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아교세포 이야기 (하)
현대인들은 우울증, 불안장애, 알츠하이머 같은 뇌 질환이 급증하는 추세다. 왜 현대에 와서 급증할까?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무엇이 면역계와 미세아교세포를 미쳐 날뛰게 한단 말인가? 지금은 예전과 뭐가 달라졌을까?
인공유해물질, 가공식품
인류는 진화해오면서 대자연의 미생물들과 친해졌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익숙한 적’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고 있다.
그러다가 근 100년 사이에 인류의 환경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사람은 예전처럼 많은 미생물과 접촉할 필요가 없고 치명적인 병원균으로부터 안전하게 되었지만, 이제 그 자리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물질들로 차 넘친다.
유해물질 8만여 종은 인체 면역계에 안전한 지 검증이 안된 상태지만 우리가 매일 접촉하는 생필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공식품, 그 속에 들어있는 보존제와 첨가제가 우리의 면역을 얼마나 교란시킬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매일 가공식품을 먹으며 산다.
우리 면역계는 급속하게 생산되어 나오는 ‘인공물질’에 익숙지 않다. 적응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예전에 자연의 미생물들과 싸울 때는 그냥 몽둥이 들고 몸싸움을 벌였는데, 지금은 폭탄이 날아오고 탱크가 밀고 다니는 양상인 것! 난 몽둥이 사용법밖에 모르는데 탱크가 들이닥치면.. 멘붕에 빠지는 거다.
면역계는 허둥지둥하다 미쳐버리고 흥분한 미세아교세포가 판단력을 잃고 뇌 속에서 뻘짓을 한다. (유해물질을 내뿜고 시냅스를 공격하여 없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우리 조상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대략 두 가지다.
첫 번째, 길을 가다가 늑대를 만났다. 정신 바짝 차리고 위험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온몸의 혈관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솟구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면역계를 깨워 감염에 대비하게 만든다. 늑대와 싸우다가 상처가 날 위험이 있으니까.
두 번째, 사회적 불화. 이웃마을과 관계가 안 좋으면 언제든지 유혈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불화는 곧 몸에 상처가 날 수 있음을 뜻하기에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을 깨우게 된다. 같은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조상들은 예전에 무리에서 쫓겨나면 진짜로 죽을게 뻔했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렇게 옛날에는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계를 깨우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체내 염증이 커지는 것은 진화과정에서 습득한 본능적 반응이다.
근데 현대인은 늑대와 싸울 일이 없다. 조직에서 환영을 못 받는다 해도 죽을 일 까지는 없다.
생명위협도 없는데 우리는 이런저런 일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계를 일깨워 염증을 유발한다. (현대인 대다수는 스트레스 수치가 높고 따라서 염증 유발 물질인 사이토카인의 수치도 늘 높아져있다고 한다.)
이것을 '진화의 부조화'라고 부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거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계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일한다. 그러다 나중에 한방에 터져버리는 것!
qEEG 뉴로피드백
뉴로피드백은 환자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동안 두피에 센서를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뇌스캔을 하며 피드백을 주는 치료법이다. 예를 들면 환자에게 말이 달리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환자의 주의력이 분산될 때마다 말 달리는 속도를 갑자기 느려지게 하는 것. 이렇게 집중력이 흩어지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의사가 바로 피드백을 주어 교정하도록 한다. 반대로 지시를 잘 따라서 뇌파 패턴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을 보여 주거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뇌에 보상을 제공한다.
그니까 쉽게 이해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자주 하도록 유도하는 뇌 훈련 방식인 것 같다.
뇌의 건강이 '화학보다는 신경회로'의 문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이해하면서, 뉴로피드백은 빠른 속도로 주류 의학에 편입되는 분위기다.
흥미로운 건,
뉴로피드백으로 특히 이익을 보는 사람은 만성통증 환자들이라고 한다.
사실 통증이 장기화되면 뇌신경회로의 구조 자체가 변화해 우리 몸은 통각에 훨씬 예민한 체질로 바뀐다. 또한 그 과정에서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억제되어 사람이 쾌락과 즐거움에 둔감해지게 된다. (만성통증 환자들 가운데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가 왜 그렇게 많은지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자살하기도 쉽다는 통계까지 있다.)
뉴로피드백은 편도체에게 지금 안전한 상황임을 인식시키고 뇌에게 조용히 쉬는 방법을 가르쳐 통각회로의 악순환을 끊어줄 수 있다.
경두개 자기자극법 (TMS)
환자의 두피에 센서를 붙이고 순간적인 자기 자극을 주어 신경회로의 활동성을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너무 왕성하거나 너무 위축된 영역을 정상으로 바로 잡아준다고 이해하며 되겠다. 예를 들면, 미세아교세포는 활동이 적은 시냅스를 우선적으로 퇴출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경두개 자극요법은 이런 뉴런을 자극해 다시 활성화시켜서 시냅스들이 미세아교세포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해준다.
(다만 어떤 환자들은 이 치료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임상연구 자료가 있고 또 양극성 환자들은 이 치료를 받으면 병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감마광 점멸 요법
한 연구에서 실험쥐에게 7일 동안 매일 한 시간씩 감마파를 조사했더니 알츠하이머의 특징인 아밀로이드판이 확연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미세아교세포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작게 쪼개서 부스러기가 뇌수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기 쉽도록 도와주는 듯하다.
