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미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신 분이라 BTS의 미국 열풍을 가장 먼저 예감하고 현지에서 그 동향을 관찰해온 분이다.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BTS의 이례적인 성공은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그들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BTS의 음악을 빼고는 그 어떤 것도 논할 수 없다. 사람들은 종종 화려한 기록과 성과에만 집중하며 BTS가 그 무엇도 아닌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 듯하다. 이 책은 2013년 BTS의 데뷔부터 2018년까지 16장의 앨범을 곡 단위로 리뷰하며 9편의 칼럼과 7편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언급된 모든 노래와 가사 그리고 이들의 행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을 통해 BTS의 본질과 성공 비결을 제시하고자 한다.
실물 책은 굿즈로 소장해도 될 만큼 재질이 좋고 폰트와 색감이 너무 예쁘다 ^^!! 아래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내가 이해한 대로 짧게 재구성해보았다.
1. 곡 작업
작곡가 브라더수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BTS와의 협업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I NEED U>라는 곡 작업에 참여할 때 방시혁 프로듀서는 곡이 담았으면 하는 감성을 설명해주면서 음악과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제시해주고 그 작품들 사이에 공유되고 관통되는 분위기를 녹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통 일반적인 작업 의뢰에는 음악 장르와 레퍼런스가 먼저 제시되기 마련인데, 빅히트의 이와 같은 방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또 프로듀서 피독이 작업한 트랙 위에 자신과 방시혁 대표 그리고 BTS 멤버들이 작업한 멜로디들이 골고루 재조합되거나 원래와 다른 위치에 배치되면서 새로운 멜로디로 태어나는 과정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바로 이런 남다른 작업방식 때문에 BTS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음악 스타일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BTS의 음악은 굉장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면모가 있다. 아름다우면서 왠지 불안하고, 비극이면서 또 비참하지는 않은 뭔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묘한 특징이 있는 듯하다.
2. 랩
BTS 데뷔 초반 음악을 들어보면 랩이 많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그들은 힙합 아이돌로 데뷔한 만큼 랩을 음악의 장식이 아닌 메인으로 내세웠다. 랩을 하는 멤버도 3명으로서 타 아이돌 그룹보다 많은 편이다. 이들은 애송이 연습생 시절부터 비트를 찍고 랩 가사를 썼다. 프로듀서 방시혁과 피독은 이들의 자연스러운 개성을 굳이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이 갖지 못한 전문성만 보완하는 방향으로 지원했다. 책에는 곡마다 작곡 작사진과 프로듀서가 명시되어 있는데, 이 크레딧을 보면 BTS 멤버들이 그들의 음악에 얼마나 많이 참여해왔는지 알 수 있다.
<We On>
랩 파트에서 RM과 슈가의 톤이 대조를 이루는데 이 같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BTS 음악의 복합적인 매력을 만들어낸다.
<길>
RM, 제이홉, 슈가는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까지의 여정을 멤버 각자의 시선에서 풀어낸다. 이처럼 방탄소년단이 가진 진솔한 면모는 누군가가 억지로 꾸민 듯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3. 보컬
저자는 BTS의 보컬에 대해 ‘기교가 있으면서도 진부한 바이브는 적은 세련된 창법’이라고 평가한다. 이것이 BTS만의 매력이다. 극히 찬성함^^!!
4. 숨겨진 명곡
<Tomorrow>
슈가가 데뷔 전에 작곡한 곡을 다시 작업해 내놓은 곡으로 좌절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서정성과 비극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대중은 잘 모르지만 팬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명곡이다.
<Outro: Tear>
이별의 마지막에 품은 절망감을 절절하게 그려낸 노랫말은 아이돌 음악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다. 과소평가된 걸작이다.
5. 슈가 + 슬로 래빗
슈가와 프로듀서 슬로 래빗이 만났을 때 나오는 특유의 음악적인 시너지가 있다. 둘이 같이 작업한 곡들로는 <Intro: 화양연화>, <Never Mind>, <고엽>, <Seesaw> 그리고 수란의 <오늘 취하면>이 있다.
6. 출신과 사투리
<팔도강산>
슈가와 제이홉은 각각 대구와 호남 사투리로 랩을 한다. 세련미를 내세우고 지방색을 감추는 것이 일반적인 아이돌 음악에서 사투리 랩이라니, 바로 이것이 다른 아이돌과 구별 짓게 만드는 그들만의 색깔이자 독특함이다.
<Ma City>
힙합에서는 출신에 대한 솔직함이 음악적 진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곡은 자신을 낳고 키워준 도시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으며 광주, 대구, 부산.. 멤버들의 고향이 가사에 등장한다.
