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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y 19. 2021

몸이 아픈데 왜 머리가 우울해져?

미세아교세포 이야기 (상)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자의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텔링 기술에 매료되어 도무지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었으니까. 마치 “기자란 이런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필력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고 시전 하는 것 같았다. 아래, 책 제목 그대로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픈 자의 의심


몸이 뇌를 공격하는 건 아닌지?


저자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길랑바레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자가면역질환은 인체에 침입하는 미생물, 병원균들과 맞서 싸워야 할 면역계가 착각하여 되려 자기 몸의 장기 조직이나 관절, 신경을 공격하여 생기는 병이다.


그녀는 몸이 마비되어 한동안 걸을 수가 없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기억력 감퇴와 우울증이라는 정신적 고통도 같이 겪게 된다. 가족들 이름조차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우울한 감정은 폭풍처럼 몰아쳤다.


의사는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 엄청난 사건이고 그로 인해 정신적 충격이 큰 게 당연하다고 위로해주었다.


보통사람은 여기서 그냥 넘어갈 것이다. 몸이 아파서 생활이 불편하니까 우울한 거겠지..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학 전문 기자다. 마음속 의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픈 건데, 왜 정신도 같이 아파 날까?


더군다나 그녀에게는 크론병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역시 우울증 치료제와 주의력 결핍 장애를 완화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혹시 몸의 염증이 뇌의 변화를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그녀는 관련 논문을 열심히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뇌는 면역장기가 아니다?


의학계에는 뇌는 면역학적으로 특별한 장기라는 정설이 있다. 백혈구는 뇌에 출입할 수 없고 뇌는 몸통 면역계의 지배를 안 받는다. 이렇게 ‘뇌 따로 몸 따로’라고 100년 넘게 믿었고 모든 의과대학에서 그렇게 가르쳤다.


뇌가 면역계의 지배를 안 받는다면, 그럼 왜 수많은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이 인지기능 저하와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걸까. 뇌 따로 몸 따로라면, 몸이 아플 때 뇌가 따라서 아프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사실 몸의 면역계와 뇌가 연동되어있음을 암시하는 자료는 너무나 많다.


루푸스는 전신의 거의 모든 장기에 염증이 생기는 병인데, 이 환자 집단에서는 주의력 장애, 기분장애, 우울증, 범불안장애, 학습장애 증상을 보고한 환자가 56%나 됐으며 조기 치매의 위험도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최근에 박테리아 감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 양극성 장애, 기억력 저하를 겪을 확률이 62% 더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제일 흥미로운 것은 골수와 조현병에 관련한 증례연구다. 한 백혈병 환자가 조현병이 있는 친 형제의 골수를 이식받았더니 불과 몇 주 만에 조현병이 발병했다는 것이다. (골수는 대부분의 면역세포가 태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또 다른 증례연구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때문에 건강한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았는데, 신기하게도 백혈병뿐만 아니라 조현병도 완치됐다고 한다.



이 모든 자료가 사실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몸과 뇌는 따로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동되었다고. 몸의 염증이 뇌에도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요구하는 증거의 기준은 너무 높았다. 모두 의심만 할 뿐이고 그렇다 할 명확한 설명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논문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2012년 의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역대급 논문이 발표된다.





머릿속의 백혈구 - 미세아교세포


백혈구는 우리 몸을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보호하는 최전방 공격수다. 세포가 죽거나 병원균 또는 이물질이 몸속에 침입하면 이것이 제거대상임을 표시하기 위해 보체 분자가 재빨리 달라붙는다. 그러면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가 이것을 인식하고 몰려가 제거대상을 먹어치워 없앤다. (이때 대식세포는 염증성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때로 이 물질이 정도가 지나쳐 인체의 정상조직까지  망가뜨린다.)


