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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곡동 서작가 Nov 02. 2021

내 자기해방의 기억

<사회주의>, 장석준



37년 인생 중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것이 한 10년쯤 밖에 되지 않은 데다, 기억력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읽는 족족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류의, 역사 쫙, 개념 쫙, 해서 정리하는 책은 더더욱 어렵다. 혁명사에 관심이 있고 자타공인(?)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그 역사나 정의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 그런데 그래도 지난 수 년간, 나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는 마법 같은 무엇이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시작은 대학원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몇몇 구성원들과 세미나를 할 때 만난 짧은 구절이었다. 



"아무도 하나의 배타적 활동 영역을 갖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도야할 수 있는 코뮌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 생산을 규제하게 되고, 바로 이를 통하여,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치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하면서도 사냥꾼으로도 어부로도 목동으로도 비평가로도 되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중에서 


생계를 위해 필요한 일은 꼭 필요한 만큼만 하고, 남는 시간에 의미 있고 재미 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마침 미국 이주 직후 미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점거하라(Occupy)' 덕분에 미국에서 이런 얘길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사회주의 운동단체'에 가담하게 됐다. (아마 한국에서였다면 그렇게 쉽게(?) 가입하진 못했을 텐데,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말로 말할 때보다 이방인으로서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할 때 오히려 자유를 느끼는 희한한 사람이었고, 그게 궁극적으로는 나의 '자기해방(self-emancipation)'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 사람들과 몇 달간 일주일에 몇 번씩 얼굴을 봤는데,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얘기를 하면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말 뜻을 이해하기에도 벅차 헉헉대곤 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 분위기가,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좋았다. '일하는 사람들'에 속하는 우리 대다수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게 '좋은 삶', '옳은 길'이라 할 수 있는지, 진짜 노동하는 삶, 인간답게 사는 삶이란 어때야 하는지 그런 것에 대해 치열하게 묻고 답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이론적으론 뭔지 잘 모르겠어도, 그게 내가 바라는 우리의 삶과 일치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활동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소리내어 말하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 심지어 더 설치고 더 떠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세상은, 다시 앞에서 인용한 맑스의 저 구절처럼, 내가 이 일, 저 일을 깊이 있게, 즐기며 '할' 수 있으면서도 어떤 권위적인 무엇도 되지는 않는, 나의 고유성을 발현하며 스스로 만족하고, 남과 더불어 그러나 독립성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self-emancipation of working class)'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상투적으로 외친다고 자동으로 되는 일이 아니며, 교조적인 태도로 가르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노동계급이 사회 전체 이익의 대변자로 나서려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기울"(p.153)일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자성을 인지하고, 우리가 다수임을, 곧 우리가 '사회'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노동자성을 인지하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노동자의 상황을 보며 나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려는 사람보단 자본가에게 나의 미래를 투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일 때가 있다. 그걸 바라보며 냉소하거나, 그런 이들을 가리켜 무지하다고 무시하기 쉽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명백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냉소와 무시를 거두고 이 '다수'인 우리가 집단적으로 힘을 길러낼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는 것이어야 할 테다. 그게 뭔지,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라도, 공부를 더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선 내가 원하는 저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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