1. 현지화 전략이 아닌 내러티브와 진정성
케이팝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두 가지 전략이 있었다. 보아처럼 직접 일본에서 활동하는 현지화 전략과 해외교포 혹은 외국인 멤버를 영입하는 전략이다. 대형 기획사든 중소든 아이돌그룹에는 각 팀마다 한두 명의 외국인 멤버가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들은 영어나 일어, 중국어로 된 랩이나 인터뷰를 담당하며 그 나라에서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의 트와이스, 태국에서 갓세븐과 블랙핑크의 폭발적인 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 국적성, 개인성을 최소화하고 꾸준하고 고른 품질의 음악과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는 케이팝 특유의 ‘연습생 시스템’이 더해져 케이팝은 사실 미국과 서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석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원래 모델인 미국 팝과 경쟁할 때 그 장점을 잃게 된다. 미국 언론과 대중은 케이팝이 개성이 없고 비슷비슷한 음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으며 케이팝 특유의 인위적인 스타 만들기 시스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겉으로는 케이팝의 화려함에 경탄의 눈길과 찬사를 보내는 것 같지만, 이는 진기한 볼거리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BTS는 미국 교포나 외국인 멤버가 없다. 아예 처음부터 미국 진출 계획이 없었던 거다. 역설적으로 이 전략의 부재가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BTS 멤버들은 커리어 초반부터 뮤지션의 자세로 음악 작업에 참여해옴으로써 음악의 메시지와 진정성에 유독 집착하는 미국 팬층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BTS가 구축한 세계관은 타 아이돌의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세계관과는 다르다. 그들의 음악에 담긴 메시지의 보편성과 건강함은 트레이닝과 현지화 전략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BTS 멤버들이 SNS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그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다. 이렇게 말과 행동 그리고 음악이 일체감을 이룸으로써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BTS의 성공으로 인해 요즘은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BTS의 전략을 조금씩 따라 하고 있다. 점점 많은 아이돌 멤버들이 음악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BTS와 정 반대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SM 엔터테인먼트의 NCT도 앨범에 멤버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담기 시작했다.
2. 케이팝인가 BTS 팝인가?
이것은 케이팝 팬들과 아미 사이에 지속되어온 논쟁이다. 저자는 BTS의 성공이 여러모로 지극히 예외적이며 BTS 현상에는 인기의 강도와 본질에 있어 여타의 아이돌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존의 한류에 관심 없던 사람조차 BTS 팬으로 대거 흡수했다는 점에서 케이팝의 인기와도 분리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2016년 미국에서 열리는 한류축제 KCON은 유명 케이팝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는 거의 BTS의 단독 콘서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글 트렌드 같은 빅데이터를 보더라도 2016년부터 BTS검색량은 케이팝 키워드의 검색량을 앞서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많게는 6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이기도 했다.
많은 해외 팬들에게 BTS는 케이팝이라는 장르로 의식적으로 소비되기보다는 아리아나 그란데나 저스틴 비버, 원 디렉션 등과 나란히 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팝스타라고 할 수 있다.
3. BTS 현상의 본질
미국 언론은 BTS 열풍의 본질을 설명할 모델을 찾으려 부단히 애써왔다. 기존에 알고 있던 한류 케이팝이라는 틀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 그리하여 최종 내린 결론이 ‘지구 상 최고의 보이밴드’였다.
저자는 책에서 보이밴드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지구 상 최고의 보이밴드’는 BTS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수식이라 보기 어렵다며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아이돌 보이밴드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팝 그룹의 등장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의 음악 리뷰를 통해 알다시피 BTS의 가장 큰 매력은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에 있으며,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데뷔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그 모든 ‘과정’에 녹아 있다. 따라서 BTS 현상의 본질은 결국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내는 ‘보편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의 음악은 21세기 케이팝을 통틀어 가장 보편적인 힘을 가졌다. 메시지는 누굴 가르친다는 느낌 없이 설득적이며, 자신 안의 어둠과 우울을 인정하면서도 패배주의로 나아가지 않는다. 음악과 퍼포먼스가 가진 보편적인 매력은 청년과 기성세대를 화해시키는 힘이 있고, 다른 문화와 인종을 화해시킬 저력이 있으며, 서구의 미학과 한국적 가치를 그리고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화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세계적인 현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걸쳐 있는 아미다. 아미의 자발성과 열정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 거대한 물결이 만들어지고 있다. BTS 현상은 아티스트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BTS와 아미가 함께 만든 흐름인 것이다. 음악의 보편성과 팬과의 긴밀한 관계성이 만든 시너지, 이것이 바로 BTS 현상의 견고한 본질이다.
# 위 내용은 책 속의 문장을 옮겨 적은 부분이 주를 이루며, 필요에 따라 조금씩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