뇌 속에서 시냅스가 사라지다


신경생물학자 배러스와 스티븐스는 실험동물의 뇌 속 시냅스에 '보체'라는 면역계 분자가 붙으면 그 스냅스가 얼마 뒤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2007년 논문)


뇌는 면역장기가 아니고 뇌 속에 대식세포처럼 침입자를 먹어치우는 면역세포가 없는데, 왜 보체가 붙은 시냅스는 사라질까?  누가 시냅스를 먹어치우는 걸까?


그들은 ‘미세아교세포’라는 작은 뇌세포를 의심했고,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를 거쳐 이 작은 뇌세포가 바로 범인이란 것을 확인했다. 연구원 셰이퍼가 현미경으로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를 먹어치우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2012년 이 논문의 발표는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리하면 첫째, 보체가 미세아교세포에게 ‘날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둘째, 미세아교세포가 발달 중인 시냅스를 가지치기해 정리한다는 것이다.


뇌에는 백혈구가 없다고 하였는데, 알고 보니 미세아교세포가 머릿속에서 백혈구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천사인가 암살자인가


미세아교세포(Microglia)는 체구가 아주 작지만 수적으로는 많아서 전체 뇌세포의 1/10을 차지한다. 이 작은 뇌세포는 원래 뇌 속에서 청소부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뉴런이 죽으면 찌꺼기를 치워주는 말단 청소부. 평소에는 신경보호물질을 분비해 다친 뉴런의 회복을 돕는 역할도 하며 수호천사처럼 뇌를 돌봐준다.


근데 이 작은 세포들이 어떤 자극을 받아 과민해지면 갑자기 성격이 돌변한다. 청소는 뒷전으로 하고 오히려 염증 유발성 물질을 내뿜으며 뉴런을 파괴하고 뉴런과 뉴런 사이 시냅스를 마구 먹어치운다.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 사이의 작은 틈새 공간이다. 자궁의 태아가 성장할 때 뇌에서는 필요 이상의 시냅스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복잡한 정신 작업을 뒷바라지하기에 딱 좋은 시냅스 밀도를 갖추려면 쓸데없이 남아도는 시냅스들을 가지치기할 필요가 있다.


근데 만약에 성인이 되어서도 가지치기가 마구 진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노후하고 불필요한 신경회로만 쳐내야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정상적인 사고에 꼭 필요한 시냅스들을 마구 쳐내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뇌의 특정 시냅스 지점에서 신호전달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영역이 관여하는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 우울하고 감정조절이 안 되는 거, 기억력과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거.. 한마디로 뇌는 우리 몸에서 최고로 정교한 기관이며, 아주 사소한 회로 연결 결함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시냅스의 소실과 정신질환


미세아교세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연구도 속속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뇌 속의 작은 면역세포가 사실 다양한 정신질환의 배후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온다.


2016년, 두 개의 연구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실험동물의 뇌에는 보체가 달라붙은 시냅스가 유난히 많았다는 거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인 뇌에 아밀로이드판이 쌓이기 훨씬 전부터 시냅스가 소실된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두 번째는 보체가 많이 존재할수록 가지치기 오류가 많아지고 조현병 위험도가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다.


2017년, 루푸스 환자들을 조사하였더니 미세아교세포가 뇌 속에서 시냅스 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해 기분장애 증상으로 표출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다. 그동안 왜 루푸스 환자들이 우울증, 학습장애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겪게 되었는지 이제야 설명된다. 바로 미세아교세포가 암살자였던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혈액검사를 하면 염증 유발성 사이토카인의 수치가 매우 높게 나오곤 한다. 2017년에는 신체의 염증 지표물질 수치로 그 사람이 자살을 시도할지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섬뜩한 연구결과까지 나왔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들이 우울 증상을 겪을 때 미세아교세포의 활동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져있다는 논문이 최근에 발표됐다.


그 외 다른 정신질환에서도 미세아교세포가 크게 관여한다는 자료가 많다.


