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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Sep 26. 2021

팽창할 수 없을 때의 미국

<신화의 종말> 리뷰

이 책은 무려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미친 듯이 기대하며 읽었다. 여기서 신화는 ‘변경의 신화’ 즉 무한한 팽창이 갖다 주는 번영을 말한다.  


미국은 맨 처음 독립한 13개 주에서 시작해 부단히 땅을 뺏고 사들이며 영토를 확장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50개 주를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 특유의 문제 해결 방식이 생겨났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싸우지 말고
파이를 키워라


끝없는 팽창은 끝없는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면 내부의 모든 문제를 잠재울 수 있었다. 팽창을 만능키로 삼은 미국은 세계로 진출하여 군사적•경제적 변경을 확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알았을까. 나의 팽창은 곧 다른 이의 아픔이자 슬픔이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것을. 미국의 확장은 수많은 국가에 전쟁의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지독한 저항과 복수심을 불러일으켰다.


외부 확장에 문제가 생기자 내부의 문제와 갈등도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미국 사회의 경제 불평등, 인종 차별, 극단주의, 범죄와 폭력은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미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미국은 어떤 모순과 딜레마에 빠졌는지 한층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미국의 역사를 내가 이해한 대로 최대한 명료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장문 주의)





미국인에게 자유란?


미국이 독립하기 전, 아메리카 땅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있었다. 영국은 참전한 백인 식민지인에게 땅을 수여한다는 약속과, 영국을 위해 싸우는 원주민에게 땅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즉 두 집단과 이중약속을 하였다. 많은 원주민 부족이 영국 편에 서서 싸웠고 백인만큼이나 영국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1763년, 영국 왕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식민지인 사이에 분할선을 정하고 백인들이 서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포고령을 내렸다.


이에 영국 식민지인들은 자주권을 침해당했다고 여겼다. 포고령에 대한 반감은 불처럼 번졌고, 그들은 불복했다. 그들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 원주민을 죽여 머리 가죽을 벗기고 시신을 훼손하는 야만행위들이 난무했다.


왕실과 식민지인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확실해졌고, 문제의 포고령은 미국의 독립선언과 함께  무효화되었다.


독립 후 미국 연방정부는 관리 차원에서 백인이 원주민의 구역에 들어갈 때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면 미국이라는 국가 안에 원주민 부족의 영토가 조각조각 퍼져있는 셈이다. 정착민들이 영국 왕실에 느꼈던 적대감을 이용해 탄생한 연방정부가 원주민 주권을 지켜주고 있다니, 정착민들의 적대감은 이제 미국의 연방정부를 향했다.


“우리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이것이 현실입니까, 꿈입니까?”


원주민 구역에 들어가기 전 여권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한 백인은 분노했다. 그에게 여권을 보여달라는 행위 자체가 자유에 대한 모독이었고 노예 취급과 다름없었다. 이 사람이 바로 훗날 미국 제7대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이다.


이토록 미국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아무도 막지 못할 만큼 뜨거웠다. 그 자유는 백인의 자유를 말한다. 그 자유에는 인간을 사고팔 자유, 땅을 빼앗을 자유, 서쪽으로 이주할 자유가 포함된다.


일부 주는 아예 금지령을 무시했다. 백인들은 부단히 서쪽으로 밀고 나가며 원주민 부족의 영토를 침범했다. 조지 워싱턴은 10년 전에 영국의 포고령에 분노하던 사람이었으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사람들이 법을 제멋대로 무시하고 정부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미국은 바로 이런 모순 위에 세워진 국가였다.


미국인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자유 신념으로 급속히 팽창했다. 원주민을 내쫓고 프랑스에서 땅을 사들이며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서쪽으로, 남쪽으로 끝없이 밀고 나가며 마침내 텍사스를 합병하고 멕시코와 전쟁도 치렀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엄청난 땅을 멕시코로부터 빼앗게 되고, 그 땅의 멕시코인들은 순식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급증한 유색인종 시민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차별의 대상이 되고 만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또 다른 전쟁으로 치유하다


1861-1865년까지의 남북전쟁은 북쪽의 승리로 끝났고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내전이 갖다 준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할까? 답은 그다음 전쟁이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은 남과 북이 다시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 이후로 미국 사회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첫 번째는, 남부연합이 다시 인정을 받으면서 남부연합기가 재등장했다는 것이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가 공공행사에 등장하는 것을 사람들이 점점 용인하였다.


