. 본가에 안 내려간지 두 달이 넘으면서 슬슬 부채감을 느끼던 차였다. 자식들은 얼굴 자주 비추는 게 효도라는데 그걸 못했으니 순순히 다녀오는 수밖에.

통화를 마친 엄마는 곧장 모바일 청첩장 링크를 던져주었다. 아니 엄마, 그래서 내가 인사해야 하는 분이 신랑측인지 신부측인지는 알려줘야지. 엄마의 사촌이라는 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웨딩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긴장감이 끼쳤다. 엄마의 사촌이니 아주 어릴 적에야 뵌 적 있겠지만 기억에는 없는 아저씨. 문제는 혼주 내외도 같은 상황이라는 것. 내가 아주 어릴 적에야 본 적 있으시겠지만 적어도 서른 해가 지난 지금의 얼굴을 알아보실 리가.

인사를 나누고 소개가 오가는 시간이야 고작 5초 남짓이겠지만 그 잠깐의 어색함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이와 함께 적당한 능글맞음을 장착한 줄 알았는데 아직 많이 멀었다. 소심했던 열살의 내가 여전히 나를 장악하고 있는 느낌. 내가 일상에서 가장 회피하고 싶은 감정. 그럼에도 나는 서른이 훌쩍 넘은 어른이자, 십년 넘게 멀쩡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인이므로 더이상 피하지는 않는다.


아니, 사실은 피하고 싶다. 소심한 열살 아이의 등 뒤로.

솔직히 엄마의 인사 지령이 없었더라면 축의금 봉투와 방명록에 엄마 이름을 쓰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하고, 혼주 내외에게 인사를 전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너무 북적여서, 또는 가는 길이 늦어져 혼주가 입장할 즈음 도착해버려서 차마 인사를 전할 수 없었단 핑계를 댈 참이었다. 어쨌거나 혼주 내외께서 기대 이상의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시면서 미션은 석세스. 이렇게 한걸음 더 어른에 가까워졌단 생각과 함께, '아빠 외갓집의 조카'라는 소개를 듣고도 나와 육촌지간인 신랑이 고개 한 번 까딱하지 않는 걸 보며 너는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다.

작지만 단아한 웨딩홀을 찬찬히 훑어보며 예식을 끝까지 보고 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곁을 스쳐갔다. 아, 저 분이 외가쪽 친척이었구나, 행색이나 말투나 돌이켜 생각하면 꽤 날티가 났는데, 세월을 따라 이목구비에 차분함이 서렸네, 길게 내려온 뒷머리와 귀 뒤로 바짝 넘긴 옆머리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 모습이 묻어 있으신데, 어라, 지금 보니 내 머리랑 똑같잖아.

예기치 않게 어색한 5초를 또 마주할까봐 신랑 입장과 동시에 피로연장으로 도망쳤다.


어제 술을 꽤 마셨는데도 뷔페에서 나눠주는 생맥주에 강하게 끌렸다. 왜인지 웨딩홀에 서서 예식을 기다리는 동안 명치부터 등까지 체한듯 뻐근했는데 맥주를 마시면 가슴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시원하게 내려갈 것만 같았다. 신랑과 혼주 어른들이 인사를 돌기 전에 나가겠다는 목표로 서둘러 두 접시를 먹어치우곤 맥주를 한번에 들이켰다. 가슴이 시원했다.




나는 왜,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나.

역삼역 에스컬레이터에 얹혀 지하로 내려가는 게 마치 우울의 웅덩이에 깊숙이 잠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결혼식을 다녀올 때마다 이유 모를 우울감을 겪고 있다. 무려 100%의 확률로, 결혼의 주인공이 친척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 없이. 이건 신종 메리지 블루인가. 그들이 결혼해도 내 일상은 달라지는 게 없는데 대체 이 감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체한듯 가슴이 답답했던 것도, 맥주가 강렬히 끌렸던 것도, 꼴랑 한 잔으로 금세 알딸딸해진 것도 다 신종 메리지 블루 탓이리라.

나는 심리학계에 보고된 적 없을 이 변종 메리지 블루를 찬찬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발현되는 모든 심리 증상은 골똘히 돌이켜보면 원인과 해답을 스스로 도출해낼 수 있다. 바야흐로 10년 전, 오래된 트라우마를 심리상담으로 극복하면서 얻은 인생의 진리다.


오늘의 심리 탐구는 변종 메리지 블루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추려냈다.

혼주들의 얼굴에 깃든 거대한 행복감을 여지껏 부모님께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솔직히는 그 행복감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잠정적 확신에서 오는 죄책감이 첫번째로 도출되었다. 두번째는 더 짙어지는 여생의 불확실성으로 정리되었는데, 서른 언저리에 만난 사람과 서른 중반 즈음엔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어나가는, 이미 정리된 메뉴얼을 따라가기만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삶으로 진입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감이라 풀어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잘 닦인 길을 달려도 녹록치 않은 게 인생이라는데 우리 세대에게 비혼의 삶이란 네비게이션은 커녕 지도조차 주어지지 않는 오프로드를 심지어 바이크로 달려야하는 느낌이랄까. 작년에 맞이한 서른다섯이란 나이는 마치 '여기가 마지막 휴게소입니다'라는 고속도로 안내판처럼 여길 지나치면 다신 기회가 없다는 경고 사인 같았다. 여길 지나면 도로가 끊어지고 오프로드를 질주하실 수 밖에 없으세요. 나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J도 이런 기분을 똑같이 느꼈겠지.


작년 어느날, 만취해야만 속마음을 털어놓는 J는 전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 내가 너한테 종종 쌀쌀맞았을 때 있잖아. 그땐 사실 내가 너를 붙잡고 있어서 니가 날 못떠나는 거 아닐까, 이제 그만 내가 놓아줘야 하나, 너는 더 잘 살 수 있는데 내가 그걸 막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만취 상태라 다음날이면 기억 못할 걸 알지만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노라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붙잡고 있는 거니까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란 말도 함께. 서른다섯이라는 경고 사인을 지나치며 나는 너에게 여생을 걸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하여 세번째, 변종 메리지 블루의 근원이자 최종 명제는 '내가 결혼 제도에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되는대로 흘러온 내 인생에 유일하고 확고한 선택.


오늘이 저물며 메리지 블루도 희미해지는 걸 느끼고 있다. 해가 짧아져 늦은 오후인데도 밖이 어둡다.

오프로드 여생의 결말이 낭떠러지라도, 함께 추락할 수 있다면 행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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