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를 위해 쓰는 글
2년 전 발행한 글에 4가지 없는 댓글이 달렸다. 프로필 사진을 클릭해 보니 본인을 포함한 가족사진처럼 보였다. 나 참, 가족사진 걸어놓고 4가지 없는 댓글을 쓰는 당신 뇌가 참 한심합니다.
일단 나름 점잖게 답변을 하고, 그 댓글을 화면캡처해 두었다. 혹시 모르니...
그리고 하루동안 내내,
머릿속에 그 댓글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튿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 댓글을 삭제했다.
이유는, 댓글 중에 글쓴이를 공격한 글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공격성 댓글을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4가지 없는 글이 하나일 때는 튀어서 부담스럽지만,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동지가 있다는 든든한 믿음 때문에 간덩이가 부어서 악플을 싸지를 가능성이 크다.
생각이 많아져서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글을 쓰며 좀 정리해 보련다.
1. 왜 저 사람은 나한테 공격을 가했는데 나는 점잖게 답변을 해줬는가. 같이 비꼬면서 대답해 줄걸 그랬나? 저 사람은 나를 존중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반격하지 않았을까. 뭔가 미찌는 기분인데? 수치심까지 든다. 그때 무난하게 대응한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2. 그렇다고 같이 공격적으로 답변을 하면, 이것도 안 좋을 것 같다. 이유는 내가 다른 작가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봤을 때 눈살 찌푸려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왠지는 모르겠다. 그 작가님이 예의 없는 댓글에 똑같이 쌀쌀맞게 대해준 것이 뭔 잘못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난 그게 영 별로라고 느꼈다. 사람은 다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불쾌한 글이 오가는 걸 보게 되면, 보는 사람도 기분이 잡칠 것 같다. 왜 이럴까. 나도 궁금하다. 아직 해답을 못 찾았다.
3. 내가 쓴 글에 동의 안 할 수는 있다.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분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댓글을 쓸 때 예의만 갖춘다면, 글쓴이로서 나도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의견을 교류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저렇게 은근히 비꼬며 공격해 오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그냥 자기의 불쾌감을 싸질러 놓으려는 것이 목적이다.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속이 후련해질 뿐만 아니라 글쓴이에게 정서적 타격까지 줬으니 더욱 속이 시원할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댓글을 쓴 사람인데, 나는 당하기만 하고 가만있어야 한단 말인가.
4. 그런데 반격하자니, 왠지 끝이 없을 것 같다. 서로 비꼬며 비아냥대는 글이 여러 번 오가면 최종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해 주면서 좋게 끝날까? 그건 아니란 말이다. 답이 없다 그런 대화는. 시간낭비일 뿐. 저 사람이랑 논쟁을 계속할 마음이 없으면 그냥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은가? 그럼 나의 첫 대응이 괜찮은 것일지도. 그러나 여전히 속이 부글대는 것은 어쩔 수 없네...
5. 지금까지도 부들부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뭐가 못마땅해서 아직도 그 댓글을 잊지 못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내가 적절한 대응법을 못 찾아서 그런 것 같다. 공격적인 댓글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을 했어야 했던 걸까. 내가 한 대응이 맘에 안 들어서 지금까지 계속 생각하나 보다.
6. 쌍욕이 없는데 악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쓴 글에 의견을 제기했다고 그걸 비난성 글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음... 쌍욕이 없지만 비꼼과 비아냥, 공격성이 다분히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7. 저 정도 댓글을 받고 부들대는 게 맞는가. 이건 댓글이 달린 장소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개인 블로그에 달리는 댓글은 조금만 공격성이 느껴져도 글쓴이가 크게 상처 입는다. 하지만 익명사이트에서 다 같이 4가지 없이 놀 때는 비난을 받아도 무덤덤하다. 원래 그런 곳이니까.
8. 연예인들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악플을 받더라도 상처가 덜 할 것 같다. (물론 진성팬이 그다지 없는 연예인이라면 또 다르다.) 일반 블로거나 브런치 작가들은 팬도 없는데, 공격을 받으면 상처가 깊게 날수 밖에 없다. 나는 나 혼자서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뭔가 수치심이 든다. 수치심이란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마음이 몹시 안 좋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고, 내가 악플 받았다는 사실은 그 악플을 쓴 사람 외에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수치심과, 분노와, 욕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있다.
9. 나는 어떤가? 나도 4가지 없게 쓰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지 안 될지 2번, 3번씩 생각해 가면서 쓴다. 그럼에도 당사자가 보면 열받을 만한 글이 몇 개 된다.
10. 브런치에는 자신의 생각을 과감 없이 드러내는 글이 많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같은 사연을 놓고 입장차이가 많이 날게 뻔하다. 글쓴이의 너무 솔직한 생각은 악플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다행히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 댓글을 쓰는 분들은 대부분 브런치 작가분들이다. 그래서 서로 예의를 지킨다. 만약에 브런치 글이 일반대중에게 그대로 노출되면, 엄청난 악플이 쏟아질 가능성이 상! 당! 히! 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1. 사실 발행할 때부터 불안한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오해의 소지가 많고, 공감을 못 살 것 같은 그런 글들. 사람은 왜 글을 쓰는가. 공감을 받으려고 쓰는 것이 아닌가. 남한테 공감도 못 받고 욕 들을 소지가 있는 글을 왜 써서 발행했나. 하지만... 그렇다고 안 써? 그 사건은 내가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미는 사건인데. 내가 쓴 건 다 솔직한 감정들이다. 못 쓸 이유가 뭐 있는가.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
12. 남한테 공감받으려는 생각은 사람을 취약하게 만든다. 남이 공감해 줄 것을 바라고 글을 쓴다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 글은 쓸 가치가 있나 싶다.
13. 아직도 모르겠다. 맘에 안 드는 댓글이 달리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또 많이 방황하겠지. 댓글 유형별로 나만의 대응법칙이 있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