베트남 전쟁 때, 한 기지에서는 매일 밤 술에 취해 남부연합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 반복되었고, 참다못한 흑인 병사가 보복으로 장교 회관에 폭탄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지구 수용소에는 잔인한 심문으로 악명 높은 ‘테스토스테론 갱’이 있었는데, 이 소대의 텐트에 남부연합기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흑인들도 입대하여 전장에 나갔다는 것이다. 전장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 (물론 전쟁은 흑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신분이동의 장이다)


스페인 전쟁 당시 일부 신문들은 처음에는 미국이 싸우는 상대가 유럽의 백인이고 미국이 ‘도와주는’ 저항군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한 신문은 ‘쿠바의 백인을 공격하기 위해 흑인병사를 쿠바로 보내면 안 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또 다른 신문은 스페인군 포로들을 보면서 ‘백인이 흑인 보초병의 감시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 사실’에 분개했다.


베트남 전쟁 시에는 흑인과 백인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황인종 외국인을 죽였다. 해외 전쟁은 미국의 인종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하였다.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한 아프리카 미국인을 위한 신문은 “흑인들은 미국에 계속 충성을 다해야 한다. 법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얻을 날을 코앞에 둔 지금은 그 점을 더욱 유념해야 한다”라고 대응했다.


(나는 전장에 나간 군대가 ‘죽은 베트남인의 귀를 잘라 트로피로 보관했다’는 글을 보고 미군의 변태적인 잔인함에 기겁했다.)



변경의 잔혹성과 딜레마


남쪽에 멕시코와 맞닿아 있는 긴 국경, 거기 변경지역의 폭력사태는 늘 심각했다. 국경이 생겨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멕시코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백인 자경단에게 린치를 당했다. 1922년 한 해에만 잔인하게 살해당한 멕시코인이 50명에서 60명이나 통계되었는데 이에 대해 <타임스>는 이유 없이 멕시코인을 죽이는 일은 일상이어서 큰 관심도 끌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땅이지만, 남쪽 멕시코에서는 국경을 넘어 미국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멕시코인들의 미국을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1920년부터 1928년 사이 합법으로 이민을 간 멕시코인만 50만 명이고 불법으로 국경을 건너간 사람도 그와 비슷한 규모로 추정된다. 백인들은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유색인종 탓으로 돌리며 멕시코계 사람들에 대한 폭력 수위를 높였다.


백인들의 불만은 컸지만, 기업과 자본가들에게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정부는 점점 더 많은 멕시코인들을 받아들였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쳐 날뛰고.. 모순의 연속이었다.


1942년 말부터 20년 동안 실행된 브라세로 프로그램은 500만 명에 달하는 멕시코 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여행 허가증을 받아 미국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밖에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멕시코 노동자들은 대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과로에 시달렸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1965년 의회에서는 이민국적법이 통과되었다.)


미국에서 멕시코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며 불법 이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멕시코에서는 사람들이 수백 명씩 모여 국경을 건너기 위해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주자 혐오로 똘똘 뭉친 백인들은 자체로 국경 감시대를 조직해서 변경지역을 순찰했다. 그들은 대부분 KKK단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분노를 품고 퇴역한 군인들이었다. 갈등은 캘리포니아에서 특히 심했다. 백인 자경단은 샌디에이고 뒷길에서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며 화물칸에서 멕시코인을 향해 총을 쐈다. 당시 땅에 얕게 묻힌 채 발견된 시체만 수십 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라의 정식 국경 경비대는 어땠을까? 이들도 주기적으로 폭행, 살인, 고문, 강간을 저질렀다. 어린아이부터 먼저 체포하고 아이를 미끼로 삼아 나머지 가족들이 자진해서 붙잡히게 했다. 붙잡힌 사람들은 구타를 당하고, 실오라기도 걸치지 못하고 극도로 추운 방에 갇히기도 했다. 멕시코로 추방할 때는 차에 수갑을 연결하고 국경을 따라 뛰게 했다고 한다.



멕시코 불법 이주자 문제도 심각한데, 거기다 이제 난민까지 밀려왔다. 1980년대 중반에는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같은 중앙아메리카에서 매년 수십만 명의 난민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오고 있었다.


그 전쟁은 다 레이건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베트남에서 패배한 후 과격해진 퇴역군인들은 대부분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가입했다. 레이건은 이런 과격한 세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대통령 선거에 성공하였고 취임 후에는 냉전을 확대해 과격 세력들이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였다. (반공운동은 공격성을 바깥으로 돌리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


미국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각 나라의 반군과 암살단을 지원해주었는데, 전쟁은 수백만 명의 난민을 낳았고 이 난민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향했다. 난민들이 국경에 접근하자 반공을 지지하던 그 백인들이 다시 분노했다. 이렇게 딜레마에 빠진 거다. 백악관은 계속 문제를 회피하고 보복심을 끝없이 국외의 다른 지역으로 돌려야만 했다. 어쨌든 당장은 그렇게 대외 정책으로 반발을 회피했다.



