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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Mar 13. 2022

아날로그로 구축된 세상 디지털로 전환하기

인간과 기계가 다르게 이해하는 시스템 

 철강제조용 용광로(고로)에서 배출되는 쇳물을 오랫동안 시간을 가지고 관찰하던 기회가 있었다. 현대의 고로(용광로)는 출선구라고 하는 hole을 통해 배출 초기에는 비중이 낮은 슬래그(철 찌꺼기)가 먼저 배출되고, 이후 내부에 고여있던 쇳물이 배출된다.  얼마간의 시간 동안 쇳물만 배출되다가 말기에는 다시 슬래그가 쇳물과 혼합되어 배출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점에 이르면 조업자는 hole을 막는 시기를 판단한다.  그런데 경험이 적은 내게는 말기에 배출되는 쇳물 속에 슬래그가 혼입 되었는지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을 지키는 작업자는 배출 중단을 위한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아직 충분히 나오고 있는데 너무 빠른 폐쇄가 아닌지 옆의 직원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내 생각과는 달리 현장 작업자의 판단에 동의한다 하였다.  그가 가리키는 작업 진행실 감시 카메라(CCD)로 보이는 화면에서는 눈으로 볼 때는 한 줄기의 물줄기같이 보이는 배출물이 여러 개의 스트림으로 분리된 형태로 보이고 있었다.  쇳물과 슬래그의 방사율(emissivity)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카메라는 구분하지만, 인간의 눈은 그렇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랫동안 감당해온 작업자에게는 어느 정도 구분이 된다. 미세한 빛의 차이를 구별해 내는 능력이 그를 전문가로 부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전 세계는  DX(Digital Transformation)과 AI(Artificial Intelligece)그리고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전환 중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으로 발전해 온 현대사회의 근간은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인 방법에 기초하여 인간의 실행능력을 기계화로 확장시켜왔다.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화석연료인 나무-석탄-석유-천연가스로 지속적인 전환이 이루어졌고,  관련된 산업인프라도 이에 연동되어 발전되어왔다.   이 두 가지로 구축된 서구 선진사회를 따라잡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 50년의 시간을 통해 시대의 문법을 빠르게 익혀 압축성장에 활용해 온 결과 중진국과 선진국 대열 끝에 도달했다. 언제까지나 늘  유효할 것만 같던 흐름에 갑작스러운 도전 상황을 맞게 되었다.  숨 가쁘게 도달한 안정된 체계이기에  어느 한쪽의 변화라도 중심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Corvid-19 팬데믹 광풍까지 맞게 되어 더 큰 혼란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위기는 새로운 기회의 역설이기도 하고 내부에서 기인된 도전이 아닌 외부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잘 대처한 여러 번의 경험이 있기에  다시 그 본질을 찾아내어 적응해 나가야겠다.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근대 이후 급격히 발전해온 여러 기간산업분야에서 견고하게 체계화되었다.  동시에 지난 수 십 년 동안 찾아온 디지털의 물결에 따라 각종 자동화와 전산화로 표현된 운영시스템 상당 부분이 컴퓨터 운영방식으로 전환되어 왔다.  앞서 언급된 전산화 방식으로 시작된 디지털 전환은 이제 그 표현만으로는 한계를 느껴  정보화(情報化, digitization)라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  과거 전산화가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나 있는 상태로 되는 것'이라는 소극적 관점에서 출발하였다면, 정보화는 ‘어떤 지역이나 분야가 정보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넓게 의미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류사회가 이룩한 과거의 모든 성취의 대부분은 아날로그적인 것이다.  수 천년 동안 이어온 그 방식을 쫓아 근대화의 여러 산물을 뒤늦게 모방해온 우리는 각종 기반 시스템 곳곳에 서둘러 체계화시켜왔다.  다행스럽게 도입과정 중에 이루어진 컴퓨터 및 무선통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아날로그 시스템 주류 안으로 디지털 처리 영역이 부분적으로 포함되면서 효율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스템의 주체는 아날로그적이지만 일정 부분 디지털이 포함되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아날로그적으로 설계된(디자인된) 시스템이었기에 외견상 하드웨어는 디지털을 추구하는 컴퓨터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졌지만,  '일(공정)을 정의(define)하고 추진하는 과정(process)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다.  특히 DX에 관해서는 사회 여러 곳에서 주요한 화두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디지털로의 전환은 지금까지 아날로그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중대한 관점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인간이 듣고 보고 표현하던 것을 그동안 기계가 이해하는 digit방식인 0과 1로 표현된  방식으로 번역(변환)시켜왔다.   이에 따라 숫자로 표현된 데이터인 온도, 압력, 무게 등은 계측기를 이용하여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쉽게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오감으로 느끼는 여러 현상과 추이를 계량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을뿐더러 비용 대비 가치가 높지 않아 관심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디지털 혁명으로 급 선회한 최근 들어 이 부분에 대한 개발과 응용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룩한 고도의 산업화 산물은 아날로그적 관점에서 설계된 시스템으로 인간이 사물을 관찰하고 생각한 후 행동하는 방식을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구축되어왔다.  그렇기에 대부분 데이터의 활용 주체가 기계가 될 때는 기계가 필요한 방식과 형태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그들의 차별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오래된 관성에 따라 공정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면서 인간이 익숙한 방식으로 센서를 배치하고, 인간의 감각 수준에서 최적화하는 경향에서 모순을 발견한다.  일례로 사파이어 유리를 통해 관찰하던 용광로의 연소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카메라를 장착해온 그간의 방식은 인간 조업자를 위해 필요했지만, 굳이 사람이 주기적으로 방문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런 방식의 계측기를 통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할 것인지 자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최근 어떤 이들은 디지털화로 변환되는 세상을 대응하기 위해 모든 이들의 코딩능력 향상을 주장하고 있다. 특정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고 프로그래밍하는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언어의 구현 능력에 앞서, '컴퓨터는 어떻게 데이터를 인식하고 일하는 방식이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해를 가져할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리터러시(digial literacy)라는 용어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으로 정의하지만, 여기에 '기계가 이해하는 방식'을 생각하는 능력을 추가하고 싶다.


 그동안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최신식 카메라가 장착된 신차로 바꾸게 되어 운전하던 첫날,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된 앞차의 브레이크등의 시그널 표시가 내가 보는 것과 3D 디스플레이로 보이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앞차의 시그널 불빛은 내게는 연속적으로 보이지만, 수 십 개의 반도체로 무장한 나의 신형차에게는  아마도 초당 5~60개의 사진을 인식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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