지금 연구자들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속에서 첫 시냅스 가지치기의 순간을 감지하는 생체지표물질을 찾고 있다. 성공한다면 우리는 훨씬 빨리 병을 진단하고 예방 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 초기 환자는 감마광 점멸 치료와 함께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도 병행하며 생활습관에 신경을 쓸 것이다. 활동이 부족한 시냅스가 먼저 가지치기당하기 쉽다는 것을 알면 환자는 외국어를 배운다던가 뜨개질을 한다던가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뇌를 자주 사용하도록 자신의 생활패턴을 바꿀 수도 있다.
머리 외상 조치
머리가 강한 충격을 받으면 뇌가 염증을 일으켜 뇌세포를 죽이고 뇌조직을 파괴한다. 이 과정이 수개월 내지 수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잠복기가 꽤나 길다. 그러니 아주 오래전 머리를 다쳤는데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수년 후 우울증, 기억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
이 책의 저자도 25년 전과 16년 전 차사고에서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사고가 난 이듬해쯤 길랑바레 증후군을 얻었다. 머리 부상과 이 병이 연결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충분히 의심해볼 만은 하다.
그러니 머리에 외상을 입었다면 바로 조치 들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딱히 적합한 치료법이 없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치료법은 다 미세아교세포를 겨냥하는데 초점을 맞출 거라는 것.
책에서는 진입장벽이 낮은 세 가지 기법의 조합을 소개하는데 바로 '유산소 운동 + 간헐적 단식 + 컴퓨터 뇌 훈련법'이다. 운동을 하면 미세아교세포의 과잉 활동성을 억제하는 물질의 양이 증가한다고 한다. (운동이 좋은 건 다 알지, 그러면서도 운동 안 하는 게 사람이지) 이제 단식에 대해서 알아보자.
단식 모방 식이요법(FMD)
이것은 안전하게 굶어서 몸을 속이는 방법이다. 몸의 연료가 바닥났다고 생각하면 면역계도 같이 줄어든다. 면역계가 점차 흥분을 가라앉혀 미세아교세포가 진정되면 시냅스 가지치기를 멈추고 다시 본연의 청소부 역할로 돌아간다. 신경을 돌보고 치유를 해주는 천사가 되는 것이다. 컴퓨터가 버벅댈 때 재부팅하는 것처럼, 단식은 우리 몸과 마음에서 다시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미국에서는 FMD식단이 이미 상품화되어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단식이 알츠하이머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지 이제 곧 임상연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좋은 소식 기다려보자.
미세아교세포를 겨냥한 신약
우울증과 우울증 치료제에 관한 논문들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우울증을 방치하면 뇌의 신경회로가 점점 더 망가진다.
2. 우울증 약물치료가 아직은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미세아교세포의 손상을 늦추는 데 어느 정도 힘을 보탠다.
현존 우울증 약은 주로 환자의 뇌에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개발되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이다. 하지만 화학 불균형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다. 미세아교세포의 재발견은 우리에게 우울증을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수많은 과학자들이 기분장애와 인지장애를 신경전달물질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계와 미세아교세포의 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래에 나올 신약은 뇌 속의 미세아교세포를 겨냥하는데 초점을 둘 것이다. 미세아교세포의 활동성을 컨트롤하는 신약이 실제로 나온다면, 그때면 우울증 치료제 버전 2.0이라고 부를 것이다.
면역요법
이번에는 뇌를 겨냥하지 않고 몸의 염증에 치료를 집중하는 방법이다.
몸에 염증이 높을수록 우울증 치료제가 효과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 따라서 우울증 치료 시 염증 억제제 치료를 병행하면 더 좋은 효과를 거둘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우울증 치료 처방에 항생제를 더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조사 중인데, 몸과 뇌의 면역계가 과잉 활성화된다면 그것은 어딘가에 숨은 감염이 있어서일 거라는 추측 때문이다.
환각제
<블루 드림스> 책 말미에 저자가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니던 스페셜 K, 바로 그 환각제다.
원래는 수술실에서 마취제로 쓰였고 고용량으로 투여하면 환자의 절반가량이 정신병 증상과 흡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근데 아주 낮은 용량으로 사용하면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약효가 엄청 빠른 케타민이 흥분한 미세아교세포를 억눌러 뇌 속에 염증 유발성 사이토카인이 퍼지지 않도록 막는 동안 신경재생과 시냅스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금 우울증 환자들 중에 어떤 약도 듣지 않는 환자가 1/3을 넘는다고 한다. 젊어서 우울증, 불안장애, 학습장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나이 들어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될 확률이 135%나 높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 미래에 우울증 신약이 개발된다면 하루빨리 임상현장에 보급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물론 이 모든 치료법이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어떤 치료법이 세대교체될 때마다 적잖은 환자들은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보통 이런 부작용은 신약 출시 후 수십 년이 지나야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정리하면:
이제 우울증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병을 자가면역질환으로 봐야 하나? 아직은 어색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고 '나도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은 정말 나도 욕심내고 싶다. 이런 책이 나의 작업물이라고 한다면 엄청 뿌듯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