국경의 잔인함은 줄곧 이어졌다. 그렇게 2000년이 되자 더 많은 백인 우월주의자, 자국민 보호주의자들이 국경에 모여들었다. 수색대는 멕시코인들을 여럿을 줄로 묶어 짐승 떼처럼 몰고 국경 경비대에 넘겼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9/11이 터지고,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전쟁 병력을 동원하자 자경단 활동은 잠시 조용해지는 듯했다. 레이건이 중앙아메리카에 관심을 집중시켜 가장 공격적인 자경단을 해체했던 것처럼, 부시 대통령도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켜 국내의 심각한 양극화와 극단적인 인종주의를 잠시나마 억제할 수 있었다.



이제 한계가 오다


하지만 중동 점령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이라크인을 고문하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고, 사람들은 전쟁의 이유가 타당하지 않고 실행방법도 부도덕했음을 깨달았다. 중동에서의 상황이 악화되며 분노한 민심은 다시 국경으로 쏠렸다.


국경은 중동에서 돌아온 군인들뿐만 아니라 더 오래된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까지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1968년 베트남에서 돌아온 한 퇴역군인은 “베트남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퇴역군인들이 국경에 몰려들어 조직적인 ‘멕시코인 사냥’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화당은 인구 통계 변화를 보면서 라티노 유권자의 민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격이 되는 미등록 거주자에게 단 한번 시민권을 취득할 길을 열어주었다. 자경단은 길길이 뛰었고 단체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에 부시는 국경 경비를 한층 강화해 반란을 잠재우려 했다. 국경 경비원은 2배로 늘어나고 철조망 길이는 4배로 늘어났다. 8년 동안 부시가 추방한 사람만 200만 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추방해도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멕시코인과  중앙아메리카인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의 국경은 ‘절망적인 빈곤과 막대한 부를 가르는 경계선’이니까. 부시 대통령 임기 말에는 국경에 집결했던 분노한 민심이 전국으로 퍼졌고, 라티노를 겨냥한 폭력 사건이 급증하였다.


그리고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흑인 남성 대통령이 당선되며.. 백인들의 분노는 갈길을 잃었다.


중동에 발목을 잡히고 도덕적 권위가 추락한 미국은 더 이상 분노를 해외로 분출할 수 없었다. 오바마는 갇힌 신세가 되었다.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던 변경의 신화에 한계가 온 것이다.


밖으로 확장하지 못하면 싸움은 내부를 향한다. 미국은 양극화와 자국민 보호 극단주의를 억제할 힘을 잃은 듯하다. 총기 난사, 인종 차별주의 난동이 대폭 증가하며 문제는 심각해졌다. 오바마의 임기 말에는 예전보다 더 젊고, 더 분노에 찬 사람들이 국경에 몰려와 공격적인 자경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여러 차례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여기 와서 옛 전우들과 함께 있으니
치유가 되는 느낌이에요.”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로 뇌 손상과 스트레스 장애를 입은 퇴역 군인이 한 말이다.



갈길을 잃고 미국 안에서 휘몰아치던 격노는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가식을 버렸다.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현실을 마주했을 뿐이다. 이 책은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변경의 신화는 종말을 맞았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종말 이후를 살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원서는


2019년에 출판되었다. 그 뒤로 2년 동안 많은 일이 발생했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제치고 대통령이 되었고, 20년 만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였다. 현재 발생하는 일들을 저자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 책의 서평을 200편 넘게 읽어보았다. 많은 분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했다. ‘미국’하면 자유의 나라, 아메리칸 드림, 정의의 수호자, 세계 경찰과 같은 좋은 이미지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미국의 민낯을 보게 됐다, 이렇게 잔인할 줄이야.. 하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된 미국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책이 너무나 읽기 어렵다. 나처럼 미국 역사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너무나 불친절하다. 거기다 내가 발견한 오탈자만 해도 벌써 다섯 개.. 퓰리처상 수상작인만큼 한글 검수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훌륭한 책인 것만은 인정한다.


독서 팁: 첫 번째 읽을 때는 재미가 없는데 같은 내용을 두 번, 세 번 훑어보면 점점 재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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