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뿌리> 리뷰
이 책은 2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예술과 과학의 상호관계를 알아보며 인류가 보다 나은 길을 선택하고 꿈꾸기 위해 창의성과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작품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걸로 세 개만 골라보았다.
군인들을 산산조각 낸 것도 기술이었고, 남아있는 부분을 모아 붙인 것도 기술이었다.
전쟁에서 신체 손상을 입고 돌아온 세 병사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한 군인은 팔이 없고 다른 두 군인은 인공 턱을 하고 있다. 의자 밑으로는 보철로 된 다리와 의자 다리가 섞여 있다. 어느 것이 인간의 것이고, 어느 것이 생명이 없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그림을 매우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혐오감과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 그림은 전쟁이 인간성을 말살시킨다는 것과 동시에 기술의 파괴력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기계는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고 훼손했지만, 동시에 보철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다.
과학자 버날은 일찍이 전쟁에서의 부상 없이도 인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사람은 필요 없는 신체 부위를 제거할 수도 있고 인공 장치로 대체하여 신체 기능을 끌어올릴 거라고 예상했다. 결국에는 ‘통에 든 뇌’처럼 변할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의 상상력에 진심 놀랐다. 이때가 1929년인데, 이때부터 벌써 사이보그를 꿈꿨다니 대단하다.
솔직히 이런 사이보그 세상이 도래해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기 신체에 속하지 않는 이물질에 대한 혐오감과 거부감이 심한 편인데, 이것 때문에 진심 괴롭다. 차라리 사이보그 시대가 오면 인체의 미적 개념이 사라질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신체부위에 대한 불만이나 이물질에 대한 혐오 같은 것도 사라질 터니 더 좋은 세상이 아닌가 싶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원자 배열 패턴
커튼, 카펫 디자인으로 많이 본듯한 패턴. 놀랍게도 이 패턴은 엑스선 결정학을 이용해 밝혀낸 헤모글로빈의 구조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한다. 즉 섬유 디자이너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자와 분자의 세계로부터 영감을 받아 뽑아낸 패턴이다. 예술이 과학에서 영감을 받은 전형적인 예가 되겠다.
빅뱅의 순간을 포착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예술만큼이나 과학에서도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나는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아무리 눈감고 상상해봐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는 변함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가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우주 전체에 적용시켰을 때, 놀랍게도 방정식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만약에 우주가 팽창하지 않는다면, 물질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의해 한 점으로 뭉치게 된다. 즉 우주가 수축하여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력과 반대되는 밀어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정적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방정식을 수정하기로 한다. 바로 방정식에 밀어내는 힘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수항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29년 천문학자 허블이 우주를 관측하고 연구한 결과, 우주가 팽창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그때 상수항을 도입한 것은 실수였다고 인정하며 우주상수를 다시 폐기한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훨씬 작았으며 무한으로 작은 점, 즉 특이점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주가 이 작은 점에서 대폭발이 일어나며 시작됐다는 관점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빅뱅이론이다.
시간이 흘러 20세기 후반에 우주 상수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할 뿐만 아니라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아인슈타인이 폐기한 우주 상수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 힘의 실상을 모르기에 ‘암흑 에너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우주론에서 미스터리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암흑 물질’이다. 암흑 물질이 우주에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주에는 암흑 에너지가 68퍼센트, 암흑 물질이 27퍼센트 차지하고 있는 걸로 추정된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물질, 즉 행성, 별, 은하들은 모두 합쳐도 우주의 5퍼센트도 안된다. (자료마다 비율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대략 68:27:5로 보면 될 것 같다.)
개념예술가로 불리는 코넬리아 파커는 이론 물리학의 추상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1991년 정원의 헛간을 폭발시킨 후 잔해를 줄에 매달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빅뱅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중간에는 전구가 빛을 내고, 이로 인해 주변 벽에 드라마틱한 그림자들이 만들어진다. 작품명은 <차가운 암흑 물질>인데, 여기서 차갑다는 것은 입자가 천천히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커는 이런 볼 수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는 존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왜 이 작품의 이름이 ‘빅뱅’이 아니라 ‘암흑 물질’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표지는 무겁고 예술적이지 않지만 안은 산뜻하다. 수록된 그림이 예쁘고 종이 재질도 좋다. 오탈자 2개 발견한 것 제외하고는 내게 괜찮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술술 읽히다가 마지막쯤에 아인슈타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머리가 아파 난다. 우주 상수,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하고 영상을 찾아봤다.
결론: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