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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공약수에서 최소공배수로:
인공지능, 자연지능 대화

- AI시대 모두에게 익숙한 길을 넘어, 창발의 시너지를 찾아서 -

by 새나라의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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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의 덫, 공통분모에 갇힌 대화의 풍경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본래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귀한 행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화 참여 인원이 많아질수록 논의의 깊이와 진정성은 얕아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경험을 예를 들자면, 5명에서 9명 정도의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가지는 식사 모임에서 늘 건강, 투자, 골프와 같은 특정 주제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각자의 관심사가 투영된 결과이겠지만, 이런 주제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하면 이내 알 수 없는 어색함과 저항에 부딪히기 일쑤다.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는 결국 대화의 영역을 특정 주제에 가두고, 모임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린다. 나는 점차 이러한 모임을 꺼리게 되고, 대화의 본질이 희석되는 순간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대화의 역설: 많을수록 얕아지는 최대공약수의 비극

이러한 현상은 수학의 '최대공약수' 원리와 묘하게 닮아 있다.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관심사와 통찰은 서로 다른 소수(素數)와 같다. 이들이 모여 공통된 주제를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공통분모, 즉 최대공약수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개인의 독창적인 '소인수'들은 다수의 의견에 맞추기 위해 배제되거나 희석될 수밖에 없다. 결국 대화의 수준은 모두에게 무난하고 표면적인 것에 머무르며, 진정성 있는 논의는 사라진다. 다수가 모인 모임에서는 서로의 생각에 대해 깊이 있는 탐색보다는, 모두에게 안전하고 익숙한 '최대공약수'를 찾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한편, 대화의 극단은 2인 대화로 귀결된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상황은 때로 가장 깊이 있는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주고받으며, 하나의 주제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밀도 높은 대화는 때때로 유익하기도 하지만 불편한 영역으로 확장되는 양가적 특성을 갖는다. 대표적 사례로, 각종상담, 의료진단, 인터뷰, 취조와 같이 오직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하는 대화를 들 수 있다. 모든 대화가 이런 식으로만 흘러간다면 소통의 다양성과 즐거움은 사라질 것이다. 2인 대화가 가진 집중력이 모든 상황에서 해답이 될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의 소수(素數)를 곱하는 최소공배수의 힘

그렇다면 우리는 대화의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의미를 창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바로 '최소공배수'의 원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최대공약수가 모두에게 공통된 '가장 작은' 요소를 찾는 것이라면, 최소공배수는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소인수'들을 모두 포함하여 '가장 큰' 공통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공통분모를 찾는 것을 넘어, 각자의 고유한 관심사와 전문성을 존중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주제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협업을 생각해 보자. 마케팅, 기술, 재무 담당자가 모여 있다고 가정하면, 최대공약수의 대화는 '매출 증진'과 같은 보편적 목표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최소공배수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결합해 '데이터 기반의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장기적인 투자 가치를 확보하는 전략'과 같은 훨씬 더 풍부하고 구체적인 주제를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어떤 한 개인도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참여자들의 모든 '소인수'들이 결합된 창의적인 결과물이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 아버지는 '캠핑과 등산'을, 어머니는 '역사 유적지 탐방'을, 아이는 '새로운 맛집 탐험'을 원한다고 해보자. 최대공약수의 대화는 모두가 무난하게 만족할 만한 동네 공원 방문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공배수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모두 포함하는 여행지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도시 근교에 있는 자연 휴양림에서 캠핑을 하고, 도시의 유서 깊은 시장에서 지역 음식을 맛보는 여행을 기획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공배수적 대화는 서로의 '소수'를 존중하고, 이를 곱하여 더 큰 하나의 '배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AI 시대의 인간적 대화: 공감과 창발의 차이

최근 AI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AI와의 대화도 또 다른 소통의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방대한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효율적인 정보 제공과 문제 해결을 돕는다. 하지만 AI는 본질적으로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하고 재조합하는 것에 능하다. 이는 AI가 '최대공약수'를 찾는 데는 뛰어나지만, 아직까지는 인간의 고유한 경험, 감정, 통찰이 부딪히고 결합하여 탄생하는 '창발적(emergent)' 아이디어까지 만들어내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 자연지능 간의 대화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고유한 경험, 감정, 통찰이 부딪히고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최대공약수적 대화가 모두에게 익숙한 기존의 해답을 재확인하는 행위라면, 최소공배수적 대화는 '전에 없던'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창발적인 행위이다. 이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협업의 능력이며, AI와는 차별화되는 특별한 가치이다.

최대공약수에서 최소공배수로, 협업의 미래를 열다

결국, 대화의 본질을 찾는 것은 단순히 참여 인원을 제한하는 문제가 아니다. '최대공약수'에 안주하지 않고, 각자의 고유한 '소인수'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대화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소수의 모임이 갖는 깊이와 자발성을 존중하고, 다수의 만남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유연한 틀을 고민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화의 조건이 아닐까. 다수가 즐겁고 행복하고 의미 있게 함께하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든 진정한 소통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모든 대화가 항상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즐거움 자체가 가장 큰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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