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발견한 자율등산의 즐거움
나는 타인에게 등산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명확한 설명이다. 그래서 단독등산은 성년이 된 이후 동네 뒷산을 잠시 오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태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기피행위였다.
서울 외곽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부친의 등산취미생활로 연년생 동생과 자주 강요된 등산에 동원되었다. 인근 도봉산, 수락산등 접근성이 용이하고 당시에는 코펠과 버너를 준비해서 산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기에 배낭에 가득 짐을 지고 올라가는 주말 행사는 어린 나에게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어떤 날은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는 통해 산중턱에서 변변한 방수장비도 없이 나선 터라 새파래진 입술을 깨물고 나무아래에서 한참을 비 그 치기를 기다리던 기억은 지금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진 몇 안 되는 슬픈 기억 중 하나이다.
초,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가끔씩 역시 산이 품고 있는 인근 계곡으로 소풍을 가거나 산림보호를 위한 송충이 잡기를 위해 그 익숙한 산을 다시 찾곤 했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고 보니 가끔씩 조직활성화 혹은 높은 분들이 강력히 권하는 등산일정이 해마다 이어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 체력과 선호에 관계없이 일방적인 일정운영에 따라 늘 긴장된 마음으로 그 행렬에 참가하게 되었다. 어느 해인가 새로 부임한 부소장은 매주 일정 직급이상은 반드시 산행을 가야 한다고 사내공지를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참석을 피하다가 어느 순간 그분과 사무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왜 등산에 빠지는 거지? “, 농담조로 던진 그의 질문에 영결겁에 나온 나의 대답은, ’ 저도 주일(일요일)에는 교회에서 부소장님 쯤 되는 위치라서..‘
그렇게 직장생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휴일등산을 기피하고자 하였는데 최근 나는 홀로 등산을 즐기는 반전 속에 살게 되었다. 이렇게 된 계기는 몇 주전 주말을 저마다의 일정으로 흩어진 가족과 떨어져 홀로 보내는 방법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등산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토록 기피하던 등산이 떠오른 것은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를 떠나 푸른 숲 속을 가진 곳이 둘레길 아니면 인근 산이 가능한 선택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문득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라는 전제조건을 달면 혼자서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이 그리고 직장에서는 담당자가 사전에 코스와 일정을 정하고 필요한 지원사항인 차량이동, 간식, 점심, 뒤풀이 식당 그리고 약간의 기념품등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이었지만, 나 홀로 등산을 계획하다 보니 그 모든 것을 오로시 혼자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지원사항은 그간 나의 선호나 주관이 반영되지 않은 관행적으로 선정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다소 특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달았다. 또한 단체산행 시에는 나의 체력과 상태와는 관계없이 선택되는 목적지와 소그룹을 구성해야 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흐름을 좇아야 하는데, 단독등반의 경우는 내가 결정하는 시간에 움직이고 원하는 시간에 멈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단체산행 때에도 나름 배려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간식(점심)에 관해서도 등산에는 간편한 식사를 위해 ‘밥’을 대신 한 김밥이 당연하게 여겨 대체로 화려한 김밥이나 도시락이 제공되곤 하였는데, 나로서는 밥을 산에까지 가서 꼭 먹어야 할까라는 저항감이 들곤 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내가 정한 목적지를 원하는 시간에 출발하고, 정상까지 가는 과정을 내 생각의 흐름대로 맡기기로 했다. 더불어 동네 빵집에서 눈여겨보던 통밀빵과 당분보충용 단팥빵등으로 내 기호에 맞춘 간식을 채우고 산행을 마친 후 인근 커피점에서 따뜻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스스로 준비한 산행 준비물을 챙겨서 체력상태도 확인 할 겸 인근산을 대상으로 시험등반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도합 7시간 이상 소요된 쉽지 않은 일정임에도 약간의 장딴지 근육통만 남긴 채 이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등반 내내 그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생각날 때 멈춰 서서 쉬고, 느릿하게 걷다가 가끔은 성큼성큼 내질러 올라가는 비규칙적인 등반이었다. 당연히 가져간 간식을 점심식사시간과 상관없이 허기를 느낄 때마다 당보충을 이유로 수시로 꺼내먹는 자유로움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꼭 정상까지 ,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할 목표가 없기에 느슨한 시간관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평소 같으면 상상하지 못할 시간 안에 정상까지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소요시간으로 보면 단체 산행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고, 타인을 의식하였을 때에는 늘 내 체력은 남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이번 등반경험으로 보면 그것도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 내 체력, 그리고 등산에 대한 나의 판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이런 파일럿 등반을 통해 얻은 느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한라산 백록담 단독산행을 결정하였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건대 평소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져지지 않은 어설픈 육체를 이끌고 국내 최고봉을 오르겠다는 생각은 평소의 나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지만 주저하지 않고 사전 등반 신청을 마치고 준비에 돌입했다.
마침내 D 데이 아침 일찍 전날에 평소와 같은 불면의 밤을 지냈기에 중도에 상황에 따라 등반을 중지할 것도 염두에 두고 성판악계곡을 들어섰다. 시험등반때와 같이 내가 원하는 시간과 속도 그리고 쉬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 올랐다. 이미 노년기로 접어드는 나의 체력과 몸상태를 고려하여 언제든지 등반 중지가 합리적이라고 다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편하게 걷다 보니 일차 목표인 두 번째 휴게지점까지 오르고 있었다. 정상등정에 필요한 최소 출발시간인 12시 30분 보다 2시간 이상 남은 상태였기에 뒤 돌아가려 생각해 보니 남은 시간이 너무 많고 아직 심장과 두 다리가 견딜만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다수의 동반자들이 정상을 향해 떠나는 것을 보고 제일 힘들다는 이 코스를 어느 정도 경험해 보고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출발했다. 역시 가파른 구간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힘든 코스이긴 했는데 쉬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여유를 가지고 오르는 중에 앞서가는 이들이 정상이 보인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안갯속에 자리 잡은 정상이 지척에 있었다. 다시 힘을 내어 발길을 내딛고 앞선 이들의 뒤꿈치만 바라보고 걷다 보니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게 되었다. 비록 짙은 안개로 백록담은 볼 수 없었지만 정상석(石)에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에워싼 인파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정상에 있는 것이 실감되었다. 정상석을 먼발치로 놓고 사진을 찍는 요령을 통해 빠르게 인증사진을 찍고 반대편 관음암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은 지루하게 이어진 4시간 이상의 하행길은 상행길에 못지않은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는 자신감인지 구름 위를 달리는 것 같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타인과의 일체 된 행동, 집단속에서의 질서유지 그리고 효율로 재단된 일상에 최적화된 지난 수 십 년의 사회적 경험이 내게는 단체등반을 혐오의 대상으로, 그 등반을 주도하고 선호하는 이들에 대해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로 인식했던 판단오류의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혹은 대부분의 우리는 지난 세월 우리 사회가 옳다고 여긴 획일화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이번 산행을 계기로 각각에게 부여된 자기 자신으로 살기로 결심할 때 단정적으로 판단된 많은 일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로서 사는 길, 그 방식의 가치가 등반뿐 아니라 내게 부여된 다양한 문제들을 창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이러한 진리가 여전히 내 주변의 가족, 동료, 지인들 모두에게도 유효한 것이기에 그들도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당연히 힘써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본다.
2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