다발경화증 환자는 인지력과 기억력 감퇴를 자주 겪는데, 이런 환자의 뇌를 검사하면 미세아교세포가 회색질에 몰려가 신경 철거를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리고 자폐증 환자의 뇌를 찍은 PET 스캔자료를 보면 활성화된 미세아교세포가 소뇌에서 특히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파킨슨병에 관련해서도 미세아교세포가 무서운 속도로 시냅스를 먹어치운다는 증거 자료가 있다.


이렇듯 중대한 논문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이제 미세아교세포가 정신질환 증상의 배후였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신경정신과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뇌 안의 면역세포 탓일 거라고 상상도 못 한다. 그런 면역세포가 존재하는 지조차 모르니까.


이것이 저자가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환자들에게 실험실에서 나오는 최신 연구결과를 빠르게 알려주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마지막 퍼즐


이제 우리는 뇌는 면역장기이며 미세아교세포가 바로 뇌 건강을 좌지우지하는 면역 세포라는 것을 알았다.


몸이 아프면 뇌도 같이 아프다.

몸에 백혈구가 있다면 뇌에는 미세아교세포가 있다.


아직 퍼즐 하나가 빠져있다는 것을 발견했는가?


백혈구와 미세아교세포는 도대체 무엇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일까? 이 통로를 발견하는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하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인체조직이 있다니


과학자 키프니스는 대학원생일 때 실험쥐의 몸속 T세포를 모두 제거하는 실험을 하였다. 면역세포를 제거했는데 놀랍게도 쥐들은 뇌 기능까지 달라졌다. 갑자기 아무것도 더 이상 배우지 못했던 것. 그러다 쥐에게 T세포를 다시 주입했더니 학습능력을 회복하였다.


그때만 해도 동료들과 교수님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시큰둥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미세아교세포가 실은 면역 세포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또 무슨 동물 연구에서 뇌에 T세포를 주입했는데 어찌어찌하여 한참을 내려와 턱 밑의 림프절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몸의 면역계와 뇌의 면역계 사이에는 길이 없는데, 뇌로 들어간 T세포가 어떻게 몸통에서 나온단 말인가? 그는 바로 연구에 착수했다.


키프니스 연구팀은 뇌수막이라는 공간을 주목했다. 그러다 2015년 실험쥐의 뇌수막 공간 안에 림프관 구조가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림프관은 백혈구들을 감염 부위에 운반하는 군용 도로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2016년 키프니스 팀은 사람의 뇌에도 림프관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수백 년 동안 의대 교과는 뇌에 림프관이 없다고 가르쳐왔다. 그리고 인체해부학은 20세기 중반 무렵 이미 완성됐다고 알고 있다. 근데 아직도 의학이 발견하지 못한 구조가 더 있다고 하니, 학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지금 학계는 몸의 면역계와 미세아교세포가 양방향으로 소통을 하고 있으며 이는 뇌수막 림프관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라고 본다. 정확히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몸과 뇌의 면역계가 서로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몸의 면역계가 정신을 망가뜨리고 반대로 뇌의 면역계가 몸의 병을 볼러올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차라리 소통하지 말지 그래... )


아무튼 이렇게 해서 드디어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정리하면:


몸에 이상이 생기면 신체 면역계가 일을 시작하고 백혈구가 뇌수막 림프관을 통해 미세아교세포에게 신호를 보낸다.


“여기 아래 지금 난리가 났어,

위에 너네도 대비하고 있어!"


그러면 미세아교세포도 경계상태에 돌입하는데, 문제는 때론 너무 과격해져 엉뚱한 짓을 벌린다는 것. 뇌에서 염증을 일으키며 시냅스를 앞뒤 안 가리고 마구 쳐낸다. 그리고 이것이 최종 결과로 정신질환, 발달장애, 인지장애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애초에 면역계와

미세아교세포들을 흥분시켜

날뛰게 하는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 방아쇠를 당긴단 말인가?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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