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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Oct 27. 2020

성공을 향한 끈질긴 노력

MBTI, 아마추어, 칼 융, 성덕, 영향력

<성격을 팝니다>는 MBTI의 탄생과 흥행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담아낸 책이다. 요점은 간단하다. 첫째, MBTI를 만든 사람은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였다. 둘째, MBTI는 과학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으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을까?



어머니 캐서린의 이야기 -

성공한 덕후가 되고 싶었다


1875년생 캐서린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다. 여러 학년을 뛰어넘어 14세에 오빠들과 나란히 대학에 진입했고 16세에는 미시간 농업대학 수석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킹카를 만나 결혼에 거뜬 성공! 졸업 후 남편은 계속 공부하고 캐서린은 그 시대 여성들이 모두 그랬듯이 평범한 주부가 되고 만다. 그녀는 육아를 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기록하는 일기를 쓰며 차차 성격에 관한 실험을 시작한다. 캐서린은 성격은 태어나는 순간 고정되며 사람은 각자 성격에 맞게 하나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 이사벨이 자라서 그녀 곁을 떠나고, 그녀는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자그마한 발명품도 만들어보고 시나리오 작성법도 배워보고 짧은 극본도 써봤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된 건 없었다. 캐서린은 점차 우울해졌다. 그러다 48세가 되던 해, 그녀는 신문에서 융의 이론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덕통 사고’였다.


융에게 흠뻑 빠진 그녀는 그 후로 5년 동안 융의 책을 단어 하나하나 분석하고 노트에 옮겨 적으며 지냈다. 융에게 편지도 보내고 노래를 개사해서 융을 찬미하는 노래로 만들기도 하고 밤을 지새우며 융과 분석심리학에 관해 은밀하고 에로틱한 소설을 썼다. 이 ‘팬픽’에 가까운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답장을 보낸 데는 딱 한 군데, 그것도 “동성애를 암시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짓이며 융의 심리학 얘기는 따분한 곁가지였을 뿐”이라는 혹평이었다.


딸과 남편을 관찰하고 친구와 이웃들의 꿈을 분석하며 연구를 해온 캐서린은 사람의 성격은 과학적 연구대상이라기보다 영적인 연구대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외향형, 내향형, 사고형, 감정형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설문지를 개발하고 성격 유형 도표와 색인카드를  이용해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61세에 융을 한번 잠깐 만나는 데 성공한다.




딸 이사벨의 이야기 -
아마추어의 끈기, 성공을 향한 집착


1897년생 이사벨은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하에 명민하고 공부 잘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 후 엄마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평범한 주부가 된다.


겉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모습이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내조만 하는 아내가 아닌,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뚜렷이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사벨은 추리소설 공모전에 신청을 했고 1등을 수상하고 상금도 받는다. 대부분 원고는 집 안 청소를 끝내고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작성한 것이다. 친구들에게서 ‘저명한 여성 작가’ , ‘제법 유명인사’라고 불릴 때마다 이사벨은 흐뭇했다. 그녀는 후속작을 쓰면서 희곡도 쓰고 남편인 치프와  함께 직접 연출까지 하였다. 새로운 페르소나를 세상에 내놓고, 페르소나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사벨의 연극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 개막식에 오르게 된다. 너무 떨린 그녀는 그날 직접 연기하지 않고 대역을 찾았다. 이사벨은 무대 측면에서 그녀의 대역이 젊음과 미모를 뽐내며 남편 치프 앞에서 대사를 읊조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역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이사벨과 대조적이었다. 그녀는 젊고, 미혼이고, 외향적이고, 앞날이 창창하고 전도유망했다. 이사벨은 성격 유형에 관한 어머니의 글들이 떠올랐다. 바로 이날 이사벨은 깨달음을 얻었고, 그녀가 처음 선택했던 소명 즉 좋은 아내가 되는 일에 다시 전념하기로 한다. (이해 안 되면서 이해될듯한 느낌)


굳이 ‘남이 잘하는 일’과 비교를 해서 자존감 깎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침 이사벨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작가로서의 슬럼프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또 체면이 서는 일로 인정을 받고 싶었을 거다. 훌륭한 아내의 역할, 그리고 MBTI라는 창작물의 성공!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이사벨은 어머니의 자료들을 이어받아 성격 검사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때 시중에는 이미 수백 가지 성격 검사 종류가 있었다. 그녀는 난해한 융의 이론을 간소화하고 모든 성격에서 장점을 찾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시도했다.


그녀의 첫 고객은 무려 미국 전략정보국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스파이들이 그들의 성격 유형에 딱 맞는 임무를 부여받아야 했다. 자신의 창작물이 인류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길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얼마나 흥분되었을까.


1950년대에 이사벨은 부친의 도움을 받아 45개 대학에서 5천여 명의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시행하였다. 그녀는 개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인사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직군 전체를 대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된다. 평가대상이 개인에서 기관으로 바뀌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의 상품이 공신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후 그녀는 교육평가원에서 자식뻘 되는 직원들과 싱갱이질을 하며(정확히는 업신여김을 당하며) 과학적 검증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통계학자, 심리측정가, 심리학자로 구성된 팀은 아마추어 여자가 주방 식탁에서 수행한 실험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융의 이론과 잘 맞아떨어지지도 않았고 통계학적으로 그녀가 주장했던 쌍봉분포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성공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혼자서라도 연구를 계속했고 MBTI를 업그레이드시켰다. 1975년, 고령에 접어든 이사벨은 한 출판사에다 MBTI 판권을 넘긴다.


출판사에서는 MBTI가 타당성을 검증받지 못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채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이용자가 스스로 채점하고 해석함으로써  윤리적 문제를 피해 갈 수 있게 되자 MBTI는 서서히 인기를 얻었고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1980-1990년대에 대중적 인기를 얻은 MBTI는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영향력에 대한 갈망

캐서린과 이사벨 두 모녀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캐서린은 육아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이사벨은 ‘정치적 상황을 자기 개인의 일처럼 민감하게 느끼는 독특한 정서’로 표출되었다.


두 모녀가 100년쯤 늦게 태어났더라면, 하버드 로스쿨을 다니고 판사가 되어 커리어를 쌓다가 정계로 진출할 타입이다. 나름 모녀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타고 트위터에서 왕성히 활동을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을까? 너무 일찍 태어난 게 안타깝다.


MBTI 성격 검사에 대한 견해

‘자기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는 괜찮은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리 기업에 의해 MBTI가 남용, 오용되는 게 우려스럽다. 건강식품을 의약품처럼 포장해서 파는 건 위험하니까. 단순 재미로 성격 검사를 해보는 건 좋지만 진로 선택이나 입사 면접에 사용되는 건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작자가 이 책을 쓰면서 신변 위협까지 느꼈다고 하니, MBTI 배후에 얼마나 큰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뉴욕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2018년 최고의 책’ 답게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국어 번역도 좋았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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