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마영신
나의 엄마는 '전통적 엄마'의 상과는 아주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거의 '엄마'이자 무급 가사노동자로 살았기에, 나는 그때까진 가끔 하는 설거지 외엔 어떤 집안일도 하지 않고 살았고, 그래서 가사노동의 지난함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다. 그럼에도, 그걸 깨닫는 건 내가 가정을 꾸리고 난 뒤의 일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의 '남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속 시끄러운 나날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거다. 내가 대학ㆍ대학원에 다니던 때, 우리 네 식구는 서울 대학가의 지하방에 살았다. 그 때 엄마는 식당일을 했는데, 밤이면 동네 라이브카페ㆍ술집에 가서 새벽까지 '놀다' 오곤 했다. 아침에 나는 학교를 가고, 엄마는 식당에 나가는 길, 간밤에 같이 술 마시며 놀았던 사이일 동네 아저씨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엄마가 참 보기 싫었다. 아빠와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소 닭보듯' 하는 사이였고, 그 무렵 우리 네 식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말을 잘 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대체 왜 그때껏 한 집에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실은 안다. 쪼개져봐야 더 드는 건 집세와 생활비뿐이었으니 그런 것이었겠지.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엄마는 새벽 바람을 쐬러 자전거를 끌고 내가 다니던 대학의 언덕길을 달리다 바위에 부딪혀 크게 다치고 말았다. 두 손목이 완전히 부러져 뼈를 맞추고 수술을 받았다. 며칠 입원하는 동안 내가 수발을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그 후에도 엄마는 누군가와 신나게 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었고,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이해하기엔 여전히 어린 나이였다, 고 말하고 싶지만..사실 나도 그 때까지 여러 번의 연애를 엎치락 뒤치락 했기에 연애의 감정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감정이란 걸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엄마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내게 엄마는 '엄마'였고, 또 미디어에 비쳐지는 보통의 엄마들, 또는 주변의(피상적인 거긴 해도 어쨌든) 엄마들을 봤을 때 우리 엄마의 그런 모습은 분명 어딘지 어긋나보였기 때문일 거다.
<엄마들>을 보는데, 그 이야기 속 엄마들이 우리 엄마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가, 좋았다가 했다. 책에서 우리 엄마같은 엄마들을 본 건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엄마'를 그렸다고 하는 소설들을 잘 읽지 않는다.) 우리 엄마 역시, 오랜 세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했을 뿐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겨우 두어 달에 한번 바람 쐬러 나오는 요즘의 엄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일 좀 덜 빡세게 하고 연애나 하고 싶다'고 말하다가도 '아효 다 귀찮아, 만사 귀찮아'하는 엄마가 이제는 조금 더 이해가 되는 내게, 이 책이 몇 년 더 빨리 다가왔더라면 좋았으리란 생각을 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맨 끝에 실린 작가의 노트가 더욱 맘에 들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